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위기

by 박드레

검사를 받고 아이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게 된 것이 내겐 아이를 대하는데 큰 방향성을 제공해 줬다.

그동안 아이에 대해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꽤나 많아서 답답했는데 해소가 많이 되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놀 때에도 친구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그에 대한 피드백을 하기보단 맥락과 어울리지 않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내뱉을 때가 많았는데, 아이에겐 그게 어려운 부분이었던 것이다.

또, 자기가 몰입하고 있는 놀이에서 다른 친구들이 관심을 돌려 다른 놀이로 전환하길 원할 때 아이는 그 전환을 싫어했다.

아이로서는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다른 친구들의 놀이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걸 친구들에게 설명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 친구들 입장에서는 우리 아들은 같이 어울리려 하지 않고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래도 친구들을 너무 좋아하고 자꾸 관심을 보여 유치원 때부터 어울리게 된 친구가 둘 있었다.

엄마들끼리도 친해지다 보니 함께 놀러 가거나 집에서 모여 놀기도 했는데 아들의 성향을 오래전부터 봐 왔던 사이라 엄마들도 아이의 친구들도 그러려니 하고 적응하게 되었다.

유치원까지는 그 친구들이 있어서 외동인 아들이 그래도 놀 친구가 있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한 아이는 다른 학교로 배정되고, 다른 아이의 엄마도 카페를 차려 바빠지니까 같이 놀 기회가 없어졌다.

학교에 입학해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아이는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이가 친구들에게 엄청 관심이 많고 기웃거리는데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아이들 또한 아이를 약간 독특한 아이로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유치원때와는 다르게 이미 많이 성장한 아이들이 자신과 동등하고 비슷한 성향의 친구끼리 짝을 이뤄 어울리고, 심지어 남자아이들은 계급을 나눠서 같은 계급끼리 어울려 지내는 경향이 있다고 하셨다.

그렇기에 우리 아이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선생님이 순하고 배려심이 있는 아이들 몇과 지속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 계신다고 했다.


10월이 지나면서 아이가 친구들 몇과 이야기도 나누고 조금씩 친해지고 있고, 수업 시간에 집중도 비교적 잘한다고 이대로 학기 말까지 유지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나의 바람이 무참히 깨졌다.

11월 중순쯤 되자. 아이에게 또다시 주기가 찾아왔다.

아이가 수업 시간에 전혀 집중을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자꾸만 혼잣말을 한다는 거였다.

아주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은 아닌데, 아이 근처 여학생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약간 센 여학생이 한 명 있는데 아이의 그런 행동을 못 견뎌해서 자꾸 아이와 다툰다고 했다.

처음엔 아이가 지적을 당하면 미안하다며 자제하는 듯했는데 반복해서 항의가 들어오자 요즘엔 큰 소리로 화를 내고 심할 땐 주먹을 쥐어 흔들어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선생님이 주의를 주고, 알아듣게 말해 봐도 그때뿐이고 다시 혼잣말을 중얼거린다고 하셨다.

아이에겐 한계가 온 것 같았다.

학원선생님들, 센터 선생님도 아이의 집중력이 확연하게 무너졌다고 같은 말씀을 하셨다.

센터 상담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약물을 고려해 볼 때에 도달한 것 같으니 병원에 문의해 보라고 하셨다.

병원에 전화해서 아이 진료일을 당길 수 있는지 문의했더니 주치의가 너무 바빠 도저히 시간을 뺄 수 없다며 아이의 증세가 심하면 근처 소아청소년과 병원에 가서 얘기하고 약을 받아 복용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처방전을 가지고 다음 내원일에 오라고 했다. 참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왜 수업 시간에 혼잣말을 하냐고 했더니 자기도 모르게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 친구들이 수업을 방해받고 싫어한다고 하지 말라고 일렀다.

자기도 그러고 싶은데 잘 안된다는 아이에게 그럼 마음속에 있는 친구에게 아무도 듣지 못하고 너만 들리는 작은 소리로 말해 보라고 했다.

마음속의 친구는 '포포'라고 이름 짓기로 했다.

입을 아주 조그맣게 벌리고 소리는 내지 말고 대화를 해 보라고 하고 시범을 보였다.

아이에게 연습을 시키고 학교에 보냈다.

그런대로 아이가 조금 잠잠해진 것 같았으나 여전히 친구들로부터 아이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있었다.

아이는 부쩍 친구들이 자기를 싫어하고 자기도 친구들이 모두 싫다는 말을 했다.

특히 여학생들은 모두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12월이 되었을 때, 아이의 증상은 최고조에 달했다.

아직 방학까지는 두 달여가 남아 있었는데 이 상태로 버티기가 힘들것같아 선생님께 아이를 며칠 쉬게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은 당분간 아이가 4교시만 하고 급식까지 먹고 하교하는 것으로 하자고 하셨다.

아이에게 학교를 일주일간 쉬면 어떠냐고 물었는데 "학교는 가야지"라는 의외의 답을 들었다.

그래도 학교가 좋은 모양이었다.

그즈음 나는 대안학교를 알아보고 있었다.

아이에게 그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대안학교들은 너무나 먼 곳에 있었고, 그러자면 이사를 해야 할 판이었다.

어떤 판단도 서지 않았다.

이대로 아이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버텨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12월이 가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독서를 하고 아이와 나란히 누었는데, 아이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엄마는 어떤 초등학생이었는지, 할머니 말은 잘 들었는지, 공부는 잘했는지 그런 것들을 물어왔다.

그냥 아주 평범한 아이였고, 부모님 말씀은 잘 듣는 편이었지만 때때로 말썽을 부려 할아버지한테 혼나기도 했다고, 공부는 그냥 보통이었다고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런데 아이가 울먹이면서 말을 했다.

"나는 태어나지 않았어야 해"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는 네가 태어나서 너무 행복한데?"

"엄마는 날 많이 사랑해 주고 뭐든지 잘하는데 나 같은 아들은 없었어야 해."

아이가 울면서 그렇게 하는 말을 들으니 나는 너무나 슬퍼졌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진단명을 들을 때에도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었다.

내가 그렇게 노력해 왔는데도 아이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고,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을 만큼 불행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모든 것이 허물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아이 앞에선 눈물을 보인적이 없었는데 눈물이 마구 흘렀다.

고동안 나도 너무나 울고 싶었었나 보다.

눈물이 너무 나서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한참을 울었다.

나중엔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작은 손 하나가 들어와 화장지를 뜯고 있었다.

아이가 화장지를 손에 쥐고 내 눈물을 닦아 주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안고 통곡을 했다.

아이는 맑은 눈으로 날 안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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