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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Mar 16. 2023

어머니의 책상

주인이 떠나고 자식들이 찾아왔다

2022. 3. 6. (일)

어머니는  타지에 나간 자식들을 기다리지 않고, 동네 젊은이들에게 부탁해서 컴퓨터를 사고, 프린터를 들여놓고, 인터넷 연결까지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일터에서 받은 전화,

"나 이름 영어 알파베뜨로 어떵 쓰는 거라?"

"예? 뭐마씨? 영어이름?"

"이름 민딱 말고, 오 헐때 앞글자, 계 헐때 앞글자, 아 헐때 앞글자만 고라 도라."

"무사?"

"아이디 만들젠."

"아이디? 무신 아이디마씨?"

......

어머니는 희망대로 oka로 시작되는 아이디를 만들고 온라인 문학동호회 활동을 하셨다.


어머니는 영감이 머물 때는 밤이든 낮이든 컴퓨터 앞으로 갔다. 시간이 지나는 것도 잊고 썼다. 명절에 찾아가도 어머니는 시상에 사로잡히면 갑자기 컴퓨터를 켜고는 그 앞에 앉아서 독수리타법으로 새 글을 쓰거나, 고쳐 쓰기를 했다.


나에게 들려주는 당신의 이야기도 요즘 몰두하는 주제나 최근에 썼던 글에 대한 자평이 많았다.

"아이고 우리 어멍은 자식덜보다 이게 더 좋아마씨? 손지 손녀가 와도 글 쓸 생각만 허염서예?"


내가 대학생일 때 어머니가 첫 자서전을 완성하고 나에게 초본을 보여주셨다.

"이거 읽어보라. 어떵 틀린 딘 어시카?(어디 틀린 곳은 없을까?)"

대학 노트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제껏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열심히도 적어놓으셨다.

야생의 글쓰기였다.  


글쓰기 교육은 둘째 치고, 정식 공교육마저도 받은 적 없는 어머니가 단지 자신의 본능과 열정하나만으로 완성한 자서전. 국 그 자서전은 2006년 '명월리 팽나무처럼'이라는 제목으로 자비출판되었다. 13년의 기다림, 오계아 여사님 만세!


어머니 창작에 대한 나의 최초의 기억은 이렇다.  아궁이 있는 부엌에서, 아궁이에 땔감을 집어넣는 사이사이 바닥에 쪼그려 앉은 채 발디딤대를 책상 삼아 그 위에 갱지를 올려놓고 글을 쓴다. 부엌을 개량하기 전, 마루와 부엌바닥 사이에 높이 차가 커서 계단요량으로 기다란 디딤대를 놓아두었다. 마침 그게 어머니에게는 조금 낮은 높이의 책상 노릇을 해 준 거였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 얘기다.


'그때를 생각하면 우리 어머니, 참 신문물을 제대로 경험하셨네. 컴퓨터 워드로 글쓰기 작업을 하셨으니!'


어머니의 컴퓨터로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오빠가 지시한 몇 가지 집안일을 했다. 마당에서 김 뽑고, 창고에 보관 중인 귤 중에서 썩은 것들을 골라내어 내다 버리고, 마을 어귀에 있는 밭에 나가서 지금 막 수확기인 적양배추 작업을 했다.


따뜻한 햇빛과 맑은 바람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다 보니 어머니에 대한 걱정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집중치료실에서 지금 어떤 상태인지 모르지만, 다만 어제보다 더 좋아지셨기를, 적어도 내일은 어머니를 볼 수는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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