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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매일올레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들리는 노래..

by 노고록

가끔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을 가는 길이면 지나다 문뜩 멈추는 곳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기타를 치는 친구들의 아지트였던 시장 입구 친구집 옥상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날 그 자리 친구들의 목소리와 얼굴이 눈에 선하다. 허름한 옥상에 평상과 허름한 의자 몇 개가 있었다. 언제든지 열려있던 공개홀이다. 주위는 모두 단층집이었기에 옥상에 올라오면 주위가 온통 내 눈아래 있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제일 높은 무대가 된다. 탁 트인 공간 허공에 대고 서너 명이 기타 합주를 하면서 아무리 외쳐도 주위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시간이면 낮장사를 주로 하는 시장통은 문을 닫는다. 대부분 셔터문이 내려져 있고 몇몇 식당만이 불을 밝혀져 있는 시간이다.


주상복합의 원조였던 시장통 동네, 앞칸 점포에서 장사를 하고, 뒤칸 방이나 주택에서 살림을 했다. 셔터문을 올리면 장사를 하는 것이고, 셔터문을 내리면 퇴근이다. 친구네도 그런 집에 살았다. 그러니 싱숭생숭 조금은 정리가 안된 분위기여서 그런지 어른들도 우리가 시끄럽게 떠들어도 예민하지 않았다. 아니 장사를 하고 먹고살기가 바빴던 시대라 우리들이 놀이는 부차적인 것으로 여겼을는지도 모른다.


"푸른 시절, 망부석, 아니 벌써, 빨간 풍선, 어디쯤 가고 있을까.."


학교가 끝나고 집에서 저녁을 먹은 어둑어둑해지는 시간, 그 동네 사는 친구들이 하나둘 모인다.

약속을 했다기보다는 그냥 일과다. 하루 일정을 마치려는 우리들만의 종강시간, 빈 공간을 향해서 내뱉는 사춘기 소년들의 몸부림이다. 집주인의 아들인 친구는 통기타에 거의 미쳐 있었다. 학교 가서도 기타 얘기, 집에서도 밥 먹는 시간 빼고는 기타를 치던 친구다. 그러기에 친구집 옥상은 공연장이나 다름없었다. 부모님도 우리를 밉지 않게 반겨 주었다.

Gemini 생성(2025.12.05)


그때 친구들이 지친 막간을 이용해서 집주인 친구가 가끔 조용하게 부르던 노래가 전영의 "어디쯤 가고 있을까"라는 노래다. 전영은 신인 가수로 큰 안경을 끼고 통기타를 메고 얌전하게 노래를 불렀다. 한번 보면 인상에 남는 가수였다. 그 모습이 집주인 친구와 너무나 닮았다. 친구도 역시 뿔테의 큰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옆구리에 기타를 끼고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전영과 너무나 흡사했다. 판박이라서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노래가 끝나면 친구들은 저마다 기타 독주를 한다.

혼자 연주한다는 게 아니고 자기가 부르고 싶은 곡을 연주하면서 리드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다 그 노래를 따라서 연주를 하면서 불렀다.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두어 시간 마지막 버스시간이 금방이다.


"김만수의 푸른 시절, 영아

김태곤의 망부석과 아리아리 아라리요, 송학사..

산울림의 아니 벌써, 빨간 풍선,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사랑과 평화의 한동안 뜸했었지, 장미

최헌의 오동잎과 대학가요제 입상곡인 나 어떡해

당시 주료 레퍼토리다.

가요책을 한 장 넘기면 나오는 노래를 연주해야 하기에 긴박감도 있었다."


특히 그 친구는 산울림의 노래를 맛깔나게 불렀다.

당시 평범하지는 않은 리듬과 멜로디를 가진 "아니 벌써"라는 노래를 그 맛 그대로 신명 나게 불러서 친구들을 기절시킨 적도 있었다. 삼매봉에 원보훈련 갔을 때의 추억이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타 연주를 계속했다.

당시 제주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밤무대인 나이트클럽에서 연주를 하는 게 전부다. 그 정도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연줄이 있고,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80년대 중반쯤 서귀포 시내 나이트클럽에서 선후배들과 같이 연주를 하는 그 친구의 모습을 본 게 마지막인 듯하다. 꽤 오래전 일이다. 숫기가 없는 친구인데 어떻게 밤무대 생활을 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아마도 그 친구가 미쳐있는 기타가 있어서, 기타를 의지 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한다.


친구집이 있던 매일시장은 현대식 시장으로 환경 개선하면서 시장 전체에 아케이드 시설을 했다. 이제는 점포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2층 옥상 우리들의 공연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들의 무대와 친구는 세월에 가리어졌고 보이지 않는다. 단지 기억 저편 추억 속 노랫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올 뿐이다.


그때 그 시절 친구들, 지금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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