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집의 묵은 때 벗겨내기
잔금 이후 휴가를 다녀온 우리는 마지막 남은 연휴에 햇살집으로 향했다. 지우는 할머니댁에 잠시 맡겨두고 간밤에 움직였는데, 꽁꽁 싸맨 이부자리덕에 흡사 야반도주였다. 까맣고 긴 밤엔 진득한 봄비가 내렸다.
간밤에 도착한 햇살집은 공포였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들을 뒤로하고 굳이 굳이 이 고요하고 까만 곳으로 왔는데, 그 낯선 고요함이 무서웠다. 집안으로 들어가 전등 스위치를 모두 찾아 켰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새벽 한 시였다.
휴대폰 손전등을 들고 두꺼비 집을 찾았다. 주요 스위치가 부러져 내려가있는 줄도 모르고 애꿎은 스위치들을 내렸다 올렸다를 여러 번 했다. 손톱으로 부러진 스위치를 끌어올리고 나서야 집안이 밝아졌다. 생각보다 집안은 깨끗했다. 챙겨 온 행주로 방 하나를 급히 닦아 토퍼를 폈다.
- 여기도 우리 집이다
긴 여행을 하다 두 시간을 달려 새벽에 도착해 몸이 만신창이였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설레었기도 했고, 낯설기도 해서였다. 한껏 예민해진 귓가에는 개구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근처 농장에서 이따금씩 소들이 울어댔다. 머릿속에 스치는 비슷한 곳이 있었는데... 쥬라기공원이었던가...
소들이 들려주는 공룡 자장가에 언제인지 모르게 잠이 들었고, 11시가 다되어서 일어났다. 지우를 낳은 후 처음 자본 늦잠이었다. 그저 감개무량한 아점이다.
창문을 열고 젖은 공기를 깊이 들이켰다. 집 앞 개천에 왜가리가 날아들어 몽롱한 소리를 냈다. 안개 낀 우중풍경이 꼭 수묵화 같았다. 밖으로 나가 처마밑으로 또옥 똑 떨어지는 빗방울을 멍하니 구경했다. 그리고 얼마 후 다니엘라부부가 도착했다. 집안에 생기가 더해져 비로소 따뜻해졌다.
읍내로 나가 감자옹심이를 마시고(?) 몇몇의 청소도구를 사 왔다. 노동요가 재생되고, 입주청소가 시작되었다. 구석구석 햇살집의 묵은 때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마루 바닥의 먼지가림 착시효과는 대단하다. 닦아내는 곳마다 보이지 않던 시커먼 먼지가 묻어 나왔다. 이 먼지구덩이 속에서 잠을 잤다니... 뒤늦게 콧구멍이 간질거렸다.
열심히 닦고 광을 내다 고무장갑을 벗어 던지고 빨갛게 충혈된 눈을 연신 비벼댔다. 전 주인의 고양이 흔적 때문이었다. 나에게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입주날.
그저께까지도 사람이 살던 곳이라 대단한 공수가 필요하진 않았지만 육아와 청소는 장비빨이라 하였다. 정작 집에서는 쓰지 않았던 희귀한 세제들을 챙겨 와 여기저기 뿌렸다.
허리가 뻐근하다 싶을 때 입주청소는 마무리되었다. 양말을 벗고 다녀도 발이 뽀송하다. 읍내에서 사 온 닭강정과 막걸리 한 사발로 새참 흉내를 내본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 퀘스트는 탄수화물로 무장한 술기운의 도움이 필요한, ‘풀과의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