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기간 중에 나는 아이와 두 번의 제주도 살이를 했다.
여름 방학엔 한 달을, 겨울 방학엔 보름을 제주도에서 살았다.
남편은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이라 내내 함께 있진 못했지만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내려와 우리와 있다 가곤 했다.
여름에 처음으로 한 달 살이를 했을 땐, 언니가 조카와 놀러 와 같이 있다 가기도 하고 해서 사실 둘이만 온전히 지낸 기간은 열흘 정도 되는 것 같다.
숙소에서 바다가 보이진 않았지만 차로 10분 거리에 바다가 있었다.
우린 날이 좋을 땐 무조건 바다로 나갔고, 날씨가 좋지 않을 땐 실내시설 위주로 돌아다녔다.
나도 아이도 바다를 좋아했다.
바다 앞에 서 있으면 엄청난 파도가 밀려올 때,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친 파도 앞에 나약한 나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 파도를 막아서고 싶어지는 때도 있었고, 그 파도가 나를 덮쳐 산산이 무너지게 한다 해도 그게 그렇게 억울할 거 같지가 않았다.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둘이 서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아이는 모래사장에다 낙서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그러면서 놀았다.
날이 더워지면서 가까운 해수욕장을 시작으로 섬 곳곳의 해수욕장을 돌면서 해수욕을 했다.
제주도의 바다는 잔잔하고 수심이 얕은 곳이 많아 아이가 해수욕을 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그렇게 한 달을 동서남북 바다를 종횡무진하며 돌아다녔다.
둘이만 있어서 심심하지 않을까 했는데 돌아다니느라 심심할 틈이 없었다.
저녁마다 다음 날 일정을 함께 계획하고 같이 그곳을 찾아 떠나는 것에 아이는 신나 했다.
그때쯤, 아이가 가장 몰두해 있던 대상이 동물이어서 동물 체험이 있는 곳은 어디든 갔다.
허허벌판 이상한 곳에 엄청 큰 컨테이너 몇 개 가져다 놓고 파충류를 키우는 아저씨가 있는 곳에 가서 진짜 징그럽고 커다란 뱀을 목에 걸어 보기도 했다.
코끼리, 낙타 트래킹도 하고, 돌고래나 동물 쇼들도 보러 다니고, 말을 타러 가기도 했다.
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초콜릿이나 피자 만들기 체험도 신청해서 같이 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면서 아이가 많이 안정이 되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맘껏 할 수 있으니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되는 것 같았다.
나도 그 생활이 좋았다.
그동안 나도 실은 많이 지쳐 있었던 것이다.
밤마다 둘이 침매에 누워 하루 일과를 나누고 다음 날 계획을 이야기하며 잠드는 게 좋았다.
그렇다고 마냥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펜션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일기도 쓰고, 수학 문제집도 풀었다.
2학기 준비에도 소홀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보낸 여름의 생활이 좋아서 겨울에도 떠났다.
설이 끼어 있고 가족행사가 있어서 한 달 살기엔 무리였고, 겨울이라 돌아다닐 곳도 많지 않을 것 같아서 보름살이를 했다.
여름엔 동쪽에 가까운 남쪽에서 한 달을 살았는데 이번엔 서쪽에 가까운 남쪽에서 보름을 지냈다.
제주도는 여름과 겨울의 모습이 많이 달랐다.
여름이 역동적이고 활기찬 섬의 모습이라면, 겨울은 차분하고 거센 느낌을 주는 섬의 모습이었다.
춥진 않았지만 바람이 심해서 바닷가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바닷가가 가까운 곳에 머물렀는데 바다는 날씨가 정말 화창할 때만 거닐었고, 카페에 많이 가 있었다.
그 사이 아이의 관심은 동물에서 다른 것으로 옮겨 갔고 여름에 가지 않았던 곳 위주로 돌아다녔다.
각종 박물관을 많이 돌아다녔다.
펜션 옆의 귤 밭에서 귤을 따기도 했고, 숙소에서 걸어서 바닷가 산책을 하기도 했다.
두 차례 방문객이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여름보다는 할 게 없었다.
정적인 활동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이는 좋아했다.
이젠 길도 척척 알았고 나도 제주도가 익숙해졌다.
두 번째 살이에는 노하우가 생겨서 지내기에 더욱 편했다.
아이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몸과 마음이 성장해 갔다.
다른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일 년 사이에 내가 느껴질 정도로 아이의 모든 영역이 성장해 가고 있었다.
생각의 폭과 깊이도 커져 가고 있었다.
처음 아이가 입학할 때 가졌던 걱정과 불안함이 많이 옅어졌다.
아이의 성장이 그만큼 크게 느껴졌고, 왠지 모르게 아이가 잘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섣부른 기대도, 섣부른 근심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도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