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들은 봄이 오고 발정기가 오면 짝을 찾으려 먼 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거나 혹은 좀 더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으려 많이 돌아다닌다. 그러는 과정에서 수컷들은 싸우다가 상처를 심하게 입는 녀석들도 있고 영역에서 쫓겨 나는 경우도 있다. 발정기 때는 예민해져서 녀석들의 얼굴 보기가 어려워진다. 심지어 급식소에 사료를 놓고 가도 아무도 안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빈 그릇이 되는 것을 보면 살며시 와서 먹고 간다는 거다. 어떤 날에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걱정이 되는 날도 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녀석들이 나타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너 살아 있었구나!!!"
나도 모르게 반가움의 함성이 터져 나온다.
"많이 먹어. 많이 먹어..... 그리고 잘 지내렴."
나는 살아서 다시 만난 냥이들이 무척 반갑고 감사한데 이 아이들은 알까?
살아있는 것이 이토록 감사하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어떤 내담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자신을 버릴 거였으면 왜 태어나게 해서 이토록 고통스럽게 살게 하냐고. 그 말을 듣고 오랫동안 가슴이 아팠었다. 그래 그렇다.
산다는 것은 고통의 연속일지 모른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 들면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네 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이 생각되지만 네가 태어났을 때 분명 너로 인해 기쁘고 감사했을 사람이 있어. 비록 그 순간이 너무 짧아서 우리가 기억할 수 없을지라도, 있어.
모든 엄마는 아이와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사이야. 그런 존재가 둘이 되면서 작은 생명은 세상에 태어나는 거거든. 엄마는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탄생 느낌을 평생 잊지 못해.
왜냐하면 원래 한 몸이라서...
그리고 자신의 몸의 일부가 분리되어 나오는데 그건 뭐라고 설명이 안 되는 아주 복잡하고 미묘하고 신비로운 경험이거든. 그렇게 마주한 생명을 엄마는 평생에 걸쳐서 사랑할 수밖에 없어. 비록 사랑을 몰라서 표현하지 못할 수는 있어도 그 기억은 몸에 남거든.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아. 다만 사랑의 모양과 방법이 변질이 되기는 해. 그래서 자녀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사랑을 못 받았다고 느끼기도 하지. 그렇다고 해서 네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야.
네가 태어나는 순간 넌 그 자체가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는 거야.....”
오랫동안 나는 그 내담자의 얼굴을 바라봤고 그 내담자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소중한 것임에 분명하지만 때론 슬픈 인사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