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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프 Nov 15. 2019

서치; 알바를 찾아라

매너가 사람을 만들고, 직원이 가게를 만든다.

인테리어가 끝났으니 이젠 직원을 뽑을 차례다. 외국에서는 특히나 현지 직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장이지만 아직 현지 언어도 서투를 뿐만 아니라 오픈 전까지 준비해야 할 사항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지어 패치를 탑재하고 사장의 손과 발이 되어 줄 직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직원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각 나라마다 구인광고를 하는 법이 다르고, 시급 체계, 근무시간 등 여러 조건이 다 달라서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파트타임으로 근무하기보다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시급이 아닌 월급으로 급여를 준다. 월급은 직원 한 명 당 한 달에 300만 루피아(한화 25만 원 상당)가 평균이며 매달 마지막 날에 현금으로 노란 봉투에 넣어 지급한다. 인건비가 싼 것이 동남아의 장점이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없어서, 월급을 받은 다음날 말도 없이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오죽했으면 사장이 월급을 주면서 '이래 놓고 내일 안 오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을까.


2014년 10월, 서울치킨 인도네시아의 오픈을 앞두고 구인 광고를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해 가게 앞에 크게 붙여 놓았다. 그러자 얼마 뒤 알버트, 앙가라는 이름을 지닌 2명의 남자가 일을 하고 싶다며 면접을 보러 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그 길을 지나다니면서 공고를 보았다고 했다. 이렇게 채용된 직원들과 함께 서울치킨 인도네시아 오픈의 서막을 올렸다. 


매일 식자재를 준비하고, 프라이드치킨이 될 닭고기를 주문하는 것은 직원의 일이었다. 공급처를 찾고 계약을 맺은 건 사장이었지만, 언어의 장벽 때문에 정작 주문은 직원의 입을 빌려야 했다. 이후 사장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직원(놈)들이 조금씩 '해 먹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을 때 그들은 이미 그만둔 후였다. 이후에는 대부분의 식자재를 슈퍼에서 구매하게 되었다. 시장보다 더 비싼 걸 알지만,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었기에 직원들이 돈을 훔쳐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직원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온 세 번째 직원 스까르는 좀 달랐다. 그녀는 인도네시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성실함을 지니고 있었다. (나중에 결국 게을러 지기는 했지만...) 거기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 우리 가게를 홍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몇 번의 신문 인터뷰, 지역 방송에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온전히 다 그녀의 덕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멀티 플레이도 가능했다. 요리부터 서빙, 캐셔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모든 직원들이 다 그만두었을 때도 그녀는 홀로 남아 사장을 도왔다. 서울치킨 인도네시아를 하드 캐리 한 일등 공신이었다. 




반면 대만은 노동자를 위한 법규가 잘 정립되어 있었다. 하루 8시간 이상의 일을 시키면 안 되고, 의료보험과 연금보험도 들어줘야 했다(정직원일 경우만 해당). 시급은 1시간에 150 대만달러(한화 약 5745원)다. (이마저도 2020년엔 158 대만달러로 오른다고...) 8시간씩 주 6일간 근무할 경우 월급으로 환산하면 대략 3만 1000대만 달러(한화 약 118만 원)가 나온다. 인도네시아 보다 판매가는 두 배밖에 높지 않은데, 4~5배 높은 인건비를 내야 했다. 


물론 월급 받으면 말도 없이 나오지 않거나 사장이 시킨 일만 하는 인도네시아 직원들보다 대만 직원들의 근무태도가 더 좋긴 했다. 시간에 맞춰 출근하고, 일찍 와도 출근 도장을 찍지 않고 정시에 출근 도장을 찍는 도덕성까지 갖췄다. 하지만 타이베이가 아닌 뤄동진에서 일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너무 어리거나 반대로 나이가 너무 많았다. 한창 일한 나이의 20~30대들은 타이베이에서 출퇴근을 하며 일하고 있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전과자까지 면접을 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귀인이 찾아왔다. 설리나라는 19세 소녀였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던 그녀는 원래 손님이었다.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왔다가 구인 공고를 보고 일하고 싶다며 말을 전해왔다. 이런 행운이! 그녀는 대가족 13명과 함께 살고 있어서 그런지 빠릿빠릿했다. 일하는 센스도 있어서 포장 손님이 한 번에 몰려도 번호표를 만들어 지급하는 총기를 발휘했다. 게다가 그녀는 예뻤다... 그녀에게 번호를 물어보기 위해 가게를 찾아오는 남자 손님들이 점차 많아지고 가게 분위기도 달라졌다. 한 사람이 근무 환경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였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그녀가 대학에 가기 전까지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학기가 시작되자 그녀는 학교가 있는 타이베이로 향했고, 방학이 되어야만 그녀와 다시 일할 수 있었다. 


또다시 '알바'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Photo by free-to-use-sound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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