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예약해 둔 세브란스병원 소아 청소년과 초진일이 다가왔다.
처음 심리 상담 센터를 방문해 검사하고 치료를 시작했을 때부터, 확실한 진단을 위해서는 권위 있는 전문가의 진료를 받아봐야 한다고 판단했었다.
국내 유명한 전문의들의 예약을 다 걸어 놓은 상태였으나 대기하는 기간이 일 년은 기본이었다.
그나마 삼성의료원에 근무하는 간호팀장님이랑 아는 사이라 그곳의 예약은 비교적 빨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담당 의사를 만나보고 나서 아이와 너무 안 맞을 것 같아 그곳에서의 검사는 취소했었다.
센터 치료를 받으면서 아이가 눈에 띄게 좋아져서 내심으로는 나머지 예약을 취소하게 될 것을 기대하며 2년을 보냈는데, 아이 유치원 졸업식을 영상으로 진행하는 걸 실시간으로 참관하면서 나의 기대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아이는 쉴 새 없이 움직이려 하고 떠들려 하고 있었다.
유치원 선생님들이 그동안 아이를 얼마나 힘들게 케어해 오셨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취학에 앞서 아이 진단을 정확하게 받는 것이 시급했다.
예약한 세브란스 병원의 선생님은 방송 출연을 하실 정도로 유명한 분이셨고, 꽤나 직설적이고 냉정하게 진단하시기로 유명한 분이셨다.
진료를 가기 전, 잠을 못 잘 정도로 걱정이 되었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2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병원에 도착해 병실에 들어갈 때까지 너무나 긴장이 되어 손에 땀이 났다.
아이와 차를 타고 오면서 선생님이 질문할 내용들을 예상해서 연습을 시켰었다.
그런데 막상 선생님과 마주 앉으니 낯선 환경과 낯선 의사 선생님 앞이라 아이는 너무나 긴장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온화한 미소를 건네며 이것저것 질문하셔도 눈도 마주치지 않고 횡설수설 부정확한 답을 했다.
선생님이 최대한 아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난 최대한 개입을 하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었지만 지켜보는 내내 안타까울 뿐이었다.
선생님이 종이를 주시며 나무를 그려 보라고 하셨는데 아이는 귀찮다는 듯이 대충 선으로 찍 그어 놓은 그림을 그려냈다.
아이를 파악하는데 충분했다고 생각하셨는지 선생님은 아이에게 고생했다고 처음이라 너무 힘들었지? 하시며 아이를 위로하셨다.
사전 검사에서 나는 아이의 의심 증상을 ADHD와 인지 발달 지연이라고 기록했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그걸 기초로 해서 아이를 파악하는데 집중하신 것 같았다.
풀 배터리 검사를 해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겠으나 아이에게서 ADHD성향과 경계성 지능 내지 경미한 지적장애의 증상이 보인다고 하셨다.
엄마인 나로서는 아이의 산만함이 눈으로 보이는 큰 문제였기에 지적인 부분의 문제는 크게 인지 못하셨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둘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며 검사를 진행해 보자고 하셨다.
단순히 좀 늦다고만 생각했던 나에겐 너무나 충격적인 얘기라서 다음의 선생님의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주의력 검사를 받고 귀가하라고 해서 검사실로 아이를 들여보내 놓고 남편과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한 마디도 못하고 앉아만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는 힘들었는지 짜증을 냈고 남편은 선생님의 진단을 믿으려 하지 않고 자신이 2학년까지 글도 못 읽을 정도로 느린 아이였는데 중학교부터 전교권 아이가 됐다면서 느리게 발달하는 아이도 있는 거라고 아들도 그런 케이스일 거라고 했다.
나는 모든 게 혼란스럽고 아무런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이가 장애정도의 문제가 있는 거라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가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나는 이 아이를 감당해 낼 수 있을지 이런 걱정으로 머리가 아팠다.
또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는지를 아이의 임신부터 지금까지 지난날을 더듬고 있었다.
그렇게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인 상태로 잠도 못 자고 며칠이 흘렀다.
밤마다 아이를 재워 놓고 울고 또 울었다.
늦은 결혼으로 쉽지 않게 갖게 된 아이였고 많이 사랑하면서 키워 온 아이였는데 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를 두고 죽을 수는 없었다.
아이는 엄마인 나를 세상 전부로 알았다.
그런 아이한테 상심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보자.
벌써 절망하긴 이르다.
절망은 맨 나중에 해도 된다.
해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방전된 에너지를 조금씩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