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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un 20. 2024

고장밭에서의 촌스러운 한 끼

고장밭, 고장밧 어느 것이든 비슷한 의미다. 제주 사람이면 확 이해가 가는 말이다. 

오늘 낯선 점심을 먹었던 곳이다.

고장은 제주어로 꽃이다. 고장밭은 꽃이 있는 밭이라는 의미가 된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고장밭에서의 점심이라면 새참을 떠올릴 수가 있다. 꽃이 피어있는 밭에서 식사한다는 것은 일을 하다가 잠시 끼니를 때우는 새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마을 방문에 나섰다. 고성1리를 방문한 지가 꽤 된 것 같아서 1차 방문지로 택했다. 

마을 방문은 애매하다. 사실 딱 어떤 용건이 있어서 가는 게 아니기에 사전 미팅 약속을 잡을 수는 없다. 마을 이장들은 무슨 일이 그리 많은지 바쁜지 모르겠다. 사전에 방문 약속을 잡으려고 전화하면 딱 지금 해야 하는 일, 꼭 집어서 할 수 있는 일, 아주 현실적인 일이 아니면 좀처럼 미팅 약속을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사전 약속 없이 내 일정에 맞춰서 편하게 방문 일정을 잡는다. 가서 있으면 만나고, 없으면 사무장하고라도 이런 저런 마을 얘기를 하다가 오던지, 아니면 마을의 이곳저곳을 걸어서 돌아보고 오는 정도다. 


그러다 보니 가끔 웃긴 일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전화했는데 바쁘다고, 시간이 없다고 만남을 극구 거절하던 이장님이 리 사무소를 지키고 있는 경우다. 입구를 들어서면서 인사를 하는 순간 서로가 뻘쯤해진다. " 아! 일을 빨리 보고 오셨구나 예" 정도다. 솔직한 얘기를 들어보면 이장님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하루라도 조용히 지내고 싶기도 하고, 사실 누구를 만나기가 좀 꺼려지는 경우도 있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오늘 만나는 고성1리 이장님은 이렇게 마을을 방문하다가 알게 된 동창의 동창인 동년배 친구다. 마을 얘기, 살아가는 얘기들을 두서없이 하다가 점심시간이 됐다. 여기도 중산간 마을이라 식당이 없는 곳인데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일어선다. 


예전에 밭에서 일을 하는 경우 집에서 새참을 직접 만들어서 밭에 배달했다. 농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젠 제주의 시골, 농촌이 많이 변했다. 일손도 없는데 집에서 밥을 따로 해서 가져갈 사람도 없고, 도시 거주 농부들이 많아서 가끔 가는 밭에서 식사를 만들어서 먹는 것도 어렵다. 

제주 이주의 바람으로 시골 곳곳에는 건설의 붐이 일었다. 펜션, 타운하우스, 전원주택, 도로 건설공사 등을 하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이들의 한 끼를 해결할 곳이 필요했다. 이런 사람들은 겨냥한 시골 식당들이 생겨났고, 마을마다 1~2개 정도의 식당이 생겼다. 식당의 주 고객들은 주위에서 농사를 하거나, 공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배달도 가능하나 대부분은 허리도 펼 겸 직접 와서 먹는다. 이게 시골밥상을 하는 시골 식당들이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대신 양도 많고, 필요한 곳은 장부에 달아놓고 먹는 곳도 있다. 점심시간은 거의 만석이다. 



오늘 점심을 먹으러 가는 곳도 그런 곳이다. 유수암리의 고장밭이라는 식당이라고 한다. 유수암에서 식당이라 왠지 웽하니 비어있을 듯한 느낌인데, 점심시간 전에 가야 자리가 있다고 해서 서둘렀다. 밖에서 보니 밭에 있는 조그만 옛 농가 모습이다. 주인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이장님은 몇 번은 다녀가신 단골인 모양이다. 


건물을 돌아서 뒤편으로 들어서니 밭이다. 부식용으로 필요한 이런저런 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건물 뒤편에는 집을 이은 널지막 한 비닐하우스가 있다. 안에는 원형 테이블들이 몇 개 있었다. 말 그대로 시골 냄새 그대로다. 작업을 하다가 그대로 와서 앉더라도 미안해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으로 테이블을 만들었다고 생각 했다.  


메뉴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매일 주인장 마음대로 차려내는 일일 정식이 있다고 한다. 2인분을 시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옆에는 끓이다 만 대형 가마솥과 부지깽이, 부식 자재 등이 놓여있어서 산만했다. 부뚜막 위에는 얌전한 고양이가 있다. 투명한 비닐하우스 밖으로는 우영팟이 보인다. 나무에 가리워진 장독대도 보인다. 저기서 아침이면 상추나 고추, 각종 나물을 따다가 그날의 반찬으로 만들어서 식탁에 내놓는다고 한다. 메뉴는 주인장 마음이라서 무엇이 나올지는 모른다고 한다. 식사가 나왔다. 오늘의 주메뉴는 돼지고기볶음이다. 조금 있으니 자리 무침도 나온다. 산골 마을에서 요즘 제철인 자리까지 상륙했다. 산골에 바닷고기가 나온 걸 보니 산골의 손님 접대용 밥상이다. 오랜만에 보는 오이냉국도 나온다. 건강이 듬뿍한 시골 건강 밥상이다. 

     


식사하고 일어서려니 작업복 차림의 손님들이 밀려온다. 주차장도 만원이다. 점심시간이 된 모양이다. 집은 아주 오래된 팽나무 2그루가 감싸주고 있다. 돌담과 아주 오래된 농가가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알려주고 있다. 


오랜만에 먹을 수 있었던 진짜 촌스러운 시골밥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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