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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꽃봄 Jun 02. 2023

눈을 감아도 아른거리는 너의 그 이름, 잡초

귀촌일지 : 풀과의 전쟁, 그 서막

   

   마침 비가 내렸다. 깊은 봄, 일주일에 이틀 머무르며 비 오는 날을 맞이하는 건 또 얼마의 우연과 필연이 움직인 걸까. 운명이다. 풀 뽑기 좋은 날이랬다.

   

    

     젊음과 비례하게 돈이 없는 우리가 유유자적 감상할 넓은 꽃밭을 갖고 싶다면, 모종이 아니라 꽃씨를 사야 한다. 트랙터 말고, 삽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며칠 찾아 올 근육통과 50만 원을 맞바꾸기로 했다.


잡초들 사이에 용케 색을 찾은 측백나무

   힘이 없어 보이던 측백나무 트리오는 주변 색에 동화되어 푸른빛을 찾았다. 이 정글에서, 저 잡초들 사이에서 말이다. 올 겨울 만날 키가 큰 세 그루의 트리를 위해, 언젠가 휘어잡고 싶었던 아무개의 머리칼인 양 풀을 집어 뜯었다.


   요령 없는 도시인 다섯은 손으로 풀을 뜯다 머리를 쓰기 시작한다. 창고 구석에 장비들이 있었다. 이 애환을 예견한 전 주인은 꼭 필요한 집기들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진정한 삽질이 시작되었다. 피땀 흘려 일구었다는 말은 사무직인 우리들이 입에 올릴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고작 열손가락 놀리며 일했으면서 피땀은 무슨, 이런 게 피고, 땀이지!


    갈아엎은 마당에는 수레국화 씨앗이 뿌려질 예정이었다. 보통 파종 전 하루 정도 씨앗을 물에 불리는 작업을 한다는데, 도저히 포기할 것 같은 약해빠진 정신력에 차마 씨앗을 물에 불리지 못했더랬다. 처음엔 웃다가, 얼마 후 말이 없어지다, 신경이 곤두섰다가, 부슬부슬 다시 내리는 비에 감사하다가... 한가을 쓸쓸한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반드시 오락가락하던 과거의 나와 같았다.

 


   마당 가운데 뜬금없이 유실수가 있다 했는데, 6월이 가까워 보니 앵두나무였다. 빛깔만큼 단단한 것이 제법 시겠다 싶었다. 풀 사이에 구출해 내 뒷마당 텃밭 앞으로 옮겨 심었다.


뒷마당으로 이사한 삐죽 선 앵두나무


   어렸을 적, 명절이 아닌 어느 평범한 식목일에 외갓집 식구 모두가 모인 때가 있었다. 그날 어른들은 할머니집의 마당 한켠에 외삼촌네 하나, 우리 집 하나, 두 그루의 앵두나무를 심었다. 그 이후 다시 할머니댁에 갈 때마다 우리 나무가 더 키가 컸으면, 잔뜩 부푼 마음으로 뛰쳐 들어가 나무 옆에 섰던 기억이 난다. 그래봐야 그 시절 내 키만 한 작은 앵두나무였다. 아마 조금 후 지우 모습이겠지.



   지우가 태어나기 전 괜히 거닐던 퇴근길에서 만났던 복숭아나무. 그땐 마냥 매실인 줄 알고 떨어진 개복숭아 몇 개를 주워 와 설탕에 빠뜨렸었는데, 그 나무가 마당 한복판에 있었다. 발그레 한 빛이 뛰다 만 지우 볼 같았다.



   젊은 도시인 5명이 헤집고 뜯어놓은 마당이 드디어 민낯을 드러냈다. 빈약한 울타리 너머의 고운 밭은 트랙터로 빚어져 있었다. 우리의 삽질을 무력하게 만들던 남의 밭의 고운 자태. 얼른 집으로 들어와 꽃씨를 물에 불렸다. 어딘가에서는 잡초 취급을 받을 수레국화 씨앗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날아온 꽃 씨도 싹을 틔워 뿌리를 내렸는데, 땅을 고르고 비를 맞은 수레국화가 살아남지 못하겠냐 싶다가도 우리의 이 모든 노동이 수포로 돌아갈까 내심 불안했다. 그리고 다가온 5일 동안 간절히 바라본다. 부디 양양의 온화한 햇살이 꽃씨를 태우지 않고 고이 잘 키워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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