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번 사직서를 써봤다는 직장 낭인. 지금은 돌아온 싱글. 선물처럼 온 조카 한 명이 있다.
나의 언니. 54세. 우리 가족 핏줄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모를 기질 ESFP로 추정됨.
부모나 동생 돌봄에는 관심 없는 장남에게 아쉬운 마음이 큰 데다가, 그를 대신하여 온갖 가족사에 대한 고민으로 K장녀의 역할을 떠 앉은 인물.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정도 있어서, 위로 아래로 형제들의 까칠함을 이해 못 하고 혼자 상처도 받음.서울시 공무원 2n년차. 자녀 없음.
나. 50세. 20대에 잠깐 INFJ로 선회하는가 했는데, 40대 이후로 자기 본질을 깨달은 INTJ.
기질에 맞지 않아 어렵게 느껴졌던 사회화 과정을 대학졸업후 회사와 학교라는 일터, 가족공동체, 공동육아공동체, 교회공동체에서 제.대.로 경험하며 사회에 안착한 인물. 아들 하나, 딸 하나.
언니는 오빠에게 장남의 역할을 기대하며 잔소리를 하고, 오빠는 그런 잔소리가 싫고, 언니는 동생이 조금 더 살가왔으면 싶은데, 나는 언니가 사람 만나고 시간 쓰고 잔소리하는 게 싫음.
나는 오빠의 역할을 기대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감사'를 느끼고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훈수를 두고, 오빠는 그런 훈수가 싫고, 동생들에게 자신만의 마이웨이에 대한 신념을 설파하기에 열심. 나는 그런 오빠모습에서 자칫 내가 빠질 수도 있었던 함정을 느끼고, 무척 안타까우나 쿨한 인티제답게 그 선에 그만 두기로 함.
오빠는 독거중년으로 지내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2020년, 타지생활 40여 년 만에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다.
90세 어머니와 60세 아들의 동거. 저무는 인생에 초연해져서 나긋하고 평화롭게 흘러갈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겠지만, 글쎄? 양상은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던 거 같다. 혼자 지내는 생활에 익숙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어머니에게 어느 날 갑자기 잔소리꾼이 하나 나타났다고 해야 할까?
이 잔소리꾼의 활약은 어머니가 딸에게 하소연하면서 전해지는 게 아니라, 제주도에 어머니를 보러 찾아간 누이들에게 정작 본인이 어머니를 건사하느라고 힘들다는 오빠의 투정으로 드러났다.
90세 어머니에게 원하고 시키는 게 맘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던지,어머니를 가운데 앉혀놓은 채 어머니가 이런다, 어머니가 저런다 하면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어머니가 쓰러진 후 병원으로 모셔가는 상황을 혼자 감내한 오빠니까 막상 만나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 간에 경황없이 뛰어다닌다고 힘도 들었을 거고, 혼자라 서글프기도 했겠지.
언니는 늘 주변에 사람이 있는 성향이다 보니, 이 날도 연달아 전화통화 중이었다. 서울시 공무원에, 교회 집사에, 친구관계도 많다 보니, 안부전화가 쉬지 않고 왔다.
삼 남매는 어머니 얼굴도 못 본 체 어머니가 며칠간 집중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만 듣고 병원을 나왔다. 셋이 나란히 길을 걸었다. 어색한 동행이다. 이렇게 도심지를 셋이서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앞으로 어머니 간병에 대한 얘기, 집으로 돌아가는 차편에 대한 얘기, 배가 고픈데 어디서 점심을 먹느냐는 얘기, 대화는 주제 없이 생각나는 대로 흘러갔다. 시내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기다리고, 시골집에 도착해서 셋이 차례로 집 대문을 넘고 들어갔다.
어머니가 안 계신 빈집. 휑하고 쓸쓸하고 씁쓸한 기운이 들었다. 먹을거리도 마땅히 없어서 라면을 끓여 먹고 긴 저녁과 밤 시간, 치열한 대화를 나눴다. 어머니의 간병 때문에 삼 남매가 모였다. 그리고 참 많은 말을 한다. 의견 불일치 때문에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고, 표정이 굳어지기도 하면서.
그래도 비난은 하지 말자. 우리가 깨어지면 안 된다. 이건 어머니가 원하시는 게 아니다. 정작 당신의 병 앞에 자식들이 서로를 미워한다면 어머니가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는가?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적어도 서로 붙들고 도와야 이 시간을 지날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