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옥수수를 수확하다.
장기출장이 한 달째 이어진 날이었다. 공사 중간 점검을 위해 햇살집에 다녀왔다는 진이 몇 장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머나먼 낯선 땅에서 주말마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지만, 정말이지 양양이 마려운 요즘이다.
진의 첫 번째 사진꾸러미는 모두 허접하기 짝이 없는
나의 무기대 농사의 근황이었다. 말 그대로 기대는 없었지만 걱정은 가득했던 나의 농작들은 잡초와 함께 무성히 자라 있었다.(그래서 잡초와 구분이 안 가는 상태에 이르렀다)
가장 큰 수확이라 볼 수 있는 나의 옥수수들. 연약하기 짝이 없던 옥수수풀은 쑥쑥 자라나 진의 키만큼 컸다고 한다. 태풍에 꺾여 질서 없는 와중에도, 나무마다 한두 개의 초당옥수수가 달려있다!
나의 농사선배 네이버에 따르면, 옥수수수염이 갈변하면 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때가 온 것 같다.
나의 사인과 함께 진은 모든 옥수수를 수확했다. 긴 출장으로 지쳐있던 나의 생활에 다시 한번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햇살집과 초당옥수수. 아, 이래서구나. 먹을 수 있는 사람 수를 고려치 않은 엄마밭의 농작물 규모가 설명이 되는 순간이다. 자식 하나 더 낳은 듯한 뿌듯함이다.
조금 거칠게 자란 내 자식들. 달콤해야 마땅할 초당옥수수를 한입 베어 먹은 지우는 두 번째 입을 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 돌아가면 옥수수청 만들게 냉동실에 잘 넣어둬.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초당옥수수는 맛이 없었다고. 초당옥수수인데 왜 달지 않다는 건지... 돌아가면 옥수수 청을 만들어서 라떼를 만들어먹고 말 테다. 으휴
고구마밭은 고구마줄기가 풍년이다. 문제는 저 숲 속 어딘가 심었던 소중한 파들이다. 다음사진을 보고 나는 내뿜고 말았다.
...?
고구마잎과 잡초가 대파를 덮쳤다. 저 고구마숲에서 대파를 구출해 내야 하는데, 진은 더 이상 대파에 대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아마 저게 파라는 사실을 알리가 없는 듯하다. 닿을 수 없는 대륙에서 내 마음만 탄다 정말.
말라죽은 줄 알았던 앵두나무는 하나는 살아내고, 하나는 죽었다. 오도이촌 생활로 참 설렜던 봄과 여름이
지나고, 한 달 손길 주지 않았다고 삐죽이 자라난 텃밭과 마당을 관광하고 있자니 속이 쓰라렸다. 커뮤니티에서 댓글로 접하던 조언들이 음성지원 되는 듯했다.
손길을 주지 않으면 빛을 잃는다.
사람이 그렇고, 집이 그렇다. 집의 경우엔 생명이 왕성한 여름에는 자연이 그 빈 손길의 자리를 집어삼켜버린다. 어쩔 수 없이 떠나온 출장이지만, 떨어져 있는 모든 것(햇살집과, 진과, 지우)에 대해 긴히 고민했다.
가을바람이 시원하게 불 때쯤 나는 다시 한국으로, 가족의 곁으로, 또 양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고구마숲과 씨름하고 손가락 만한 고구마를 보며 뿌듯해하고 있겠지. 그날을 상상하며 남은 이 쓸쓸한 여름을 살아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