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메이커와 재즈 2
음악 애호가 쉽게 둘로 나누면, 가사가 먼저 와닿는 사람, 멜로디가 먼저 와닿는 사람이 있겠다. 난 좋아하는 노래를 닳고 닳게 들었어도 누군가 “아 그 노래~ 가사가 좋지” 하면 “엉? 그런 가사가 있어?” 할 정도로 강경 멜로디 파다. 모국어든 외국어든 상관없다. 그러니 태생적으로 악기 연주, 그중에서도 멜로디로 감정을 밀고 당기는 쫀득한 재즈를 사랑할 수밖에. 전문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고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재즈를 즐긴다. 매번 머리가 앞서 나가는 사람인 걸 감안하면 재즈를 엄청나게 사랑한다는 뜻. 스몰즈에서 마주한 Ari Hoenig Trio에 홀딱 반해 뉴욕에 대한 인상을 바꾼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언플러그드의 감동을 조금이라도 전하고자 직접 촬영한 영상도 첨부한다.
스몰즈라는 공간이 주는 매력도 한몫했다. 자그마한 공간에 다닥다닥 붙여진 의자들을 보고 처음에는 이름값한다는 생각을 했다. 예매와 기다림으로 조금 일찍 입장할 수 있었기에 좌측 기둥 옆 한 귀퉁이를 차지했는데, ‘낯선 사람 싫어, 가까워? 더 싫어, 퍼스널 스페이스 절대 지켜’ 사람인데도 불쾌감을 느끼지 못했다. 거친 벽돌과 시멘트 바닥, 무심해 보이지만 세심하게 곳곳에 붙어있는 액자와 거울, ‘이것이… 그리니치 빌리지의 감성?’ 하며 눈을 빛내기 바빴다. 그 작은 공간에 맛보고 뜯어볼 요소가 얼마나 많았는지, 브루클린에서 만난 스냅 작가님이 “스몰즈 꼭 가보세요!” 하며 눈을 빛내셨던 것이 인상 깊어 곧장 예약했던 것인데, 그 마음을 백번 이해하고 천번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바를 가면 무조건 시그니처를 시켜보는 타입이라 ‘스몰즈 스페셜’이 눈을 사로잡았다. PBR & Shot? 맥주 한 캔, 위스키 한 잔이 고스란히 나오길래 직원분께 “이거 부어서 마시는 거예요? 어떻게 마셔요?” 하니까 “그러셔도 되고 보통은 한 입 한 입 번갈아가면서 마셔요.”라고 해서 바로 실천했다. 아… 위스키 러버로서 맥주와의 조합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은 너무 큰 손해였다. 뒤늦게 정보를 찾아보니 위스키와 함께 마시는 맥주 칵테일을 보일러메이커라고 부른단다. 다양한 보일러메이커 조합을 소개한 기사도 찾아서 공유한다. 어떤 맥주와 위스키를 조합하냐에 따라 맛도 굉장히 달라질 텐데, 여러 조합에 따라 듣는 재미가 달라지는 재즈와도 비슷하다.
보일러메이커처럼 이 트리오도 따로 또 같이의 정석이었다. 도입부에 시선을 가장 잡아 끄는 것은 중앙의 색소폰이었는데, 피아노가 솔로를 하니 피아노가, 드럼이 솔로를 하니 드럼이, 다시 색소폰이 솔로를 하니 색소폰이 주인공이었다. 눈과 귀를 한꺼번에 앗아가는 주인공이 시시각각 바뀌는 행복한 갈팡질팡을 하고 나니 벌써… 공연이 끝났다. 뉴욕이 드림 시티인 이유는 최고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그런 사람들을 길 가다 마주치고 쉽게 수다를 떨 수 있는 곳이니까,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나 그냥 추천받은 재즈바에 아무 때나 왔는데 이런 퀄리티라고? 아, 여기 뉴욕이었지,’ 피부로 와닿았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공연이 끝나자마자 앨범도 샀다. 산뜻한 보일러메이커에 기분 좋게 취해, 재즈에 취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에 돌아갔고 침대에 누워서도 찍었던 영상과 사진을 둘러보며 스몰즈에 남았다.
1994년에 오픈한 스몰즈는 사업장이라기보단 지역 커뮤니티에 가까웠다고 한다. 어려웠던 코로나 시기를 라이브 스트리밍과 온라인 기부로 이겨낸 만큼 커뮤니티의 힘은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까지 미치고 있다. 지금도 스몰즈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지구 반대편 고퀄리티의 공연들을 만끽할 수 있듯 말이다. 서로를 보듬으며 단단한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스몰즈의 분위기가 곳곳에서 느껴졌기에 그날의 기억도 따뜻하고 행복했던 것 아닐까. 괜히 비슷한 나이라 더 친밀감이 느껴지는 스몰즈, 먼 훗날에도 뉴욕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끝]
[커버 이미지 출처 : 김올린, 2023.10.03 @Smalls Jazz 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