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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꽃봄 Jul 13. 2023

시골의 텃세에 대하여

대문 안으로 쏟아지는 따뜻한 눈길

   

   귀촌생활에 생길 수많은 변수 중 하나가 시골의 텃세라 하였다. 곳에 따라서 뜬금없는 발전기금을 요구하기도 하고, 마구잡이로 불러내 막노동을 시키기도 한다, 조용한 생활을 하고 싶어 시골로 내려왔다가 텃세에 질려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여간 신경 쓰이는게 아닌 후기들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지우를 데리고 처음 햇살집에 온 날, 초보 오도이촌러들은 하루에도 몇 번 읍내로 나가야 했다. 뒤돌아서면 필요한 것들 투성이었다. 읍내에 갔다가 지우를 안고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올 것이 왔다. 골목 안쪽 이웃이라는 할아버지와, 그의 딸이 우리 집을 찾아왔던 것이다.


   낮에 진과 지우가 산책을 한답시고 골목 안쪽까지 들어갔다가 동네 강아지들의 어마무시한 환대(?)를 받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소동에 우리를 발견하셨다고 한다. 잔뜩 몰아먹은 긴장이 무색하게, 대화의 첫 주제는 표고버섯이다. 직접 재배하셨다는 말린 표고버섯과 가지런히 정리된 상추를 한 아름 주시며, 옛이야기와 요즘 이야기를 해주셨다. 햇살집 이웃의 첫 번째 텃세, 진한 향을 뿜는 표고버섯과 부드러운 상추.

    


  시골의 두 번째 텃세를 맛본 것은, 바로 그다음 주의 二村이었다. 이번엔 전동차 할머니였다. 할머니께서는 덤덤하게 몇 가지 질문을 하시다가, 뒷좌석에서 파 모종을 꺼내시더니 우리에게 주셨다. 분명 햇살집에 오자마자 심어놓았던 허접한 옥수수를 보셨을 테다. 엉망이었던 텃밭을 조금 덜 엉망이도록 치워놓은 것을 보시고는, 모종을 들고 오신 할머니.



   신이 난 지우는 맨손으로 흙을 파서 모종을 턱 던져 넣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흙을 다시 채워 넣었다. 톡톡톡 흙을 두드리며 ’잘 자라라 ‘ 하고 귀여운 주문도 외웠다. 이방인이라는 단어도 여기에 묻었다.



  선풍기 앞에 축 늘어져있던 어떤 날, 지우가 두 손에 예쁜 감자를 들고 들어왔다. 할머니가 주신 감자라고 했다. 이번엔 뒷밭 할머니시다. 갓 수확한 감자라며 주고 가셨다고 한다. 열린 대문사이로 수많은 웰컴푸드가 쏟아졌다. 생각해 보니 감자 하나 제대로 쪄본 적이 없었다. 자작하게 물을 부어 깨끗이 씻은 감자를 가득 넣었다. 비로소 여름이 온 것만 같았다. 여기 시골의 텃세는 감자맛이다.



   파와 고구마의 근황. 이 밭에는 질서란 없다. 빈자리에 쑥쑥 심은 고구마와 파는 주인의 관심을 필요치 아니하고 점점 키를 키워나갔다. 아참, 심을 땐 모두 죽은 줄 알았던 고구마 순들은 부케모양으로 새로운 순을 뿜어냈다.



   할머니 밭과 우리의 작은 텃밭에는 경계가 없다. 어느 날 옥수수 고랑에 정체 모를 까만 흙이 뿌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같은 색의 흙이 뒷밭에도 있었다. 비료다. 기특한 우리 집 옥수수는 아무 땅에나 잘 자라는 게 아니었고, 할머니가 잘 키워주셔서 그리 무럭무럭 자란 것이었다.



   평일에 우리가 있는 줄 알고 들르신 전동차 할머니께서 까만 봉투를 문 앞에 놓고 가셨다. 감자였다. 이제 집집마다의 감자맛을 구분해 낼 수 있을 정도다. 당신의 호의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내가 살면서 꾸역꾸역 베푼 선의들이 모두 양양에서 돌아왔다, 하면 말이 될까. 이 시골의 텃세는 말이 안 되는 것들이었다. 갓 마을사람이 된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이들을 위해 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받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어르신들께 드릴 간식을 사 와 근처 집들의 문을 두드렸다. 문은 두드리는 족족 활짝 열렸다. 그리고 우리의 감사 인사는 또 다른 감자가 되어, 또 한 꾸러미의 상추가 되어 돌아왔다. 이 시골의 텃세가 마음을 매만진다. 단단해지고, 깊어진다. 우리가 집을 비운 5일에도 대문은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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