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오도이촌의 일상
첫 회사에 발을 내디뎠던 그때의 나는 24살이었다. 야물지 못한 시기라 그랬을까, 양양의 부서지는 파도가 끝없이 철썩이듯 나의 시간은 줄곧 요동치곤 했다.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10년 뒤 나를 그리며 위로받았다. 10년이 지나면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인생의 내, 외적인 많은 부분들이 공고히 다져진 하루를 요령 있게 살아내고 있을 줄 알았다.
10년 후인 지금은 어떤가. 퇴근길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행인에 저주를 퍼붓고 있던 나에게 물었다. 바쁜 일상 속에 허덕이며 잠시 찾아오는 여유에 큰 숨을 몰아 쉬고 다시 올 빡빡한 내일을 염려하는 것, 그것이 34살 내가 살고 있는 삶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인 오늘날의 나는 양양을 선택했다. 이 정도라면 10년 전 내가 꿈꾸던 오늘에 부끄럽지 않다. 치열히 살아내는 5일이 기대로 가득하고, 마침내 맞은 이틀은 일상의 나와 완벽히 격리된다.
- 송이공원이에요!
오며 가며 궁금했던 집 근처 카페, 오늘 영업하시냐는 우리의 전화에 사장님께서 하신 의외의 대답이었다. 영업을 안 하신다는 건가.. 잠시 든 의문은 이어지는 사장님의 친절한 설명으로 사라졌다. 송이공원에서 열리는 뚝방마켓에 참여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훌륭한 네이밍이다. 뚝방마켓이라니. 그 길로 차로 십분 남짓 거리의 송이공원으로 향했다.
시골이라 아이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또한 우리의 오산이었다. 드넓은 잔디광장에 자리를 펴고 앉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를 동반하고 있었다.
연령대를 단계별로 구분한 놀이터도 인상적이었다. 뚝방이라는 말에 끌려 송이공원에 온 것은, 살면서 여섯 번째쯤 잘한 일이었다.
주린 배를 분식으로 채우고 돗자리 위에 철퍼덕 누웠는데, 무지개가 보였다. 맨 눈으로 보기 힘든 초여름의 하늘이었지만, 지우를 배위로 눕혀 무지개를 보여주었다. 눈이 부시다며 깔깔 웃던 지우는 기대하던 감탄사를 내뱉었다. 집으로 오던 차 안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다시 찾던, 지우의 무지개.
날이 밝으면 창문 틈으로 삐져 들어오는 햇살에 기다렸다는 듯 번쩍 눈을 뜨는 지우는 아침 댓바람부터 동네 산책을 나선다. 주로 ‘소 보러 가자’ 하며 엄마 아빠를 일으키고, 어깨에는 잠자리채를 꼭 이고 나간다.
햇살집에는 티비가 없어서 한적하지만 심심할 때도 있는데, 그런 시간을 채워나가려고 부단히 고민하고 실행한다. 며칠 전에는 이웃 할머니께서 주고 가신 쪽파 모종을 심었다.
지우는 아직 가나다라를 모르지만, 식물 심는 법을 잘 알고 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흙을 파내고 제 머리카락 같은 아기 쪽파를 터프하게 잡아서 턱턱 구멍 안에 던져 넣고 다시 흙을 덮었다. 그러다 굼벵이를 발견하고는, 흙투성이가 된 작은 손으로 벌레를 쓰다듬었다. 지우 표현에 의하면, 꿈틀대는 굼벵이는 친구라고 한다.
차마 혼자 들지 못하는 물조리개와 씨름하며 구석구석 물을 주고 나면, 꼬마 농부의 텃밭이 제법 근사하다.
세 군데의 해수욕장을 거쳐 드디어 지우용 바다를 찾았다. 잔잔하고 맑은 바다였다. 아쿠아리움에서도 보지 못한 군소와 작은 성게, 발에 밟히는 모두 다른 무늬의 조개들. 지우의 바다.
신나게 노느라 낮잠시간을 놓치고 나면 또 다른 궁리를 해야 하는데, 저렴하게 들인 물 뿜는 튜브(?)가 나의 육아에 동참한다. 흥에 겨운 지우는 씰룩씰룩 춤을 췄다. 작은 비를 맞는 지우를 보며, 흩뿌려져 스며드는 행복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