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4. (금)
저녁 무렵 오빠가 전화했다. 어머니가 제주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갔고, 거기서 뇌경색 판정을 받았다고.
가슴이 쿵 무너지고, 울음이 터졌다.
나는 어머니에게 다가오는 이 일을 정말 몰랐던 건가?
2021년 9월 오빠는 어머니가 균형을 잘 못 잡는다며 이비인후과로 모셔갔다. 거기서, 아무래도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옆에 있던 중형병원으로 갔다.
거기 의사는, 어머니의 엑스레이를 보면서 '경동맥이 막혀있고, 위험한 수준이나, 나이를 생각하면 수술을 권하지는 않겠다'라고 했단다. 어머니는 한 달 치의 약을 받아왔고, 얼마 안 있어, 이상 증상 없이 일상생활을 잘한다고 오빠는 전했다.
딱 거기까지가 내가 듣고 생각하고, 위안 삼은 바였다. 어머니가 노환으로 조금 어지러운 것이라 생각하면서.
어머니가 뇌경색판정을 받았다는 오늘, 한바탕 울음 뒤에 냉정을 찾고 '뇌경색'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야 놓쳤던 것들이 보였다.
왜, 그 단어 '뇌경색'을 의사는 말해주지 않았던 걸까?
오빠는 어머니가 안면마비가 오고, 말이 어눌해질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러다 잠시 후면 괜찮아졌다고 했다. 그러니, 괜찮다, 괜찮다고만 생각했다. 어머니도, 그것을 직접 목격한 오빠도, 그 말을 전해 들은 언니도 나도.
자식들의 불찰이라고 누가 손가락질한다면, 수긍하고 받아들이겠다. 나 역시도 나 자신을 힐난하고 싶었으니까.
미국에서 일반인에게 뇌졸중을 홍보하는 문구, "FAST"
Face, 안면의 마비 혹은 표정의 비대칭
Arms, 팔 혹은 다리의 근력저하
Speech, 구음장애
Time to act, 증상을 인지하는 즉시 구급차로 병원으로 이동
어머니는 세 개에 해당하는 증상이 나타난 적이 있었다. 이번에 쓰러졌을 때 오빠는 그저 예전처럼 괜찮아져서 일어나기만을 바라면서 시간을 (정확히는 모르겠다) 보내다, 시간이 길어지자 불안한 마음에 응급구조대를 부른 것이었다.
어머니가 병원 검사를 받은 다음 달, 10월에 제주에 내려갔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친정마을, 바닷가, 친가 가족묘지, 어머니 친정 가족묘를 다녔다.
어머니는 기분도 좋고, 기억도 움직임도 좋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고 했던가.
어머니가 건강하시다고, 9월의 일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그런 안일한 생각을 비웃는 것처럼 어머니는 오늘 집중치료실로 실려간 것이다.
어머니 나이 92세. 영유아 사망이 일상이던 그 시대에 어머니는 태어나고 몇 년 후에나 존재하는 생명으로 인정받았다. 법적 출생 연도는 32세지만, 어머니도 기억 못 하는 실제 출생 연도는 아마 30년 도라 추측할 뿐.
여태껏 90세를 넘기는 망자의 부고에는 '오래 장수하셨네'라고 생각했다.
가족들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전제는 어떻게 생겨났던 건가?
나에게, 내 어머니에게 닥친 일에는 '나이가 많으니' 따위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평안하기를 원했던 나의 바람이
그렇게 기도해 왔던 것도, 부질없었다고 느껴지며
갑갑했고, 하나님께 서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었다.
내 생각을 뛰어넘는 선(善)을 베푸실 거라고 믿고 싶었다.
기도하는 그 시간에 어머니를 생각했다.
누구보다 홀로, 병원 치료실에 누워 있는 어머니,
혹시 의식을 찾고, 자신에게 일어나 일에 충격받고, 외롭고 괴로워 하면 어떡하나?....
하나님, 우리 어머니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기도는 일관성 없이 어머니의 치료와 마지막 안녕 사이를 갈팡질팡하다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