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내려오고 지금껏 나의 아침 식사는 유자차 큰 머그컵 한잔, 견과 한 봉지, 사과반쪽이다. 오빠도 아침식사로 밥, 반찬을 챙겨 먹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남은 사과반쪽을 조각내 부엌탁자에 올려놓으면 그것과 다른 주전부리로 알아서 아침을 해결했다.
출근을 하면서도 매일같이 남편아침밥상을 차리며 밥에 반찬을 만들어 오던 나로서는, 이런 아침은 오히려 휴식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도 아침에 뜨거운 유자찬 한잔 놓고 호록 호록 뜸 들이며 마셨다.
그리고, 갑자기 몰려온 궁금증.
이 유자청은 어디서 온거고?
집 뒤편으로 커다란 유자나무가 있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부터 있었다는 그 나무는 내 어린 시절에는 신비롭고 무서운 존재였다. 축축한 뒷마당 텃밭 한가운데, 굵은 나무줄기가 불뚝불뚝 꿈틀대며 땅속으로 뿌리내리고 있었고, 초록빛 이끼가 뒤덮인 데다가 높기는 얼마나 높은지, 나무발치에 서면 하늘은 보이지 않았고 온통 푸른 나뭇잎과 이리저리로 뻗어나간 가지만 시야에 가득했다. 그 느낌은 어린 시절의 착시가 아니어서, 실제로 유자나무는 집 지붕보다도 높이 솟아있었고 마당에 들어서면 집채 뒤로 유자나무의 위용이 구경거리가 될만했다.
유자가 익어가면, 몸놀림이 날래고 나무 타기를 어려서부터 잘했다던 어머니가 이 가지로, 저 가지로 옮겨가면서 유자를 땄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던지는 유자를 받는 역이었는데, 내가 이 광경을 눈여겨 오래 살핀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철이 되면, 어느새 나무의 유자가 컨테이너로 옮겨져 있었다.
결혼하고 명절에 아이들과 같이 친정집에 갔는데, 느낌이 휑했다.
정확한 연도는 모르겠으나, 집 뒤 밭에 유자나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고, 남은 귤나무 몇 그루, 과채용으로 땅을 일궈 이런저런 푸성귀들이 자라고 있었다.
'어떵 영 허연? 유자낭은 어디 가부렀수가?'
'그거 멀라 죽어가부난 유자가 잘 열도 안허고. 게난 그냥 쫄라부렀져.'
'예? 아이구, 그 큰 낭이 죽어부러서 마씨?'
'모르켜. 무사산디. 느네 아버지 가 분뒤로 낭도 시들어가는거 닮안게, 낭도, 땅도 기운이 다 헌 모양이주.'
깊은 애정이 있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내 기억 속 시골집 풍경의 한 자리였던 유자나무 빈자리가 허전했다. 신성한 기운이 감돌던 나무가 있던 자리에 풀줄기들이 점점이 박혀있는 것이 왠지 서글프기도 했다. 유년의 신비롭던 기억 하나가 클릭, 삭제된 기분.
대신, 유자나무는 새로운 정체로 부활했다. 시인 오계아 님의 온라인 문학동호회 닉네임으로.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말라죽어간 유자나무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면서 어머니의 일부로 재탄생시켰다. 첫 글모음집 '명월리 팽나무 아래'가 2006년 출판되었다. 그 이후 책도 꾸준히 읽고, 도서관 독서모임에 나가고 시 쓰기 공부도 하면서 글쓰기를 읽히고 나니, 부족한 부분들이 보여서 어머니는 다시 또 욕심을 내셨다.
이전의 글은 세상살이 하소연 정도였고, 진정한 에세이는 아니었으니, 자전에세이를 내겠다는 포부로 자서전을 고쳐 썼다. 그리고 2013년 네 번째 책을 출간했다.
제목은 '유자나무의 노래'!
오빠에게 유자청의 출처를 물었다.
다른 쪽 귤밭에 유자나무가 있다고 했다.
'응? 어디?'
집 왼편 귤밭에 커다란 감나무가 세 그루 있는데, 그 감나무 뒤편에 있단다.
'그럼 이 유자청도 우리 집 유자로 만든 거?'
'어. 지난겨울에 어머니랑 같이 따서, 같이 만든 거지.'
제주도는 남는 먹거리가 이웃에게 서로 통용되는 곳이라, 어느 곳에서 유자를 얻었거나, 유자청을 얻었다고 생각했을 뿐, 우리 집 귤밭 한쪽에 유자나무가 있는 것을 몰랐다.
그 나무는 어느새 그곳에서 자라나 열매를 맺었는지! 나는 정말 출가외인이었던가?
우리 가족이 '수도집'이라는 부르는 별채 옆쪽 귤밭으로 가봤다. 마당과 경계를 이루는 담벼락 사이의 공간이 귤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귤나무보다 먼저 감나무가 보인다. 가을이면 실하게 살이 오른 단감이 택배상자에 담겨 집에 왔는데, 전부 그 나무들이 한 해 동안 키워낸 것들이었다. 지난해, 2021년 10월에 제주에 왔을 때 어머니는 이르게 부드러워진 감들을 뚝 따서 감나무 아래서 먹으며 나에게도 건네줬었다.
과연, 유자나무가 있었다. 감나무 가지에, 담벼락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 공간에, 그래도 제법 큰 나무의 형체로 자리 잡고 있었다.
감나무도, 유자나무도 내가 기억 못 하는 세월 속에 자라나 있었다.
닉네임 유자나무 님도 내가 알지 못하는 당신만의 시간을 살아, 말을 고르고 닦으며 글쓰기의 세계를 들고 나셨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 닉네임 유자나무 님이 진짜 유자나무 를 키워놓았다. 뒷마당에서, 온라인 동호회 사이버 공간으로, 다시 귤밭 어귀 한 그루 유자나무로 옮겨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