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점선면 Apr 08. 2024

문학소년 성장기

셰익스피어를 좋아하시나요?

이李씨(이하 이): 이 소설을 읽다가 놀란 지점이 두 군데야.

하나는, 표지만 보고 현대물인 줄 알고 읽다가, 소설의 배경이  1968년이라는 걸 알게 된 시점.

또 하나는, 윔피키드 Wimpy Kids 시리즈의 그레그 Greg처럼 사춘기 소년의 엉뚱하지만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사회, 역사, 전쟁, 가족, 신의, 우정과 같은 꽤나 묵직한 주제들이 한 땀 한 땀 섞여 들어가면서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느끼게 될 때.


점선면(이하 점): 주인공이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 문학소년인가 본데, 그에게 1968년이라는 게 큰 의미가 있나?


: 소설은 9월부터 시작해. 미국에서는 새 학년이 시작되지. 주인공 홀링 후드후드 Holling Hoodhood는 막 7학년이 되어서 새 담임선생님을 만났는데, 왠지 선생님이 자기를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인상을 받아. 일종의 투사일 수도 있는데, 수요일마다 종교행사를 한다고 학급의 반은 유대교회당으로 학급의 반은 가톨릭 성당으로 가는데, 유일한 개신교도인 홀링이 혼자 학급에 남게 되어서, 선생님과 둘이서 시간을 보내게 되거든.

이 정도까지 이야기가 진행될 때도, 소설의 시대배경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읽고 있었어.


그런데, 둘이 남게 된 상황에서 선생님이 홀링에게 시키는 일들이 조금 괴이했단 말이지. 이래도 되나 싶게.

급식실에서 크림빵 받아오기. 쥐 우리 청소시키기. 온 학급의 칠판먼저떨이 가져다가 먼지 떨게 하기.


베트남에서 온 학생  마이 티 Mai Thi에게 급식실 영양사가 호되게 쏘아붙이는 일쯤에 가서야, 어? 이랬단 말이지.

1968년은 미국이 베트남과 한창 전쟁 중일 때였어.

수요일 오후마다 혼자 남은 홀링을 책임져야 하는 베이커 선생님도 Mrs. Baker 베트남 전쟁터로 남편을 보냈고. 소설의 중후반부 이곳저곳에 전쟁 중인 미국인들이 겪는 심리적인 고통도 담겨있어.


: 홀리의 문학적 여정이 베이커 선생님과 관련이 있을까?


: 책 뒤편에 작가의 사진이 실려있거든. 대학교수인데, 청소년 독자를 위한 책을 많이 썼고 수상했다고 소개되어 있어. 내 개인적인 생각은 홀링은 작가의 분신과 같지 않을까 생각했어. 중학교 1학년인 남학생이 문학작품_여기서는 보물섬 The Treasure Island_을 자기 일상에 비추어 곱씹어 본다는 게 보통은 아니잖아?

베이커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도 홀링은 소설 속 인물들을 불러내어 상상하고, 기억하는 인물이었으니, 담임선생님의 촉에도 그런 문학적 감수성과 잠재력이 감지되었겠지.


선생님은 괴이한 심부름들을 시키다가 어느 날부터 홀링과 셰익스피어 희곡을 같이 읽어나가기 시작하거든.

그리고, 이것이 홀링에게는 인생의 새로운 도전과 도약의 기회가 되었어. 실제 극화하는데 참여해서 요정 아리엘 연기도 하고, 셰익스피어 희곡에 담긴 인간사 희로애락의 의미를 자기 삶 속에서 체득하며 깨우쳐 나가게 되거든. 많은 작가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애정을 자신의 글에 갈아 넣는 걸 보면, 이 소설의 작가도 셰익스피어의 열렬한 팬인 듯.


베이커선생님은 홀링에게 셰익스피어 문학의 세계로 이끈 인도자였으며, 책의 후반부 홀링과 함께 지역의 건축물들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건축가로서 가업을 이어받을 운명을 받아들인 홀링에게 건축물은 단순한 건물 이상의 무엇이라는 영감을 선물해주기도 해.

그리고, 홀링은 그녀가 자기의 학생들에게 섬세하게 배려해 준 일들과 교사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을 눈치채며, 자기 앞에 서서 수업을 하는 교사 너머의 한 인간으로서 베이커 선생님을 받아들이고 존경하게 되고.


: 소설이 마치 사제동행 성장소설 같은 느낌이네.


: 좋은 요약! 소설 마지막,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인데 베이커선생님반만 산으로 캠핑을 떠나. 먹을거리 하며 필요한 기구들은 다 아이들이 등짐으로 나눠가지고. 침낭 속에서 자던 아이들이 한밤중 폭우에 온통 물에 흠뻑 젖고, 다음날은 맑게 개인 하늘 아래서 계곡 폭포 근처에서 자유수영. (으, 안전요원도 없다고!)

캠핑의 마지막 날, 홀링은 아무도 몰래 먼저 일어나 물가로 가서 하늘에 떠오르는 해를 바라봐. 그리고, 환상인 듯 환영인 듯, 그가 보는 것들을 서술하는데, 여기 홀링의 성장이 한 단계 뛰어오르는 상징이라고 생각해.


: 마지막, 이 씨가 소설에서 가장 아끼는 부분이 있다면?


: 홀링이 여자친구와 냉전 후 화해하는 부분, 홀링이 가출한 누나를 되찾아 오기 위해서 돈도, 시간도 헌신하는 부분. 베트남 이민자 학생 마이타이와 영양사 선생님이 서로를 수용하고 품어주게 되는 부분.


홀링의 재치만발 엉뚱 상상도 글을 재미나게 하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아름다운 가치들이 보석처럼 여기저기 박혀있어. 미국청소년 필독서 리스트에 포함되었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될 소설이야.


오늘은 책은 'The Wednesday Wars'입니다. 우리말 번역서 제목은 '수요일 전쟁'.

하마터면 빠뜨릴 뻔했네요. 영문판 표지에 나오는 쥐와 관련된 일화가 참 재미있습니다. 저는 내내 웃었지만, 홀링은   죽을 뻔하다 살게되거든요.


매거진의 이전글 감옥에서 온 쪽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