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먹은 술 때문에 다음날 몸이 무겁다고 느꼈다. 오랜만의 느끼는 숙취였다. 원래 숙취에 굉장히 약한데 오랜만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른 점심쯤 일어나서 주방에 갔다. Carthy는 보이지 않았다. 커피를 한잔 따른 후 마당에 나가 담배를 피웠다. 전날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고요한 초록색만 보였다. 있던 숙취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Carthy는 전시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게스트들이 들어왔고 전시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일을 하지 않았다. Carthy가 쉬어도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철저한 구분의 놀라기도 했다. Gilles이 없는 기간 동안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Carthy와의 식사시간이었다. 식사시간 외에는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진 않았다. 유일하게 둘이 마주하여 있는 그 시간이 참 어색했다. 언어가 되지 않았기도 하지만 Carthy에게 궁금한 점이 없었던 것 같다. 억지로 질문을 생각해 내어서 하는 것이 나는 참 낯설고 불편하다. 내가 있는 공간이며 같이 있는 사람들 심리적인 안정이 있으면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가는 것 같다. 내가 아직 이곳이 어색했고 Carthy도 불편했던 것 같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Carthy도 점점 나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생각해 보면 이런 악순환이 있었던 것도 같다.
아무튼 매일 그녀와 함께하는 식사자리가 꽤 곤욕이었다. 그래서 항상 식사를 할 때 술을 많이 마셨던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식사시간 막바지에는 꽤 흥겨운 대화가 오고 갔다. 그녀에게도 참 고마웠던 것이 다양한 주제로 갖가지 정보를 주려 했다는 것이다. 이 지역의 유명한 장소들이나 어떤 문화가 있는지 무엇이 유명한지 등등 그녀와 식사를 하며 그녀가 말해준 것 중 친구가 호두로 오일을 만드는 방앗간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일 그가 집에 방문하기로 했는데 너만 괜찮다면 같이 다녀오라는 말도 했다. 다음날 나는 Michelle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건장한 체격이었고 흰 수염과 백발의 할아버지였다. 눈가에는 항상 웃음이 시려있었다. 이곳의 사투리인지 그의 말은 정말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그는 나의 말을 잘 들어주려 노력했다.
이른 아침부터 그는 나를 데리러 왔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그의 트럭에 함께 탔다. 그와 함께 이동하던 중의 조금의 불안이 있었다. 그의 방앗간은 꽤 멀었는데 점점 외진 곳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여기서 죽어버려도 아무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걱정이 무색하게 정말 그의 방앗간에 도착을 했다. 그곳은 호두 볶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구수함에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한편에는 호두들이 쌓여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호두를 볶는 기계가 있었고 또 다른 곳에는 볶은 호두를 오일로 압출하는 기계가 있었다. 그곳에 있던 대장장은 동선이 빠르고 정확했다. 모든 동작이 자연스러웠고 어디 하나 튀는 것이 없었다. 그와 인사를 나눴다. 2명의 다른 친구도 있었다. 그들은 오일을 사러 온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그곳에서 과정을 보며 기다렸다. 나에게 짧은 말들을 걸었다. 어디서 왔는지 언제 왔는지 그들은 유쾌하며 호탕했다. 그리고 웃음이 많았다. 옆 건물에는 과일 와인 같은 것을 만드는 늙은 노인이 있었다. 우리들은 그곳에 가서 시간을 마저 보냈다. 와인 한잔씩을 하며 나는 가만히 있었고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통 무슨 말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제스처나 표정 말투 같은 것들을 보면 늙은 노인의 건강을 걱정하며 물어보는 것 같았다. 노인은 나를 빤히 보기도 했는데 그 눈빛이 참 순수했다. 어린아이 같은 눈이었다. 귀여운 노인네라는 생각도 했다.
우리는 각자 오일을 받고 자리를 떴다. 그전에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을 각자 자기들에게 보내달라며 번호를 알려줬다. 내가 숫자를 알아듣지 못하니 핸드폰으로 숫자를 적어놓고 보여줬다. 웃긴 것이 구글 검색창에다가 적었다는 것이다.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