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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다 Sep 30. 2024

욕심은 화를 부른다

 이사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마늘이 방만 남았다. 주문한 벽 선반이 예약이 많은지 설치가 보름이 걸린 데서 아이 방 한쪽 벽면에 책이 그대로 쌓여있다. 나머지는 거의 정리가 다 되었다. 아! 커튼도 아직 안 왔구나. 하하하 끝날 듯 끝나지 않은 이사...


 어쨌거나 아이는 다니던 태권도를 엊그제부터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전에는 차량을 타고 갔어야 했는데 이제는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 둘이 같이 학원에 걸어간다. 차량은 편하긴 하나 사고의 위험이 있고 탑승 차례에 따라 차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생기므로 가급적이면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가려 한다. 그리고 나는 마늘이랑 같이 나가서 운동을 할 생각이다. 아이가 방학이면 내가 운동하는 시간을 내기 쉽지 않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긴 했지만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밖에 나가서 운동을 하기엔 마음이 편치 않고 같이 나가는 것은 작년 여름방학에 시도해 보았지만 이도 저도 아니게 되더라. 뛰어가는 나를 아이는 못 쫓아오고 나는 그런 마늘이를 신경 쓰느라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 그래서 이번 두 달간의 겨울방학엔 아이의 학원 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저번달은 시댁살이를 하느라 운동을 못했고 이사를 대충 마친 지금은 마늘이 태권도가 있는 한 시간 동안 운동을 하기로 했다.


 월요일엔 비가 와서 못했고 어제부터 시작했다. 두 달하고도 5일 만의 달리기. 사실 집 청소하며 이삿짐 정리하느라 피곤함에 몸이 무거워서 그냥 집에서 쉴까 고민했다. 이 집에 오고 마음 편히 쉬어본 적이 있던가. 조금의 여유라도 생기면 정리해야 할 곳이 눈에 보여서 몸을 소파에 기댈 수가 없었다. 혼자 집에서 늘어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거기에 운동 안 한 지 두 달이 넘었으니 귀찮아질 만도 했지. 그럴 땐 귀찮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고 일단 옷을 갈아입는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면 어찌 됐든 간에 운동을 하게 된다. 


 마늘이를 학원에 올려보내고 나는 항상 운동을 하던 개천가로 내려갔다. 전에는 10분은 걸어야 당도할 수 있던 개천가가 집 앞에 있으니 어찌나 좋던지. 크으 이 접근성. 어제 눈비가 내려서 그런가 동풍이 부는가 맑은 공기가 달리기 딱 좋은 날이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달리기를 오래 쉬었으니 무리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일전에도 폭염으로 한 달 가까이 달리기를 멈췄을 때 다시 30분 달리기 트레이닝 코스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돼서 오늘은 페이스를 늦춰 십분 정도만 달려보자 생각했다. 5분 정도 웜업으로 빨리 걷기를 한 뒤 자유 달리기를 시작했다. 익숙한 장소에서 달리는 익숙한 행동. 두 달 동안 낯선 곳에서 정신없이 생활하다 이제야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내가 아무리 정신 못 차리고 바쁘게 살아도 세상은 평온하게 흘러간다고 느껴졌다. 천천히 흐르는 개울도 그대로고 철새들도 유유자적 물가에 떠있고 비둘기 똥과 산책하는 개들에 긴장하는 나... 모든 게 여전하다. 


 3분, 5분이 넘어도 숨이 가쁘지 않다. 오랜만이라 금방 다리가 무거워질 줄 알았는데 어쩐지 뛸수록 몸이 가벼워진다. 2년간 꾸준히 달린 게 효과가 있나 보다 나 스스로가 감격스럽기 시작했다. 10분만 달리며 몸을 풀 계획은 20분으로 늘어났다. 늦어진 페이스에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쉬지 않고(숨도 가쁘지 않고!) 뛰는 자신에 놀라며 호흡을 했다. 페이스는 점점 줄어들었고 더 뛸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대로면 30분도 뛸 수 있을 거 같아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3킬로를 달렸다는 런데이 앱의 알림이 울렸고 나는 다리를 멈추며 걷기 시작했다. 최종 23분의 달리기를 했다. (3분의 고민을 했다) 이제 달려온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돌아간다. 이게 내 달리기의 루틴이다. 그래서 총 운동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를 하게 된다. 오늘도 어김없이 달려온 거리를 걸어가는데 시간이 한정된 것을 잊었다. 마늘이의 태권도 수업은 한 시간이고 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걸음을 재촉하며 팔을 휘저었다. 3킬로를 빠른 걸음으로 주파하고 가벼운 몸으로 학원 앞으로 갔다.


 3월까지 입주 기간이라 요즘 이사 차와 가전제품, 가구 배송 차가 아파트 단지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러 갔는데 오늘도 이사를 하는지 엘리베이터 앞에 포장박스가 잔뜩 쌓여있고 높은 층에서 내려오질 않는다. 마늘이에게 걸어가자고 제안하고 계단으로 갔다. 우리는 8층이니 걸어갈만하다. 둘 다 운동을 한 시간 동안 한 걸 잊은 채 저벅저벅 계단을 올랐다. 평소와 같이 씻고 주방에 들어서 저녁을 고민하며 쌀을 씻었다. 그런데 슬슬 다리가 이상하다. 뛸 때는 가벼웠던 다리가 무게를 단 거처럼 묵직해진다. 아, 나의 욕심이 화를 불렀구나. 그래도 무리해서 달린 것은 후회되지 않는다.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 뛰고 나서 다리를 좀 쉬게 해주었어야 했다는 후회와 스트레칭을 꼼꼼히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하여 후회가 밀려왔다. 일 저지르고 뒤처리를 깔끔히 하지 못했다. 그 뒤 자기 직전까지 뻐근함이 밀려왔다. 근육통을 뒤로하고 나는 어쨌건 달리기에 성공했고 내 생각보다 많이 달려서 기특했다. 그거면 오늘은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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