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창가의 고구마 화분
양양 햇살집의 뒷마당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푸욱 푸욱 밟히는 척박한 흙, 모양만 있고 가꾸지 않은 그야말로 무늬만 텃밭이다. 올해는 분수에 맞게 한 이랑만 가꿔볼까 한다. 무성한 여름, 땅에 박혀있는 작물을 보며 터져 나올 지우의 사랑스러운 감탄사를 상상하며 어떤 작물을 심으면 좋을까, 반나절을 고민했다.
작물 고르기는 꽃씨 고르기와는 달랐다. 대부분이 언 땅이 녹을 때 심으면 여름-가을 그쯔음 재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5월 말이면 벌써 봄이 훌쩍 지나가게 되고, 일주일에 단 2촌의 생활로 멀쩡히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는 작물은 흔치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고른 첫 번째 나의 농事는 고구마이다. 언젠가 집에 사놓은 고구마의 맛이 좋다며 순을 키워 심고 싶다던 엄마가 생각났다. 나는 기가 막히게 엄마를 닮았다. 고구마 순을 사면 그만인데, 굳이 마트로 가 고구마를 샀다. 요즘은 고구마값마저 얼마나 비싼지... 그나마 저렴한 한입고구마를 골랐다. 그중 몇 개는 구워 지우입에 넣어주었다.
어설프고 허접해 귀엽기까지 한 이 농작일지는 베란다로부터 시작한다. 네이버는 고구마 밑동을 잘라서 물에 담가두면 순이 나올 거라고 했다. 베란다에서 순을 키워내 양양 텃밭에 심을 계획이다.
물에 잠겨있는 고구마를 보고 있자니 초등학교 자연관찰 시간이 떠올랐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교실 창가에는 뿌리와 순이 무성한 고구마가 있었다. 왁스칠한 나무바닥과 분필의 냄새. 자주 빠지는 공상과 회상이 달콤한 요즘이다.
고구마가 물에 떠다닌 지 일주일째, 용케 썩지는 않네 싶은 고구마에 변화가 포착되었다! 하찮은 뿌리와 싹이 보이는 것이었다. 햇살집 입주까지 앞으로 약 20일의 시간이 남았는데, 과연 여름이 오기 전에 옮겨 심을 수 있을까?
네이버가 말하길, 한 달 정도 지나면 순이 30cm는 자란다고 한다. 이때 옮겨심으면 다른 고구마를 낳을 수 있다고.. 농작일지보다는 관찰 일지에 가까운 이 기록에 어떤 결과물이 소개될지 홀로 기대중이다.
고구마 새싹을 본 이후, 절제했던 구매욕이 터져버렸다. 평이 좋은 스토어를 찾아 여러 종류의 채소 씨앗을 주문했다. 얼마는 베란다에 키울 것이고, 그중 또 얼마는 햇살집으로 옮겨질 것이다. 모종을 사면 훨씬 성공률이 높지만, 발아과정부터 함께했을 때의 성취감은 비교가 되지 않을 터. 양양이 쏘아 올린 씨앗 공으로 5도의 퇴근길이 구석구석 즐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