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1학년에 만나게 되는 담임의 영향은 아이의 첫 학교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내 아이가 첫 담임 선생님으로 이 분을 만나게 된 것은 천운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입학 전, 기초조사서에 아이가 지니고 있는 문제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기재했다.
그래야 아이를 파악하기에 수월하고 아이에 대해 선생님이 이해하기가 쉬울 터였다.
입학 다음 날,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에 대해 더 면밀하게 알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그동안의 치료 과정과 대학 병원 예약 내용을 말씀드렸다.
특히 아이의 집중력 문제와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부분에 대해 세세하게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아이를 잘 살피겠다고 너무 걱정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이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입학을 했기에 학부모들의 학교 출입 자체가 금지였다.
학부모들은 교문 밖에서 아이들 하교를 지켜보다가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을 인솔해서 출입문까지 데리고 나오면 아이를 받아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아이의 선생님은 첫 일주일 동안 아이 손을 잡고, 3층에서부터 계단을 내려와서 아이에게 엄마가 보이는지를 확인한 후에 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하교를 시키셨다. 내 아이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지켜본 일 년 내내 선생님은 아이들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주시면서 아이를 보내셨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였고 섬세하고 자상하게 생기신 분이셨다.
2학기에 이르면서 아이들 하교 시에 출입문까지 내려오지 않는 선생님들이 늘어났지만, 그분은 종업식 하는 마지막까지 아이들 하교를 배웅해 주신 몇 안 되는 선생님이셨다.
아이는 편식이 심하고 젓가락질이 능숙하지 못했다.
그런 데다가 산만하다 보니 다른 아이들에 비해 먹는 속도가 느렸다.
집에서는 잘 먹는 편이었으나 학교에서는 반 정도 먹고 오는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가고 나서도 혼자 급식실에서 앉아 있을 때가 많은 모양이었는데, 영양사 선생님이 수업 준비해야 하고 다른 학년들 와야 하니까 얼른 먹으라고 재촉을 할 정도였다.
선생님은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면 그걸 먼저 먹어야 하는데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먹기 싫은 음식부터 손을 대고 결국엔 좋아하는 것도 다 먹지 못하고 일어선다고 안타까워하셨다.
집에서도 젓가락 사용과 식사 규칙이나 이런 것들을 지도해서 먹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하셨다.
또, 아이가 수업 시간에 마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매번 교과서에 표시를 하고, 포스트잇을 붙여서 집에서 해 올 수 있게 하셨다.
한글도 뗐고, 기본 숫자도 아는 아이라 수업을 따라가는 것에는 크게 무리가 없었는데 3교시 이후부터는 집중력이 현격히 떨어지다 보니 소화하지 못하고 가져오는 것들이 있었다.
집에서 시켜 보면 또 곧잘 했다.
그렇게 일 년 내내 선생님은 아이가 뒤처지지 않게 섬세하게 신경 쓰셨다.
일주일에 평균 두세 번 정도는 선생님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있었던 일이나 부족한 부분을 알려 주셨고, 나는 그것에 대해 피드백을 해서 아이를 지도했다.
아이한테 번아웃이 왔던 때는 거의 매일 연락을 했던 것 같다.
또 아이의 교우관계나 변화 등에 대해 조금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는 꼭 전화를 주셨다.
나로서는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오는 통화 요청이 사실 굉장히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였는데, 어느 때부터 그걸 느끼셨는지 전화 초반에 "어머님, 별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들으세요."라고 먼저 나를 안심시키실 때가 많았다.
선생님은 나쁜 것만 전달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생긴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말씀해 주셨다.
미니북이라고 1, 2학년 때 A4 용지를 자르고 접고 붙여서 8면의 작은 책을 만들어 동시도 적고 동요 가사도 적는 활동이 있었는데 아이가 그걸 못하니까 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연습을 시키시고 복사를 해서 집에서도 시키라고 보내셨다.
선생님이 샘플로 접어 보내신 것도 있었는데 내가 해도 어려웠다.
대충 접어 보냈는데 다음날 다시 그 방법이 아니라면서 자세한 설명서를 보내 주셔서 집에서 다시 해서 보내 드린 적도 있었다.
아이가 혼자 그것을 숙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결국 혼자서 그걸 접을 수 있게 되었다.
4교시하는 날인 걸 깜빡하고 늦게 학교에 가보니 선생님이 아이 손을 잡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날도 있었다.
아이한테 물어보니 엄마가 안 보여서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오셔서 엄마를 같이 기다리자고 하셨다고 했다.
아이가 친구들과의 문제로 갈등이 생겨 상대 친구 부모로부터 항의 전화가 오고 했다는 얘길 들었을 때, 아이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내 멘털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에 너무 힘들어서 " 저도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라고 문자를 보냈던 때에도 선생님은 흐트러짐 없이 어머님도 많이 힘드시겠다며 그래도 아이를 위해 같이 힘내보자면서 나를 위로해 주셨었다.
아이가 너무 밝고 순수하며 악의가 전혀 없고, 친구와 학교를 너무 좋아하는 아이라서 반드시 잘 적응할 수 있다고 힘을 주셨다.
자신도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를 둔 학부모라서 너무나 나의 상황에 공감이 가고 꼭 아이를 잘 진급시키고 싶다면서 세심하게 아이를 보살펴 주신 분이셨다.
사실 2학기 말에 가까워지면서 나는 아이가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고, 가장 가까운 대안 학교를 알아보고 있었다.
대안 학교가 학습적인 부담이 적고 아이들도 많지 않으니 아이가 다니기엔 더 나을 것 같았지만, 어린 나이에 벌써 제도권 밖으로 멀어지면 성인으로 성장했을 때 일반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힘들어질 거라는 우려 때문에 망설여졌다.
그런 고민이 있어서 선생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은 아이는 일반 학교에서 적응할 수 있는 아이니까 그냥 여기서 적응시키라고 하셨다.
지금보다 분명히 성장할 가능성이 큰 아이라고 단언하셨다.
집중력이 문제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려고 하고, 뭐든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아이이니 치료 꾸준히 받고, 사회성 훈련도 병행하면 반드시 나아질 수 있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그 말씀이 맞았다는 것을 정확히 일 년 후에 확인할 수 있었다.
일 년 간의 우여곡절을 함께 겪으면서 또 함께 아이를 위해 모든 노력을 함께 해 오면서 나는 선생님께 깊은 감사와 더불어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존경심을 지니게 되었다.
요즘 교사들에 대해 월급쟁이 이상의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를 많이 접했었는데, 나이가 많지 않은 분임에도 그분은 참교육자셨다.
1학년이 종료되기 며칠 전 아이를 데리러 학교를 방문했을 때, 선생님이 두꺼운 외투를 입고 나오셨다.
그러더니 학교 안으로 들어오라고 나에게 손짓을 하셨다.
아이에게 운동장 놀이터에 가서 놀고 있으라고 하시면서 엄마와 얘기할 게 있으시다고 하셨다.
나에게 선생님이 어머님에게 이렇게 말씀드리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하시며, 그래서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나왔다고 하셨다.
아이는 2학년에 올라가서 잘할 거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이였을 가라며 방학 동안 즐겁게 보낼 수 있게 하라고 하셨다.
힘들었을 때도 있었지만 아이가 너무 잘 버텨 줘서 대견하다고 하셨다.
급식은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 먹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어머님, 사실은 제가 일 년 내내 점심을 안 먹었어요."
아이한테 급식 먹는 루틴을 만들어 주고 지켜보다 보니 드시지 못했다고.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왈칵 났다.
"선생님, 이제 꼭 점심 식사하세요...
제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것 아시죠?
선생님을 만나서 제 아이가 학교를 다닐 수 있었네요. 선생님 아니었음 저 포기했을 거 같아요."
내가 울먹이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자 선생님도 눈시울이 붉어진 얼굴로 말씀하셨다.
"저도 어머님께 많이 감사해요. 많이 노력해 주셨고, 힘들어도 꿋꿋하셨잖아요. 처음부터 너무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아이 상태를 말씀해 주셔서 돕고 싶었고, 꼭 잘 적응시키고 싶었어요. 절 만난 것도 아이의 복이죠. 그리고 아이가 너무 잘 생겼잖아요."
선생님의 농담 어린 말씀에 울다가 웃었다.
"어머니, 꼭 건강하셔야 해요."
"선생님도요."
그렇게 운동장 한 편에서 둘이 눈물을 닦으며 인사를 나누었고, 아이는 방학을 맞게 되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선생님을 잊지 못할 만큼 그분께 은혜를 입었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평범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 은혜에 보답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