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동창생의 아들 피로연을 다녀오는 길
코흘리개 적 친구들의 만남은 항상 예상을 빗나가는 즐거움이 있다.
50년 전의 친구들이다. 이제는 어느덧 흰머리가 주류를 이루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 사회에서도 버림을 받은 60대 중반이다. 모두 퇴직을 하고 낙향할 나이라 요즘 동창 모임을 가보면 안 보이던 새로운 얼굴들이 종종 나타난다. 50년의 세월과 사회의 때를 묻은 친구들의 모습은 처음 낯선 모습이나, 금세 육두문자를 쓰던 그때로 돌아간다. 백발의 머리, 희끗희끗한 노년의 머리를 가진 어린이들의 모습이다.
오늘은 국민학교 동창생의 아들 녀석의 결혼식 피로연이 있는 날이다. 서귀포를 다녀와야 한다.
출신학교가 있는 곳이 서귀포인지라 대부분의 경조사는 서귀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서귀포를 다녀오려면 순수하게 자동차로 왕복에 드는 시간만 해도 2~3시간, 가서 머무는 시간이 1~2시간 하면 보통 4시간여가 소요되니 여유가 있는 날이 아니면 길을 나서기가 사실 부담이 된다.
오늘은 혼주가 조금은 친했던 친구라, 모처럼 서귀포를 다녀오기로 결심했는데 날씨가 유난히 난리다. 태풍주의보에 폭우주의보까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이미 가기로 한 일,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집에서 조금씩 내리던 비는 평화로로 접어들면서 태풍의 날씨다. 엄청난 폭우와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이렇게 해서 서귀포까지 다녀올 수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새별오름 인근에 들어서니 잔뜩 안개가 끼었다. 앞이 안 보인다. 더욱 강도를 더해가는 비 오는 날씨에 윈도 브러시는 어지러울 정도로 정신없이 왔다 감을 반복한다. "이런 날씨에 서귀포까지 가야 하나.."하는 질문을 수없이 반복했다. 이왕 나선길 갈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달렸다.
요즘은 제주도에서 육지 사위나 며느리를 얻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경우는 절차가 조금 복잡해진다. 한곳에서 결혼식과 피로연을 모두 할 수 없음에 서울에서 결혼식, 제주에서 피로연을 한다. 친구도 며느리가 서울이라, 다음 주에 서울에서 결혼식을 할 예정이고 고향에서는 오늘 미리 피로연만 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2번의 피로연을 치러야 한다. 식구들도 단체로 비행기를 타고 움직여야 하므로 비용이나 시간이 많이 든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이가 들면서는 해가 갈수록 여자 동창들의 참석이 더 많아진다. 그리고 목소리도 더 커진다.
약속 시간인 3시 30분이 되니 20여 명 친구들이 모였다. 왁자지껄하다. 부지런히 술잔을 돌리는 친구, 여전히 개구쟁이 짓을 하는 친구, 지난번 추석 모임 때 다 못한 얘기를 하는 친구.. 각인각색의 지방 방송 시대다.
그중 으뜸은 학교 다닐 때 남몰래 했던 비리를 폭로하는 얘기다. 오늘은 중학교 시절 얘기가 나왔다. 학교에 낼 등록금을 가지고 친구네 집 뒷방에 몰래 모여서 손장난으로 돈을 날렸던 얘기다. 당시 우리들이 제일 많이 했던 놀이는 속칭 짤짤이라고 불리는 쌈치기다. 짤짤은 동전을 손안에 놓고 포갠 다음에 흔들어 댈 때 나는 소리다. 그래서 흔히들 짤짤이라는 속칭을 쓰는데 오야(딜러)가 손을 흔들다 멈추었을 때 그 안에 잡은 동전의 숫자를 맞추는 놀이다. 홀수인지 짝수인지를 맞추는 놀이는 홀짝 게임이다. 3으로 나누어서 나머지가 얼마인지를 맞추는 게임이 어찌, 니, 쌍게임이다. 어찌, 니, 쌍은 일본어로 1,2,3 이다. 오야의 손에 잡힌 동전의 숫자가 3으로 나누었을때 나머지가 1인지,2인지,3으로 딱 떨어진지를 맞추는 게임이 쌈치기다. 당시는 애들이 놀이문화에도 일본의 잔재들이 많았던 시대다. 오늘은 주범들이 모두 모여서인지 스스로 자백한다. 서로가 손가락질하면서 주범이라고 우긴다. 가운데 아무 말 없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네 집에서 했다고 하길래 놀랐다. 그래서 사람의 속내는 모른다. 의외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얘기가 맞는 경우도 있다.
당시는 중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라 매 분기 학교에 등록금을 내야만 했다. 부모님이 어렵게 마련한 등록금을 주면, 우리가 직접 학교에 가서 납부를 하는 경우라 종종 납부금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 납부금이 어디로 갔는지, 언제쯤 낼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상황과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오랜만에 참석한 친구나 처음 나타난 친구는 항상 얘기의 중심이다.
처음 출석하고 3~4번까지는 아이들의 관심을 받고, 대화의 중심에 설 수 있는 베네핏이 있다. 오늘도 처음 보는 친구가 있었다. 기억에는 별로 없는데 6학년 때는 나와 같은 반이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 교수 생활 정년을 마치고 낙향했다고 한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40여 년 세월 살아온 모습과 변한 모습으로 한참이나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가끔 예전 모습하고는 정반대로 바뀐 친구들이 있어서 우리들이 적응하는데 꽤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다.
남자들은 대충 느끼는 감정이다. 예비군 훈련을 한다고 예비군복을 입히고, 사람들을 모아 놓으면 금세 그 동네는 난장판이 된다. 사자가 든 선비건, 선생님이건, 높은 사람이건 마차가지다. 꼭 그때 군대 있을 때 작대기 몇 개 달고 하던 그 모습이 그대로 나온다.
국민학교 동창회도 마찬가지다. 머리가 희끗 희끗한 어른들이 모였건만, 몇명만 모이면, 50여 년의 세월을 잊게하는 13세 개구쟁이가 된다. 처음에는 의젓한 척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술이 한 순배 돌던지, 얘기가 왔다 갔다 몇 번을 반복하면 행동, 말투들이 갑자기 타임머신을 탄다. 코흘리개 그 시절로 돌아간다. 13살 때 모습들이 나온다. 하긴 50년 전의 얘기를 하자니 그 모습이 나타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모이기가 어려운 탓인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의 얼굴을 몇 시간 보고 돌아서는 길은 무척이나 섭섭하다. 가끔은 뭔가를 빠뜨리고 가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이제는 모두가 백수라 사회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스럽다. 집에서도 관심 밖에 있는 나이, 돌볼 자녀도 없는 나이라 만나는 게 예전보다는 훨씬 쉽다. 경조사들이 많다 보니 굳이 모임을 안 해도 매달 모이는 꼴이 된다. 그렇게 얼굴 보면서 함께 늙어 가자는 게 친구들이 생각이다.
가끔 있는 동창들의 모임을 다녀오는 날이면 왠지 모를 즐거움이 쉬이 가시지를 않는다.
가는 것은 망설였지만 다녀오는 길은 편하다. 아마도 세상살이 때가 묻지 않은 순진무구의 시절, 그 친구들과 같이 어울렸다는 기분 때문일 것이다. 여운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