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메이커와 재즈 1
작년 가을, 생애 처음으로 뉴욕을 방문했다. 주변에 뉴욕 다녀온 사람들 중 좋게 평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기대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밑바닥에 붙어있던 기대가 땅굴까지 파고 들어갈 줄이야. 뉴욕은 상상보다 더 더럽고 정신없고 냄새나고 복잡했다.
누군가에게는 드림 시티인 멋진 곳인데, 유감스럽게도 뉴욕을 방문했던 때 컨디션도 최악이었다. 애초에 가을 여행은 뉴욕이 목적이 아니기도 했다. 워싱턴 D.C.에서 오래 거주한 친구가 꼭 한번 놀러 오라고 거듭 초대했던 때였다. 길게 휴가를 내고 그 유명한 뉴욕도 한번 둘러보면 좋겠다 싶었다. 워싱턴 D.C.의 벚꽃이 예쁘다는 말에 혹해 봄 여행을 노렸는데, 밀려드는 업무로 정신과 체력 모두 고갈, 상반기 내내 휴가 한번 쓰지 못했다. 결국 오기로 가을 미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디씨 인아웃을 선택해서 뉴욕에 오기 직전, 친구가 살고 있는 디씨를 하루 동안 구경했다. 예상치 못하게 너무 멋진 디씨에 첫눈에 반했는데, 매몰찬 기차가 나를 납치해 맨해튼 한가운데 떨궜다. 뉴욕의 첫인상도 몸 컨디션도 최악이었다. 한국에서 독감에 어깨 통증에 망가졌던 몸을 이끌고 억지로 미국에 왔다가 디씨에 취해 잠시 회복했던 것뿐이니, 눈 아픈 네온사인, 숨 막히는 빌딩들, 넘쳐흐르는 사람들, 그 사이를 피하며 크고 무거운 트렁크를 질질 끌었다. 숙소까지 헤매고 또 헤매서 기어코 도착하자마자 앓아 누었다.
뉴욕에 며칠 더 머물면서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꼭 봐라, 꼭 해라, 꼭 먹어라 하는 것들을 실행에 옮기면 잠깐은 기뻤다. 다시 길거리로 돌아오면 대마 냄새와 지린내가 코를 찔렀고, 혹시나 해서 챙겼던 비상용 마스크가 떨어지기 전에 추가로 구매, 결국 뉴욕에 있는 일주일 내내 마스크를 썼다.
이런 대도시 싫어 사람이 굳이 뉴욕을 다시 가게 된다면, 그리니치 빌리지의 스몰즈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스몰즈에서 공식 유튜브를 운영해 그때의 공연을 계속 돌려볼 수 있다. 실시간 스트리밍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니 재즈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챙겨보시길! 방구석에서도 뉴욕 재즈바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미국 여행의 가장 큰 목표는 ‘채우기’였다. 음악과 미술을 그렇게도 좋아하는데, 현생에 치여 전율이 느껴지는 공연을 보고 미술관을 갔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좋아하는 것들을 탐닉하려 이직한 것인데, 관성을 버리지 못해 또 일개미짓 하느라 머리와 몸을 다 써서 현타가 거하게 온 상반기였다. ‘재즈바, 미술관, 실컷 간다!’가 목표였고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이루기는 했다. 버드랜드의 공연도 좋았지만 ‘내가 뉴욕의 재즈바를 오다니! 음식 맛있어! 친구랑 노는 거 재밌어!’가 컸던 원초적인 경험이었고, 스몰즈는 2절 3절 뇌절까지 해버리는 내 오타쿠 버튼을 눌렀다. ['보일러메이커와 재즈 2'로 이어집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 김올린, 2023.10.01 @Times Squ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