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소중하다고 느낀 것은?
정말 그럴까???
당신은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소중한 존재 일까?..... 이런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나는 아주 많이 했었다. 그리고 상담 공부를 하고 상담을 받으며 나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그 후로도 한동안 나는 사는 것이 슬픈 사람이었다. 산다는 것은 슬픈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인생은.
지금부터 10여 년 전 4박 5일 집단치유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사물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자연을 보며 마음속으로 자연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도로 한 모퉁이에 피어 있는 작은 꽃 몇 송이와 시들어 가는 몇 송이 꽃이 얼마 되지도 않는 흙더미에서 피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노란 꽃 주위에 하얀색 꽃잎들이 작지만 활짝 피며 나에게 미소를 띠는 것 같았다.
꽃을 유심히 바라보며 “안녕 꽃아 반가워.” 그리고 몇 줌 안 되는 흙에서 간신히 피어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한마디 더 했다. “ 힘들겠구나.”라고. 사실 기울어질 듯 가늘게 피어 있는 모습도 힘겨워 보였다. 그랬더니 정말 그 꽃이 내게 대답을 해왔다.
“나도 반가워. 그래도 난 살아 있잖아.”
그래도 살아있잖아라는 말에 숨이 멋는 것 같았다. 쓰러질 듯 가늘게 피어 있는 꽃이 그래도 살아 있다며 대답하는데 알 수 없는 뭉클함이 솟구쳐 왔다. 계속 그곳을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뭉클함이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걸으며 먼 곳의 산을 보았고 길을 따라 자라는 나무들이 넝쿨로 뒤덮여 있는 모습도 보였다. 산을 보아도, 힘들게 넝쿨 잎에 둘러싸여 있는 나무도, 힘들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들은 ‘그래도 견디고 있어. 그래도 난 살아 있는 거야’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환청이 아닌 내 무의식 속에서 나온 나의 말이겠지만 너무 뭉클했다.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꿈틀거렸다. 살아있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던 나에게 사는 것이 너무 버거웠고 힘들었으니 꽃과 나무들도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살아있는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이 큰 충격처럼 다가왔다.
그날 이후 존재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치유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물론 직장일과 집안일과 애들과 상담공부로 버겁게 헐떡이는 생활은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청소년 자살예방 지도자과정을 이수하고 아주 우연한 기회에 자살예방 강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강의를 하면서 나 스스로 자살보다는 살아있는 것, 생명의 소중함을 강사인 내가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자살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 상담사 초기에 청소년들을 상담하면서 자살을 생각하고 자해하는 청소년들을 상담하게 되었고 ‘넌 소중해.’ 라고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하듯 간절히 상담했었다. 절박했다. 상담실을 찾아오는 내담자들은 아무 자원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상황에서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되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래도 너는 소중하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래도 넌 소중해. 우리 살자. 지금 이 힘든 상황은 영원하지 않아. 조금만 참고 견디면 이겨낼 수 있어. 소중한 네 생명이 사라지면 난 정말 슬플 것 같아....” 이렇게 두 손 붙잡고 죽지 말자고 이야기했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시작된 이상 우리가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우리는 살아야 할 소중한 이유가 있다. 살아있음 그 자체가 소중하는 것이며,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소중하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야 한다.
그리고 살아 있는 생명을 지켜내야 한다. 우리 모두 다 같이.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 낼 수 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를 안다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견뎌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내 삶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