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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꽃봄 Jul 03. 2023

할아버지와 아기

나의 아빠, 지우의 할아버지


   이번 주간의 햇살집은 복닥복닥 온기가 넘쳤다. 양가 부모님께서 연달아 햇살집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부모님들께서는 아무래도 걱정이 많으셔서, 가장 좋은 양양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내마음을 알리 없는 양양은 연일 내리는 비에 궂은 파도가 높이 들썩였다.


    진과 지우는 수요일부터 시골에 가있었다. 나는 바빴다. 홀로 조용히 맞는 저녁에도 끝내지 못한 몇 장의 ppt와 씨름을 하며, 깨고, 일하고, 지쳐 잠들기를 반복했다. 유난히 고단했던 5도를 마치고, 터미널로 향했다. 파워 P는 출발 전날에나 버스어플을 다운받았고, 적당한 시간대의 양양행 버스는 당연히 모두 매진이었다. 그나마 찾은 완행버스의 마지막 한 자리를 예약했다.



   노래를 들었다. 오랜만이었다. 한참만에 창밖을 내다봤는데, ‘두촌면‘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시골집을 알아볼 때 가장 먼저 임장 했던 곳이었다. 일찍이 주인을 찾아 줄곧 궁금했는데, 창밖너머로 그 집이 보였다. 집을 둘러싼 옥수수 밭에는 내키 만한 옥수수들이 빽빽이 자라 있었다. 해가 기우는 하늘은 지우손에 들린 솜사탕 빛깔이었다.



   양양행 완행버스는 강원향 옛길을 달린다. 수려한 풍경을 양쪽 창밖에 끼고 구불구불, 정체 없는 길을 시원하게 내달렸다. 한계령을 지나는 이 길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길이다. 낯선 곳에 정차하는 완행버스 덕에 완벽히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터미널에 마중 나온 진과 지우와 진한 재회를 하고, 읍내 편의점에서 맥주 두어 병을 품에 안고, 다시 구불구불 길을 돌아 집에 도착했다. 같은 날 김해에서 출발했던 부모님도 곧 도착하셨다. 잘 시간이 한참 지난 지우는 신이 나서 동동 뛰어다녔다.



   부모님께서는 햇살집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 손녀의 작은 손을 잡고 구석구석을 산책하시며, 햇살집을 둘러싼 풍경에 쉬이 감탄하셨다. 엄마는 길에 산나물이 보일라치면 그대로 쭈그려 앉아 나물을 캤다. 어찌 이리도 나의 모습일까.


  지우는 가자는 대로 길을 나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그리 좋았나 보다. 나도 가끔 사라져 평온을 맞는 순간이 좋았지만. 창밖에 고개를 내밀어 한바탕 산책 후에 또 사라진 지우와 나의 아빠를 찾았다. 이번엔 논밭길이었다. 멀리서 보이는 아빠와 지우의 모습이 애틋해서, 기록을 남겨드리고자 쫓아갔다.



   ’너무 멀리 온 게 아닐까?‘ 하며 뒤돌아 보던 지우가 나를 발견하고는 두 팔을 벌리고 뛰어왔다. 행복과 비례한 지우의 입모양도 함박웃음으로 동그랗게 번졌다. 지우는 손에 꼭 쥔 강아지풀 꽃다발을 나에게 주었다. 할아버지가 엮어준 것이라 하였다. 엄마가 좋아하는 꽃이지,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우는 늘 그랬듯 업어달라고 떼를 썼다. 오늘은 할아버지 등이다. 토실토실한 볼을 할아버지의 넓은 등에 파묻었다. 멀찌감치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목구멍이 울렁거렸다. 어렸던 나를 업은 할아버지의 모습 같기도 하고, 아빠의 마음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마 작은 나를 업고 있는 기분일까.


   

   시원한 여름바람이 불었던 저녁, 오로지 달이 밝힌 마을을 감상하며 바베큐를 해 먹었다. 내가 사랑하는 곳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북적이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행복에 잠기어, 그 행복에 따라 그저 넘실대는, 산뜻한 시골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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