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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세상, 정(情)으로 살던 시절도 있었다.

계산대 앞에서..

by 노고록

흔히들 많은 사람들이 정 때문에 산다고 한다.

"그놈의 정 때문에.."

정들지 말라고, 정 들면 돈이 든다고도 한다.

낳은 정, 기른 정, 고운 정, 미운 정.. 사람이 가는 곳, 사는 곳마다 정이 붙는다.

사람은 정 때문에 죽고 사는 감정의 동물이다.


기른 정과 낳은 정 중에 어느 게 크고 깊을까? 어느 게 우선일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그만큼 아주 오래된 질문이어서 고리타분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이기도 하다.


종족보존과 가문승계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일이던 시절, 결혼하는 가정에서는 꼭 아들을 원했다.

아들이 있어야 가문의 대를 이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들을 얻기까지의 노력은 아들을 낳아야 끝나는 어머니들의 인생의 굴레였다.

이런 아들 선호사상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남녀성비의 불균형이 아주 심했다.

학교에서 남자애들이 여자 짝꿍이 없어서 울기도 할 정도였다.

이제는 역전이 되어서 학급마다 여자애들이 많아서 여초현상이다.

가문승계에 대한 의미가 없어진 건지, 딸들도 가문승계를 할 수 있다는 얘기인지 의식변화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딸에 대한 선호도가 많이 높아졌고, 딸, 아들에 대한 선호도의 차이가 낮아진 것은 분명하다.



나이가 들면서 가끔은 족보를 들여다볼 때가 있다.

맨날 친족이라고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하고의 관계가 문득 궁금해서다.

문중 족보를 보고 이해하는 것은 그냥 책을 보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보이는 가계도와 보이지 않는 가계도가 혼재돼 있기 때문이다.


예전 아들이 없는 집안에서는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서 양자를 들이는 게 관습이었다.

아들이 여럿 있는 형제들이나 친족 집안에서 어른들의 결정에 의해서 "누구 밑으로 양자로 보내진다."

한 번의 결정, 말 한마디에 의해서 사는 곳과 관계없이 본인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양자가 된다.

같은 부모에게서 형제로 태어났지만 이젠 사촌이 되고, 육촌이 되고, 팔촌이 된다.

드문 경우지만 가끔은 대수를 달리해서 삼촌, 조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지만 문제는

그 내용을 문중 족보에는 올리면서도 호적은 정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호적상은 형제인데, 족보상으로는 저 멀리 있는 경우가 발생한다.

족보를 보다가 "어, 우리 동생이 없네, 형님이 없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면 문중을 아는 나이 드신 어른이 정리를 해준다.

"그 사람은 누구 밑으로 양자 갔쪄.."


이러한 일들은 종종 재산상속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보통은 양자를 가는 경우 받을 재산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양자를 가서 재산을 받았는데, 정리 안 된 호적상 재산 상속분이 있는 경우다.

일치하지 않은 호적과 현실 속에서 다툼이 발생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일들은 정(情)이 아닌 형식에 의해서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무형보다는 보이는 유형의 것들이 서로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기에 편리하다.

그러나 형식을 따지고, 관계를 분명히 하자는 생각은 우리에게는 아직도 좀 낯설다.

까칠하고 정이 없고, 계산적이고, 냉정하게 보인다. 한마디로 정(情)이 없어 보인다.

그냥 두리뭉실하게, 둥글게 둥글게 살아가고 싶은 게 우리네 정서다.


그러나 변하는 세상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어느 점심시간, 낯선 젊은이와의 만남에서 계산대 앞에서 머뭇거려야 할 때가 있다.

"내 건 내가 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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