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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성 Oct 17. 2024

비 온 뒤 맑음 뒤 눈 옴

인생사 새옹지마

가끔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사실 많다.

깜깜한 안대를 쓰고 당근 냄새를 좇아 킁킁거린다. 그러다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자랑한다. 

내 안대는 황금이야!!

이에 누군가는 기가 팍 죽는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들에 둘러싸여있지만, 스스로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은 매우 드문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우린 눈 깜짝할 새에 너무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아버린다. 정작 내가 원한 것은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다. 꿈, 사랑, 직장, 관계, 약속, 하다못해 점심 메뉴까지. 


모든 사람이 스스로의 욕망에 솔직하고 그것을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면
인스타그램은 망했을 것이다.



어떤 삶이 정답이다, 라는 것처럼 틀린 말은 없는 것 같다. 인트로의 이러한 생각도 내 생각일 뿐이고, 다른 누구는 그게 행복할 수도 있다. 전세계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겠지.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머릿속이 늘 궁금하다. 이 사람 깊은 곳에서는 무슨 생각을 할까. 무엇이 맞다고 여길까. 말투와 행동 기저에 깔려 있을 작게 웅크린 어린아이는 무엇을 외치고 있을까.


늘 글을 쓰다보면 삼천포로 빠진다. 이번에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것과는 하나도 상관 없는, 근황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쓴 글이 번아웃과 선택의 기로에서 갈팡질팡하며 우중충 했던 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인생은 또 꽤나 빠르게 다른 국면으로 전환 되었으니까.



1. 인턴 시작


내가 제일 안 할 것 같은 선택을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더 이상 학교를 다니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쌓아온 경험을 필드에서 정말 인정해줄지 궁금했다. 학교도 안 다니고, 스스로도 검증해보고, 된다면 스펙도 쌓을 수 있는 일석삼조라니 정말 럭키비키잖아? 나는 방학 때 용감하게 대기업만 써서 냈고, 됐다.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는 것을 상상도 못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인생인가보다. 주변 사람들이 아주 좋다는 것이 가장 다행이다. 일도 즐겁다. 회기 유나이티드에서 돈을 써가며 했던 똑같은 일을, 돈을 받아가면서 하다니.  

어쨌거나 나는 대기업 언론사에 인턴으로 입사했고, 사원증에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며, 상당한 구내식당 혜택을 즐겁게 받고 있다. 하는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더 자세하게 다루고 싶다.


2. 공모전 싹쓸이


도저히 회기 유나이티드로는 돈을 못 벌 것 같아서 다른 일을 시작했다. 운영진이 그나마 가진 장점을 살릴 수 있으면서 용돈벌이도 할 수 있는 일. 그게 우리에겐 '영상'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포트폴리오용 영상들을 만드려고 했는데, 장호형이 공모전이라는 아이디어를 줘서 각종 광고영상 공모전에 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공모전을 휩쓸었다. 영상 비전공자들이 영상 공모전에 나가겠다고 마음먹은 첫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타고 상금으로 500만원을 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다른 것보다 고생만하던 회기 유나이티드 운영진이 처음으로 금전적 이익을 얻은 것이 가장 뿌듯하고 고마웠다. 이후로 나간 공모전에서는 대상도 타고, 물도 먹었다. 조금씩 경험이 쌓이고 있는 우리는, 이젠 한 번에 여러 공모전을 동시에 준비하기도 한다.


3. 회기 유나이티드


준우승을 했다. 꽤나 희망적인 대회였다. 누구 한 사람에게 의지해서 꾸역꾸역 올라간 게 아니라, 팀이 유기적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은 첫 대회였다.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한 것의 여파가 아주 오래갔지만, 좋은 점이 없는 대회는 아니었다. 나는 이 팀이 너무 좋다. 장호 형과 함께 이 팀을 만들었기 때문만아니라, 이곳에 속한 선수들이 좋기 때문이다. 내가 선수를 하면서는 느끼지 못한 소속감과 애정을, 이 사람들에게 느낀다. 이 팀의 끝이 어디인지 아직은 감도 잡히지 않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팀을 알았으면 좋겠다. 


4. 다큐멘터리 영화제 제출


이것 때문에 다음 날 출근인데 밤을 새었다. 회기 유나이티드의 K7리그 출전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였다. 이것 때문에 나도 고생이었지만, 2천 기가바이트의 영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준 운영진들의 노력도 상당히 컸다. 덕분에 내가 라벨링 된 파일들을 보며 구성을 짜고 적재적소에 좋은 클립을 넣을 수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현재 서울시 주관의 도시영화제에 예심을 통과하여, 상영을 앞두고 있다. 상을 탔으면 좋겠지만, 첫 술에 너무 배부르지 않으려고 한다. 다큐멘터리의 느낌은 축구와 시를 합친 느낌이다. 느낌이 안 오지? 나도 내가 무엇을 만들고 싶었는지 만들면서 깨달았다. 영상을 찍는 것은 너무 쉽다. 그것을 편집하는 것도 너무 쉽고. 그런데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입체적으로 다가가 비유와 깨달음을 주는 것은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앞으로도 꾸준히 작품을 만들고 싶다. 다큐멘터리에 대해서는 공개가 가능한 시점에 리뷰를 해보고 싶다.



이상이 저번 글과 비교했을 때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뀐 것들이다. 저번 글을 쓰던 시점에, 먼 곳에서 온 친구를 붙잡고 너무 힘들다고 내 얘기만 늘어놓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모든 게 나한테 부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내가 원하는 건 하나도 안 된다고 그랬었다. 그 친구를 최근에 만나고 요즘 사는 이야기를 해주니, 잔뜩 취한 친구가 어깨를 두드리며 잘했다고 하더라. 그게 위로가 됐다. 앞으로 상황이 또 달라져서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겠지. 그치만 다시 나오면 그만이다. 


문제는 내가 아주 조금 이루어놓은 것들에 만족해버려서, 스스로 내 눈에 안대를 채우는 꼴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인트로는 사실 내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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