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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Jun 24. 2024

엄마라는 개연성

소설 fingersmith_영화 아가씨 

이李씨(이하 이): 영화 '아가씨'가 개봉되고 한창 이슈가 될 때, 원작이 영국소설이라길래 궁금해서 읽었으니, 그때가 2016년. 벌써 8년이 지났네.


휘몰아치는 듯한 사건전개와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어 나의 빈약한 상상력의 허를 찌르는 작가의 미친듯한 상상력은 어디서 오는가 감탄했었던 기억은 여전히 남아있어.


영화 개봉 이후로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으므로 영화를 논할 자격은 없으나, 원작 소설에 대해서만큼은 말할 수 있으니, 오늘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


"엄마"


이 단어를 생각해 본다.


소설의 여주인공 수 트린더 Sue Trinder와 모드 릴리 Maud Lily는 둘 다 천애 고아야.


모드는 부유한 귀족가문의 딸이지만 가족의 어느 누구 하나 엄마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

단 하나, 엄마가 묻혀 있는 묘지만 알뿐.

그래서, 엄마의 묘지로 가서, 자기에게 아무 기억도 남겨놓지 않은 엄마의 존재를 상상해 보고 그리워하지.


수는 런던의 뒷골목에서 자랐어. 버려진 아기들, 아기를 기를 수 없어 위탁을 해야 하는 궁핍하고 추한 생활을 하는 여자들의 아기들을 모아 기르는 곳, 거기로 흘러들어온 존재지. 이곳의 최고책임자는 석스비 부인 Mrs.Sucksby 이야. 수는 이곳에서 자라났고, 십 대가 되면서 석스비 부인을 도와 아기들을 돌보고 런던 뒷골목에서 살아남기 위한 소매치기 기술을 숙달하고 있었어.

수의 엄마는 석스비 부인의 소굴 창문에서 잘 보이는 곳에서 사형을 당했지.


엄마를 모르고, 엄마 없이 자란 두 여자.


한 명은 귀족가문의 아가씨로, 한 명은 런던 뒷골목 소매치기로 자랐는데, 어느 날 둘이 만나게 되는 거지.

각자 다른 계획을 가진 채로.


둘 사이를 오가며 거짓과 감언이설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남자가 있는데 바로 젠틀맨이라 불리는 리처드 리버스 Richard Rivers. 그의 목표는 하나, 모드 릴리와 결혼해서 그녀가 상속받는 유산을 가로채는 것.

그에게 사랑은 우스운 헛짓거리이지만, 모드 릴리의 돈을 얻어내기 위해서 거짓과 위선은 진실한 계략이었어.


소설에서 시점이 이동하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이야기의 매력과 긴장이 극대화돼.

첫 번째는 수, 다음은 모드, 그다음은 수.


각자 처한 입장에서 상대방과 자신의 계획을 생각하는데, 여기서 보이는 이질감, 착각, 혹은 더 앞서나간 추측과 계략을 독자 입장에서 알게 되니까, 과연 이 것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초집중하며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는 거지. 젠틀맨에 대한 수와 모드의 판단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일부러 보여주는 것과 숨기는 것 사이 미묘한 차이들로 아슬아슬한 느낌을 만들어 내고.


점선면(이하 점): 영화는 두 여주인공이 젠틀맨의 농간 속에서도 서로 사랑하는 연인으로 발전해 간다는 설정인데, 소설도 그런가?


: 작가는 자신을 레즈비언이라 공개한 여성이야.

소설 속에서도 수와 모드는 각자 험악한 인생에서 대반전을 이루고 다른 삶을 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만남을 거듭해 가면서 인간적인 연민에서 우정 비슷한 감정으로 결국은 사랑의 감정으로 발전하지.


소설에서도 둘의 성애장면이 있어. 그러기에 한때 사랑을 나누었던 대상에게서 날아온 배신의 감정은 더 날카롭우며 육중하게 서로를 때리는 거지.

적과의 동침이라고 해야 하나.

동상이몽이라고 해야 하나.


사랑의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맞지만, 끝까지 서로에 대한 헌신과 희생까지는 믿어지지 않는. '나는 그러한데, 너는 과연 그런가?'라는 의심에서 '나는 랬는데, 너는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는 확증된 배신감으로까지.


: 이 씨가 제목에 엄마를 언급했잖아. 초반에 두 주인공이 엄마 없는 공통점을 가진 걸 소개한 것 말고도 뭔가 있을 것 같아.


: 영화와 가장 다른 점이지 않을까 싶어.

젠틀맨 계략의 시작. 그리고 그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까지.

소설에는,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엄마의 존재가 있어.

다 말해버리면, 행여나 이 소설을 읽게 될 분들에게 너무 심각한 폐를 끼치는 것이니 여기까지만 말할게.


모드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해서 무려 17여 년간의 긴 세월을 살아낸 '엄마'가 그 시간 동안 품어온 열망 하나, 자신의 딸. 그녀의 행복.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이에게서 권리를 탈취하기. 속이기.


마지막 대반전의 대목에 가서는, 가슴이 방망이질 치는 기분이었어.


'아가씨' 영화에서는 아가씨와 국희가 협렵하여 빌런인 삼촌과 신사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고, 두 사람의 자유와 행복을 찾아가는 결말인 것 같던데, 소설은 그 결말에 '엄마'가 있었고, 수와 모드는 두 사람의 특이한 인연, 그 진실을 알게 되지.


그래도, 둘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는 걸로.  


특이하지?

레즈비언이라 함은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으로,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의 큰 역할 '출산과 양육'이라는 엄마로서의 역할과는 거리가 먼데, 그래도 자신을 세상에 존재하게 해 준 여성, 딸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엄마'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니. 작가 말이야.


: 이 세상 사람 중 '엄마'의 존재를 거치지 않고 태어난 이가 누가 있을까? 얼마 전에 읽었던 '전갈의 소년 the House of Scorpion'처럼 소의 배속에서 자라나는 인간은 아직 만들어지진 않았고, 시험관 아기라고 해도, 결국 엄마의 자궁에서 자라잖아. 사람이 존재하는 한, 모성 motherhood은 끊임없는 소재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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