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로 첫 출근한 날 나의 업무는...
나는 대학교 졸업보다 약 2개월 먼저 취직을 하게 됐다. 내 인생의 목표였던 카피라이터로 첫 출근 날, 마침 경주 도투락 월드 눈썰매장 광고 촬영이 있다고 해서 나도 합류하게 되었다. 첫날부터 광고 촬영을 경험하게 되다니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경주에 도착했는데…
겨울방학이어서 눈썰매를 즐기러 온 가족들로 북적였는데, PD 님이 광고 촬영으로 양해를 구하며 입장객들을 썰매장 밖으로 몰아내 버렸다. 새하얀 설원의 썰매장이 순식간에 텅 비었고, 그 모습들을 구경하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지시가 떨어졌다. 눈썰매를 타라는 것이다.
그것도 아이를 앞에 태우고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모습으로 눈썰매를 타라고 했다. 아직 대학 졸업을 2개월 앞둔 내가, 갑자기 6살짜리 아이와 손잡고 눈썰매장에 온 엄마가 돼버린 것이다.
애 아빠 역으로는 같이 온 AE (Account Executive) 김대리님이 맡았다. 나는 카피라이터로 눈썰매장에 온 것이 아니라 아이 딸린 엄마 역의 광고 모델로 온 것이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눈썰매장 눈보다 더 하얗게 얼굴이 질려버렸지만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지금은 ENFP로 완전 외향형 인간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나는 내향형 인간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광고 찍는 걸 구경하느라 사람들이 썰매장 양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어디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부끄러움과 썰매장 공포가 뒤섞여 얼굴은 울긋불긋 가슴은 우당탕탕 요동치고 있었다.
얼떨결에 생전 처음 보는 아이의 엄마가 되어 눈썰매를 타고 내려왔는데, 나는 또다시 올라가서 눈썰매를 타야 했다. PD님의 오케이 사인이 나올 때까지.
나는 썰매를 탔고 다시 걸어 올라가서 또 썰매를 타고 내려갔고 다시 또 올라가서 타기를 반복.
눈썰매를 몇 번 탔는지 모른다. 열 번은 족히 넘게 탄 건 확실하다. 이제껏 내 인생 통틀어 눈썰매를 탄 횟수보다 그날 하루 탄 눈썰매가 더 많았다.
프로덕션을 끼고 있는 광고 대행사에서 일하게 된 탓인지, 덕분인지, 나의 첫 광고 모델 데뷔 이후에도 나는 종종 광고에 엑스트라로 출연하게 되었는데, 난 KBS 쓰레기 광고 캠페인 카피를 쓰고 또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CG 디자이너, AE 등 우리 회사 단골 엑스트라들도 광고 디자인을 하고, 광고주를 만나고, 간간히 TV 광고 속 엑스트라가 되었다.
나는 광고 회사에 들어가면 카피만 쓰면 되는 줄 알았다.
입사 첫날은 TV 광고 모델이 되었고, 다음날 내게 떨어진 업무는 바로…
4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