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너는 누구냐!
금요일 밤에는 시골로 퇴근한다는 김미리 작가님의 책이 나의 퇴근까지 그리 만들어 버렸다. 햇살집으로 가는 금요일엔,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용서가 된다. 그저 나의 퇴근시간만 지켜준다면!
다섯 시 반, 좀처럼 하기 힘든 정시퇴근을 칼같이 맞추어하고, 미사역으로 향했다. 진과 지우도 그곳으로 오기로 했다. 차가 막히기 전 출발에 성공한 우리는, 정체의 서두에서 뒤로 막힐 차들을 걱정하며 신나게 달렸다. 양양은 파랗게 해가 지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는 손전등을 켜고 마당을 살폈는데, 푸른 끼가 보이지 않아 힘이 빠졌다. 우리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 걸까. 금요일 밤이 유난히 길었던 이유 중 히나였겠다.
지우의 뽀뽀세례에 일어나 맑은 공기를 욕심내며 들이켰다. 눈곱만 간신히 떼어내고 뒷마당으로 나가 초당옥수수를 살펴보았다. 작고 여린 풀들이 아직 흙에 꽂혀있었다!
6주를 심고, 네 개의 씨앗을 콕콕 박아놓고 서울로 갔었는데, 2주는 말라서 죽어있었고, 2개의 씨앗에 빼꼼 싹이 올라 와 있었다. 나는 이 여섯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모양이다.
햇살집의 볕은 여리고 허접한 나의 고구마 순에게는 너무 강했던 모양이다. 덮어놓은지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잎이 초겨울의 낙엽처럼 바싹 말라있었다.
올해 고구마 농사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이럴 거면 순을 키우겠다고 빼낸 고구마는 그냥 구워 몇 입 더 먹는 거였는데...
마당의 꽃씨도 사실 씩씩하게 자라있었다. 나름 고르게 뿌린다고 뿌린 씨앗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따글 따글 싹을 틔워냈다. 어젯밤 손전등이 비춘 마당은 하필 씨가 뿌려지지 않은 부분이었던 것이다.
비소식을 기대했지만, 지난주 별난 봄비 뒤로는 별다른 비소식이 없었다. 마른 마당에 물조리개로 물을 주다 외쳤다.
- 읍내로 나가자!
물조리개를 대신할 든든한 10m짜리 고무호스를(택도 없는 길이라는 건 나중이 되어야 알았지만) 노란 장바구니에 넣어 들고 가벼워진 발걸음을 떼는데, 바로 옆에서 ‘누구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에는 늘 방향이 있는데, 방금 그 말은 우리를 향한 물음임이 분명했다. 지우를 보고 눈이 동그레진 할머니께 ’ 이사 왔어요 ‘ 하고 살갑게 웃어 보였다.
아이가 흔한 동네가 아닌 데다가, 아침부터 장을 나선 행세가 여행자의 모습이 아니었으니, 그야말로 뉴페이스에 놀라신 동네분께서 저도 모르게 불러 세운 말씀이셨다.
어느 동네냐며 자연스럽게 호구조사(?)를 하시는 할머니와, 지우를 앞세워 전략적인 호감을 사는 우리. 걱정했던 것보다 주변의 관심은 따뜻한 온기가 서려있었다.
10m면 옆동네도 갈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짧디 짧은 이 호수로는 목마른 새싹들을 다 채워줄 수 없어서 인간 분수가 되어 최대한 멀리 물을 던졌다. 지우는 소방관이 되었다며 신나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기분 탓인지 새싹과 지우의 키가 눈에 띄게 자라 있었다.
햇살집이 단단히 지우를 키워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