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부담을 가지면 나는 그 사람을 잘 대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말 행동들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거기서 나오는 악순환이 있다. K에게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특히 나는 K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K의 눈치가 자주 보였다.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게 되고 최대한 이 공간을 청결하게 유지하려 노력했다. 사실 이런 부분들은 오히려 쉬운 부분인 것도 같다. 조금 더 어려웠던 것은 K를 친구라고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의 이기적인 면모도 있었기에 그러했던 것 같은데 당장 나에겐 잘 곳을 생활할 수 있는 곳을 제공해 주던 사람 그 이상으로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나부터도 당장 친구로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하루빨리 호스트 부부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앞으로 얼마나 외로울지 현재의 상태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느끼지 못한 채.
드디어 부르고뉴로 떠나는 날이 되었다. 당일 K는 출근을 해야 했기에 아침 일찍 나갔다. 그래서 전날 밤에 보는 것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인사였다. 특별한 사건 없이 우리는 소소한 얘기만을 나누었고 나는 설레는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도 가진채 잠에 들었다.
출발 당일 K는 방에 없었다. 내가 나가기 전 해줘야 하는 것들 몇 가지를 적어두었다. 나는 떠날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려 했다. 문득 편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말한 K를 대했던 나의 태도에 대한 반성이랄까 마지막 날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조그만 편지를 남겨놨다. K를 다시 보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마음도 있었다.
부르고뉴까지는 꽤나 가까웠다. 우선 K의 집이 Bercy역과 가까웠다. 나는 Bercy에서 Auxerre역까지 가야 했다. 3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큰 걱정이 사실 없었는데 기차를 타니 걱정이 몰려왔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일까?로 시작해서 « 제발 좋은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 같은 기도 비슷한 것도 했었다. 처음 진정으로 했던 것 같다. 가는 동안 불안함을 쉽게 감출 수 없었는데 어느 순간 기차 밖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파리의 도시를 지나 조금씩 한국과 비슷한 시골 도시의 전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불안함도 점차 사라졌다. 가만히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당당해져도 되겠다는 기세가 살아났다.
나도 꽤나 일찍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했던 탓인지 잠이 와 기차에서 졸기도 했다. 어느새 Auxerre에 도착을 했다. 조금은 잠에 취해있던 나는 부부를 만난다는 생각을 잠시 잊고 역 앞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이름을 물었다.
그는 Gilles이었고, 내가 지낼 곳의 호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