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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May 20. 2024

게으른 농부의 망중한

2024년 게으른 농부이야기

요즘은 거의 하루가 멀다고 농부의 삶을 산다. 봄날이라 게으른 농부도 바쁘다.


오늘도 아내와 함께 아침을 대충 먹고 유심재로 향했다. 작년에 심은 양파를 수확하기 위해서다. 양파는 유심재에서 조금 떨어진 밭에 자가소비용으로 심었다. 내가 양파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양파즙을 한참 먹었던 적이 있기에 매년 양파는 심는다. 또한 가정에서 양파는 꼭 필요한 채소가 아니던가?


소량 다품종을 재배하는 농부는 힘들다고 몇 번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농작물들의 심는 시기와 방법, 관리하기, 병충해, 수확 시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농약은 한번 구입하면 몇 년을 사용하다가 약효보증 기간이 지나서 버리기가 일쑤다. 가장 어려운 것은 농작물의 관리 방법이다. 순치르기, 곁순 제거, 가치치기가 작물마다 조금씩은 다르고, 어느 게 원줄기인지, 아들 줄기인지 파악하는 것도 힘들다. 조금만 방치하면 숲이 되고 정글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원래 게으른 농부이고, 몇 년의 구력이 쌓여서 이젠 대강 철저히 하면서 살아간다. 




올해도 밭에는 150본 정도의 고추를 심었다. 고춧가루를 만들기 위해서다. 물론 자가소비용이다. 고추는 내가 농사를 하면서 가장 많이 재배했고, 거의 매년 재배를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다. 항상 멀칭하고 터널에서 재배한다. 처음에는 노지 재배를 했었는데, 몇 년전부터 주위에서 모두 터널재배를 하기에 덩달아 따르고 있다. 그래도 항상 집에서 먹는 고춧가루를 거의 자급자족하기에 가장 보람을 느끼는 작물이다. 


4월 말에 심은 고추가 이젠 제법 자랐다. 터널 재배에서 물주기는 난관이다. 멀칭을 할때 잠적 호스를 설치 않았기 때문이다. 잠적 호스는 멀칭한 비닐아래에 미리 호스를 깔아서 물을 주는 방법이다. 한때 설치를 하려고 농협자재센터를 갔는데 파는게 무려 1,000m나 되는 제품밖에 없었다. 100m 정도면 되는데 열 배나 되는 것을 사야 하나 고민하다가 포기를 했다.

 

제주에서는 다양한 여러 가지 농자재들을 살 수 없다는 게 소농의 또 하나의 불편이다. 농협에서는 대농에 필요한 자재, 그리고 많이 팔 수 있는 자재만을 구비해 놓는 듯하다. 유튜브나 인터넷을 볼 때 다양하게 나오는 자재들은 제주에서는 거의 구입할 수 없다. 요새는 소농이나 텃밭 농부들이 많아서 환경에 맞는 여러 가지 다양한 부속이나 자재들이 나오고 있다. 굉장히 편리하고 도움이 되는 자재와 부속들이다. 인터넷을 통해서 구입하려면 자재비 5,000원에 택배비 6,000 ~ 7,000원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기에 쉽사리 구입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게으른 농부는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설치해 놓은 물주기 시스템(나만의 방법) 덕택에 고추가 물을 잘 먹었는지, 제법 키가 자라서 터널을 뚫고 나왔다. 오늘은 방아다리 밑에 곁가지를 모두 제거해 줄 생각이다. 터널 안에 손을 넣고 V 자로 생긴 가지 밑의 고추 순을 모두 제거해 주는 일이다. 병충해 예방과 다수확에 좋다고 해서 꼭 하라고 한다. 일일히 터널 안에 손을 집어 넣고 제멋대로 자라나는 곁순과 가지를 제거해 주는 일은 어렵지는 않지만 꽤 번거로운 일이다. 오늘은 유난히 햇빛이 강하다. 우리 부부가 100본의 고추에 작업을 하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농사일은 하고 나면 보람이 있다. 

"고추 농사가 잘되야 어머니와 언니네도 나누어 줄 수 있는데.."

아내는 올해 고추 농사가 제대로 잘되야 하는 희망 사항을 고추에게 가스라이팅하고 있다. 




양파는 독특한 방법으로 수확시기를 정한다. 양파 잎들이 70~80% 쓰러져야 수확을 한다. 

처음 양파를 재배하던 몇 년 전에는 양파줄기들이 이유없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병충해를 입었나 하고 지레 겁을 먹었던 적이 있기도 하다. 


작년 겨울에 심은 만생종 양파 줄기가 거의 쓰러진 상태라 오늘은 수확을 하기로 했다. 좀 늦기도 했다. 밭에 있는 양파는 하나 둘 필요할 때마다 수확을 해서 먹는 재미도 있다. 100여 개를 심은 것 같다. 제법 잘 자라서 당분간 양파 걱정은 안해도 될 듯하다. 


양파의 수확방법은 간단하다. 줄기를 잡아서 당기기만 하면 된다. 그 후가 문제다. 수확을 한채 포장에서 3일정도를 그대로 둔다. 그래야 양파가 제대로 여문다고 한다. 그다음 줄기를 자르고 다시 1주일여를 잘 말려서 보관하라고 한다. 수확까지는 잘하는데, 매년 보관을 잘 못해서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 나온 여러 가지 방법, 농업기술원에서 교육받았던 내용을 가지고 적용하는데 결과는 썩 좋치가 않다. 이젠 요령이 붙었다. 수확을 하면 일단 식구들에게 나누어 주어서 인심을 사는 게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줄기를 당길때 마다 쑥 당겨나오는 커다란 양파를 보면서 아내를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와, 크다..완전 실한데.."

"올해는 몇 군데 나누어주고, 양파즙도 해 먹을수 있겠는데.. " 아내가 수확의 기쁨을 얘기한다. 

    

 


농사하는 과정은 어렵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날씨 등 자연조건과 싸워야 하는 게 가장 어렵다. 이건 묘안이 없다. 오죽하면 농사는 하느님과 동업이라고 하는가? 날씨를 하느님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이 병충해와 잡초들이다. 이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농부는 부지런해야 한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겪고 결실이 수확이라는 물질로, 현실로 보이기에 더욱 값져 보일 수밖에 없다. 그 순간을 위해서 농부는 매번의 고통과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농사일을 마치고 값진 수확을 하고 유심재로 돌아왔다.

유심재에서는 모든 꽃이 환하게 우리를 반겨준다. 

정원에 앉아서 꽃들을 보면서 마시는 아내와의 차 한 잔은 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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