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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추자 Jan 17. 2024

온라인 강의에 대처하는 아내의 자세

어지간한 OTT보다 재밌는 아내 관찰기

사이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내는 종종 라이브 강의나 회의를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입시설명회나 오리엔테이션 같은 행사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데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거나 진행되는 상황들을 보는 것은 제법 재밌다. 평소와는 딴판인 겉모습과 목소리가 아주 꿀잼이다.


서재에 들어가 문을 닫고 혼자서 진행하지만 거실에 앉아 있노라면 뭐라 떠드는지 다 들린다. 공짜로 양질의 강의를 들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아내가 교수님이 된 득이라 하겠다.


준비과정부터 제법 시끌벅적하다. 보통의 외출할 때와는 다른 온라인 송출에 적합한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단 입술은 보통 빨간색이다. 립스틱 색깔이 뭐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온라인 강의를 할 때는 입술이 벌겋다. 그리고 속눈썹을 뽑아 올린다. 요상하게 생긴 도구로 눈썹을 찝은 다음 땡겨 올리는 모습을 봤다. 얼핏 눈알을 빼는줄 알고 식겁했다. 눈두덩에는 뭔지 모를 황금색 가루들을 처발처발 발랐다. 화사해진 그녀의 얼굴이 낯설지만 이뻐진다.


의상은 단정한 것을 주로 입는다. 그런데 웃옷만 챙긴다. 계절에 따라 여름엔 블라우스 또는 얇은 자켓을 많이 입더니 겨울엔 트위드 자켓이라는 것을 자주 입는다. 유행이란다. 상반신만 보면 영락없는 청담동 며느리 룩이다. 단정하고 단아하고 참하다. 하의로 눈을 내리면 상황을 달라진다. 어제도 그제도 입고 있던 그 추리닝 바지다. 무릎이 튀어나올 때로 나온 그 추리닝 바지, 친숙하고 정답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에 내장돼 있는 카메라를 보며 밝은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녀, 얼굴 근육을 이리저리 풀고 있다. 아내는 의자에 앉을 때도 가부좌를 틀고 잘 앉는데 역시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게 편하다니 그러려니 한다. 무튼 이색적이다. 헤어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을 한껏 받아 안은 헤어에 공들여 한 메이크업. 단정한 정장 상의를 차려 입고 하의는 잠옷바람.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녀 밑에는 충성스런 노령견 쪼매니가 잠들어 있다.


서재 문이 닫히고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학우님들 안녕하세요~ 잘 들리시죠? 끊김 없나요?”


목소리톤이 평소보다 두세 단계는 올라 간다. 콧구멍도 넓어진것 같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림 한 장 그려 본다.


오늘은 무슨 얘긴가 했더니 새학기 들어올 새내기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었다.

그 학교의 한 학기 등록금이 얼만지 알게 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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