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운다. 아주 사소한 일정까지도 시뮬레이션을 한다. 지금 먹고 있는 차이티라떼도 계획하에 진행됐다.
‘일단 가서 두유로 바꿀 수 있는 티 라떼가 있는지 물어보고 메뉴를 결정하자. 만약 변경이 안되면 어쩔 수 없이 밀크티를 먹자. 그리고 만 원 이상 구매해야 주차가 무료니까 곁들일 디저트를 먹어야겠다.’
그리하여 마련된 한 상은 아주 흡족스럽다.
오늘 일정도 매우 순조롭다. 원래는 마늘이를 등교시키고 식탁을 보러 미리 알아둔 가구 쇼룸에 가려고 했는데 용용이와 퇴근 후 같이 가기로 하여 일정을 변경했다. 미뤄둔 세차를 하기로 마음먹고 세차 짐을 챙겨 나왔다. 나오기 전에도 미리 계획한 간단한 아침식사와 청소기 밀기를 완수하고 나왔다.
원래의 계획은 쇼룸이 10시 오픈이니 마늘이 등교시키고 집에 와서 간단히 요기하고 집 정리와 청소기 임무를 마친 뒤 9시 30분경 집을 나설 계획이었다. 여기서 달라진 점은 집을 나서고 향할 목적지다. 가구 쇼룸에서 세차장으로 변경되었다. 세차 후 마늘이 하교까지 시간이 빌 수 있으니 읽을 책도 챙겼다.
날씨가 맑고 앞으로 일주일은 비 소식이 없으니 오늘이 세차하기 제격이다. 손 세차는 즐겁다. 빗물에 먼지가 덮여 더러운 검은 내 차를 강한 물줄기와 거품솔로 닦아낸 뒤 큰 타월로 물기를 닦아내면 금세 반짝거린다. 의자에 쌓인 먼지와 얼룩을 청소기와 걸레로 닦아내면 쾌적한 실내로 돌아온다. 간단히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은 손 세차의 큰 장점이다.
세차 후 배고프다고 불을 켠 요를레이에게 기름을 먹이러 주유소에 들러 25리터만 주유를 한 뒤 바로 별다방으로 왔다. 운전하며 오는 중 이미 위에 작성한 대로 메뉴 계획을 세우고 순조롭게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마늘이의 하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요일인 오늘은 4교시이고 마늘이는 1시에 학교에서 나온다. 지금 시각은 11시 53분… 마음이 조급해진다. 글을 쓰느라 가져온 오만과 편견은 한 장도 읽지 못했다. 난 스타벅스에서 책 읽는 게 좋은데, 글을 적지 말고 책을 읽을 걸 그랬나.
하교 후엔 어제 찍은 여권 사진을 찾아서 시청에 여권을 재발급하러 갈 예정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려 했으나 차를 집에 놓고 학교로 걸어갈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 시간 여유가 없어 쫄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어떤 약속이든 미리 나가있는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의 생각대로 컨트롤 되지 않는 생명체 덕분에 지각하는 것에 의연해졌다. 아이와 함께하는 약속엔 거의 지각했으니까. 그래도 나의 기질상 약속에 늦는 걸 꺼려 한다. 남이 늦는 건 대수롭지 않지만 내가 늦는 걸 참지 못한다. 계획이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의 불쾌감. 원치 않은 사건으로 인해 계획이 어그러지면 격렬하게 반응하는 나의 신경. 충동적 인간과 산 지 8년째라 약간은 덜 격렬해졌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내일을 계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