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에서의 막걸리 한잔과 순댓국 한 그릇은 단순한 별미를 넘어서 일상의 한 조각 같은 느낌을 준다.
오일장을 습관적으로 찾는 마니아들의 얘기다. 오일장은 이들의 약속 장소다. 마니아들은 오일장을 찾아 그 속에 깃든 자유로움과 정겨움을 만끽한다.
최근 몇 년간 코로나를 겪으면서 오일장의 음식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부터는 문을 열고 정상 영업하는 식당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예전만은 못하지만, 그 속에서도 오랫동안 기다려야 맛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식당이 존재한다.
"춘향이네 집"은 바로 그런 곳이다. 오일장다운 국밥과 파전, 막걸리들을 파는 소박하지만 푸짐한 맛을 선보이는 이 집은 블로그와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유명한 맛집이 되었다.
오일장 입구에서부터 "춘향이네 집"의 위치를 묻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들은 마치 성지순례를 온 사람들인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사실, 오일장에서 특정 가게를 찾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오일장은 그저 발길이 닿은 대로 돌아다니다가 마음이 드는 곳에 잠시 멈추는 그런 자유로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춘향이네 집의 채소들은 부모님이 직접 재배한 것들이기에 품질이 좋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사람을 유혹하는 다른 맛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백팩을 맨 젊은이들이 긴줄에서 기다리는 것을 보면 이곳이 분명 특별한 무엇인가를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춘향이네 집은 여지없이 " ㄷ 자"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젊은 세대들이다. 그들이 왜 이곳을 찾고 열광하는지는 모르겠다. 성지 순례일 수도 있고, 맛집 탐방일수도 있다. 아니면 제주의 속살을 보고픔일 수도 있다.
춘향이네집 내외 모습
65세 이상이어야 장사를 할 수 있는 할망장터가 있다.
제주민속오일시장에는 할머니 장터 일명 "할망장터"가 있다. 말 그대로 할머니들만이 장사할 수 있는 장터다. 공영주차장 바로 옆에 140여 개의 점포다.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앉아서 장사를 할 수 있다. 전문적이 아니라 소일거리로 가끔 장사를 하는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자리다.
할머니들은 집에서 자가소비를 위해서 우영팟에서 재배한 것 중 여분의 것들을 가지고 나온다. 팔 물건이 있거나, 시간이 있을 때 나오는 일종의 소일거리다. 장날마다 꾸준히 오는 할머니들은 100여 명 정도가 있다고 한다.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어울려서 시간도 보내고 건강도 챙기면서 손주들의 용돈도 벌어보려는 할머니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들 중 늦게나마 장사의 묘미를 알아버린 일부 할머니들은 물건을 도매로 구입해서 전문적으로 장사를 하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그런 분들은 점포를 좀 더 많이 차지하려고 주위 분들과 목소리 크기 배틀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할망장터를 지나노라면 예전 버스정류장 구석이나 동네 어귀에 앉아서 농산물을 파시던 할머니들이 생각난다.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긴 작물들을 펴놓고 수줍게 누군가 말 걸어주기만을 기다리던 고향 할머니 같은 분들의 모습이다. 그 모습은 꾸밈없고 형식도 없지만, 바로 그 솔직함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오일장을 찾는 날, 소량의 물건을 구입하고 싶을 떄는 할머니 장터만큼 편한 곳도 없다.
할망장터 모습
호떡집은 항상 불이 난다
오일장을 얘기하면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시장의 주 통로를 걷다 보면 중간에 시장표 도나스(도넛)가게가 나온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인기 코너다. 도너스를 종류별로 직접 만들면서 판매한다. 나는 팥이 들어간 팟도너스를 좋아해 오일장을 갈 때마다 들르곤 한다. 코로나 전에는 개당 700원이었는데, 코로나를 겪더니 슬쩍 1,000원으로 올렸다. 그 맛은 여전하다.
오일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전부리는 호떡이다. 쌍벽을 이루는 2개의 호떡집이 막상막하의 인기를 자랑한다. 그중 사거리에 있는 호떡집은 인기의 편차가 심하다. 어떤 날은 줄이 있고, 다른 날은 널널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요새는 다시 인기를 회복했다. 긴 줄이 호떡가게 옆 옷 가게를 막아설 정도라서 경고판이 붙을 정도다.
과일장 앞에도 호떡집이 있다. 여기가 오일장에서 제일가는 호떡 가게다. 항상 긴 줄을 서야한다. 바로 옆 붕어빵 가게나 도넛 가게는 줄이 없는데 이 호떡 가게만 줄이 아주 길다.
내가 시장을 다 보고 돌아서는 길에 마지막으로 항상 들르는 호떡집이다. 종이컵에 넣고 먹으면서 돌아서야 하는 오일장에 대한 일종의 나만의 의식처럼 여긴다.
오일장은 다순한 시장 그 이상의 공간이다. 오일장에는 오일장다운 콘텐츠와 낭만이 있다.
정제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이 묻어나는 이곳은 사람들의 일상과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규격화된 세상 속에서 오일장은 그 틀을 벗어난 다양한 이야기와 감성을 펼쳐놓는다. 그래서일까, 오일장은 언제나 우리에게 편안함과 낭만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막걸리 한 잔과 순댓국 한 그릇은, 잠시나마 삶의 무게를 내려놓게 해주는 소박한 행복의 맛을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