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짐.
누구에게나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나 또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숨을 쉬고,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세상을 눈에 담아 가며 살아간다. 요즘 나의 삶은 시간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현재에 머무르고, 과거에 머물러 있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보았을 때 유독 마음이 아려오는 시간 속의 내가 있다. 지나간 사람을 돌이켜 보았을 때 유독 마음이 아려오는 사람도 내게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빠르게만 느껴지는 시간은 점점 나의 등을 떠밀고,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한다. 마냥 어리기만 했던 시절의 언젠가는 나에게도 올 것이라 생각했던 삶을 나는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들이 누군가 보기에는 그저 한 젊은 청년의 어리광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내가 살아 숨 쉬며 살아가는 지금은 나에게 그들이 풀어낸, 혹은 풀어가고 있는 답이 없는 끝없는 질문과도 같다. 당장 어떠한 질문을 마주했을 때 나에게 맞는 답을 적어 넣으면 새로운 질문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난다. 어쩌면 나의 삶에서 행복이란 정답이 없는 답을 써넣은 뒤 새로운 질문이 나를 찾아오는 과정 중에 나에게 맞는 답을 적어 넣었다는 안도감, 혹은 뿌듯함에서 찾아오는 그저 한 모금의 단물이 아닐까. 만약 이게 나의 삶에서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라면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나의 삶에 느껴지는 혼란은 지금 나의 앞에 있는 질문에 답을 적어 넣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나의 행복으로 가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이런 나의 욕심이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인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온전히 나를 위한 욕심이라면 나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산다면 그것이 내가 말하는 행복한 삶일 것이다. 반대로 위에서 말한 나의 욕심이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면 다른 이들이 부러워할 뿐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삶이 아닐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비싼 물건이나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 혹은 어떠한 것으로든지 누군가의 부러움이 묻어있는 시선을 느끼면 과거의 나는 그저 누구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당시 나의 앞에 다가온 삶의 질문들에 나만의 답을 적어 넣기 바빴다. 그때에만 마주할 수 있는 질문들을 바라보며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 그때에만 마주할 수 있는 질문들을 바라보지 않으며 아직 마주하지 않은 앞으로의 질문 때문에 오답을 적어 넣기 바빴다. 그때에만 마주할 수 있는 질문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때의 오답이 적힌 답안지를 나는 이제야 바라보고 고민한다. 이 또한 나의 행복으로 가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꽤 하는 편이다. 20대 후반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사람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은 독립적일까? 그저 어린 시절 가족, 부모님의 그늘 밑에서 함께 세월을 보낸 삶의 터전을 벗어나는 것이 독립적인 삶일까? 그저 사회의 일원으로 자신이 번 돈으로 자신의 앞가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독립적인 삶일까? 아직도 독립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마주한 질문 중 하나겠지. 왠지 언젠가 내가 이 질문의 답을 적어 넣는 순간에는 나의 삶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두렵다. 이 또한 나의 행복으로 가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최근 들어서 나의 삶이 도태되어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꽤 하는 편이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면 언제부터인지 사고 이후에 나의 한계를 스스로가 정해놓고 살아갔던 것 같다.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 치료 중이라서 나중에는 괜찮아질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 아직 치료 중인 나의 다리가 사고 전과 같아질 수 없음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다만 요 근래 내가 고민하고 있는 나의 삶이 도태되어 가는 이유는 아직 온전하지 못한 나의 다리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저 보기 좋은 핑계로 현실을 마주하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겠지. 나는 지금 언젠가 마주해야 했을 나 자신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주변 이들은 진심 어린 걱정만을 건네어 줄 뿐, 내가 어떻게, 어떤 길로 가야 할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나의 수많은 선택들로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 왔을 뿐이고, 앞으로도 내가 해야 할 수많은 선택들이 나를 데려다줄 것이다. 그곳에 서 있을 내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현명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욱 신중하고 현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나의 삶이 도태되어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이전의 나의 선택들은 그만큼 신중하고 현명하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나를 스쳐 간 수많은 시간이 아름답다 못해 헤어 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그때에는 그저 언젠가 지나갔으면 했던 순간이었을 터인데. 그때의 내가 마주했던 수많은 삶의 고민들 또한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삶의 고민들만큼 무거웠을 것인데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쩌면 그만큼 내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삶의 고민들은 더욱 깊어지고 무거워졌다는 것이겠지.
나의 무능함의 이유를 세상에 돌렸던 순간들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함께 변해가는 세상 속에 나 스스로를 가두었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 나에게 어떤 사람인지 묻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그저 내세울 것들을 찾기만 바쁠 뿐 ‘나’라는 사람을 쌓아 올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 내리기 바빴던 과거는 지금의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기 너무나도 좋은 순간들이 되어주었다. 아직 내가 가야 할 길은 너무나도 멀기만 하지만 그저 한 발 내디딘 사실은 나의 희망이 되었고 기쁨이 되었다.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순간은 스스로 만들어 낸 나의 희망과 기쁨이 안도가 되지 않게, 이 안도감이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나태하지 않게 만들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오늘 해가 저물고 하루가 밤의 고요에 잠기는 것처럼 끊임없이 나를 돌이켜보며, 끊임없이 사색에 잠기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