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by 박드레

나는 원래 강사로 오랫동안 일을 했었다.

결혼은 나에게 맞지 않을 것 같아 할 생각이 없었고 일하다가 너무 과부하가 걸리면 그만두고, 여기저기 여행을 휙 떠났다가 돌아와서 또 일을 하고 그런 생활을 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40이 가까워진 나이가 되었다.

나는 항상 두 발을 공중에 떠서 외줄을 타는 것 같은 불안하고 위태로운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는데, 이젠 땅 위에 정착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개를 받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자신의 고향에서 사업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결혼과 동시에 지방으로 이주를 했다.

도시에서 줄곧 내 세계를 구축하고 살아온 내겐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낯선 곳에서 새로운 생활 터전을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너무나 단순한 생각이었다.

아는 사람 없는 지방 소도시에 정착한다는 것은 생각과는 달리 녹록지 않았다.

게다가 남편은 연애때와 달리 내 얘기에 관심을 크게 기울이거나 나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10분이면 닿을 거리에 부모, 형제가 거주하고 있었고, 전화 한 통이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역 사회 안에서 40년 넘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온통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외딴섬에 뚝 떨어진 것 같은 내 심정을 제대로 이해할 리 만무했다.

그것으로 인해 다툼이 꽤 일곤 했는데 조금 갈등이 크게 생긴다 싶을 무렵, 아이가 들어섰다.

나는 아이가 너무 반가웠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내 성향 때문이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3일 정도 되었을 때, 피가 비쳤다.

병원에 내원하니 유산끼가 보인다고 절대 안정을 요구했다.

완전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누워만 있어야 했다.

집에 와서 누워서 아이를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한 달여를 누워서만 지내고 나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잘 버텨준 아이가 너무 고마웠다.


아이가 뱃속에 있는 동안 나는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일방적인 내 얘기를 아이가 잘 들어주는 것 같았고, 남편에게서 느꼈던 서운함이 많이 사라졌다.

원래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아이를 갖고부터 더 많이 독서를 했다.

헤세의 책, 톨스토이의 책,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도 수시로 읽었고, 아이에게 들려줬다.

아이는 잘 자랐고, 나는 입덧 없이 잘 먹었다.

40주를 넘기면서 의사 선생님은 노산인 데다 아이가 좀 큰 것 같아 자연 분만이 힘들 것 같지만, 시도해 보자고 하셨다.

예정일보다 5일이 지나도 아이가 내려올 생각을 안 하자, 유도 분만을 시도해 보자고 하셨다.

금요일에 입원해서 촉진제를 맞았는데 자궁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반나절 시도를 하고서 담날 다시 시도를 했는데 아이는 내려와 있었지만 자궁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대로는 너무 힘들 것 같아 제왕절개를 하자고 내가 제안했다.

오후에 수술을 하고 아이를 만났는데 아이를 품에 안으니 눈물이 났다.

아이는 얼굴이 하얗고, 머리가 짙고, 잘 생긴 남자아이였다.

잘 먹고, 잘 자고, 울음이 짧은 아이였다.


자랄수록 활달했고, 사람에 대한 낯가림이 없었고, 방긋방긋 잘 웃어서 사랑을 받았다.

목도 빨리 가두고, 옹알이도 하고, 눈 맞춤도 잘했다.

아이가 기어 다닐 무렵이 됐을 때, 보통 아이들처럼 배밀이를 하지 않고 두 손을 앞으로 집고 두 다리로 지탱하며 날아가는 듯한 포즈로 낑낑거렸다.

당연히 배밀이를 하고 기어 다니다가 물체를 집고 일어서고 걸어야 하는데, 배를 땅에 붙이지 않고 늑대처럼 기어 다니려고 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두 발로 걸었다. 10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남편은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걷는다며 좋아했지만, 나는 그저 그랬다.

나는 아이가 보통 아이들보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무난하게 자라기를 바랐다.

살다 보니, 인생의 모든 단계는 천천히 한 단계 한 단계씩 경험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꼭 거쳐야 할 단계를 건너뛰게 되면, 언젠가 그 단계에서 체득했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 순간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힘들어지게 된다.


아이는 몸을 쓰는 일은 빨랐고, 말은 느렸다.

부모님은 아이가 세 돌이 지나자, 말이 너무 늦게 틔인다며 걱정하셨는데 정작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아이와 많은 놀이를 하고, 책도 많이 읽어주고, 활발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에 단지 본인이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면 알아서 하게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말은 느렸지만 말귀는 다 알아듣는 듯했고, 잠시도 엉덩이를 붙이지 않고 모든 것을 탐험하고 다녔다.

지인의 집에 놀러 가면 남의 집을 온통 헤집어 놓았고,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했다.

방문 후에 지인들로부터 아이가 세탁기에 리모컨을 넣어놨다든지, 쌀을 따로 담아 놓은 사각통에 세제를 부어 놨는데 정확히 1:1의 비율로 두 층으로 나뉘게 해 놨다고 신기하다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부산하면서도 자신의 관심이 꽂히는 대상이 있으면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였다.

맘에 드는 한 가지 장난감이 생기면 몇 시간을 그것만 가지고 놀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단계를 건너뛰려고 하는 것이나 끊임없이 움직이면서도 하나의 것에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는 행동 등이 ADHD의 증상이었다.

보통 아이와는 다른 면을 나는 아이의 기질이나 개성이라고 여겼다.

수많은 아이를 지도했던 교사였어도 엄마의 역할은 처음이었기에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5살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서 아이의 문제가 작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단을 받으면서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아이의 모든 행동이 신기했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내겐 더없이 소중했다.

비로소 허공에서 내려와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단단히 서게 된 것 같았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컸고, 태생적으로 항상 느끼던 불안한 감정이 옅어지고 있었다.

아이는 내게 평생 할 효도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른 면을 지녔어도 수용할 수 있었다.

다만, 앞으로 아이가 겪게 될 사회가 아이에게 큰 상처를 주지 않을까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나는 목표를 확실히 정했다.

아이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하고, 아이가 훗날 혼자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을 정도로 아이를 만들어 가자.

그거 하나만 생각하자.

슬픔과 자책은 아이한테 1도 도움이 안 되는 감정일 뿐이다.

그렇게 정하고 나니 맘이 편했다.












keyword
이전 03화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