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롱하이와 테크노 3
또다시 볼노스트. 테크노라는 장르를 설명하고 경험담을 늘어놓느라 이야기가 샜다. 2017년 이태원에 등장한 볼노스트는 체코어로 자유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내게 있어서 음악도 자유다. 음악을 즐기는 그 순간만큼은 여기가 어디고 내가 누구고 이게 무엇인지 떠올릴 필요가 없다. 볼노스트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자유의 극한 같다. 다른 곳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인더스트리얼, 익스페리멘탈 기반 테크노를 주로 트는 만큼 갈 때마다 신선함을 느낀다. 볼노스트 운영자가 설립한 귀면 레코드에서 발매한 음악들을 들으면 그 색깔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귀를 간질이는 노이즈, 무겁게 때리는 드럼, 낯선 노래가 주는 공간감과 질감이 확실한 인상을 만든다. 홀리듯 쏟아지는 염불과 대금 소리까지, 기계적인 패턴에 한국 전통 음악 요소가 이렇게까지 잘 어울릴 줄 몰랐다. 누군가에게는 음산하고 무섭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 분위기가 이 음악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도 물론 좋다. 하지만 리스너들이 야심한 시각에 돈까지 내고 언더그라운드 클럽에 귀한 발걸음을 했다면 이 정도의 강렬함은 있어야 계속해서 찾아가지 않을까.
첫 번째 믹스셋을 만들었을 때는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를 탐방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그렇게 다 만들고 나니 나한테는 듣기 편한 좋은 흐름의 믹스셋인데, 클럽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흥겹게 몸을 흔들 수 있는 음악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었다. 내 취향에 맞는 공간감과 질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빠른 템포에 흥까지 오르게 하는 음악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오랜만에 방문한 볼노스트에서 롤모델을 찾았다.
아나스타샤 크리스텐슨이 선보이는 믹스셋은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빠른 템포에 맞춰 반복되는 비트 위로 다양한 요소들이 예상을 빗겨나가며 퍼진다. 섬세하면서도 독특한 질감을 주는 사운드가 교차되기 때문에 다음에는 어떤 음악이 나올지 기대하며 발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관객들의 반응에 교감하며 음악을 트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DJ였다. 여러 가지를 관찰하러 클럽에 방문했다가 너무 흥겹게 즐기고만 와서 어이없었던 날이기도 했다. 이렇듯 볼노스트는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선사하기에 클럽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번 방문하기를 바란다.
볼노스트가 자리한 이태원도 좋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국적이며 편견 없이 다양함을 감싸 안는 상징적인 지역. 자유로운 음악과 가장 잘 어울리는 지역. 사랑하는 만큼 아직도 마음을 아프게 하는 곳이다. 이제 곧 2주기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날에 찾아가는 선물 같은 곳이면서,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이어가는 터전인 곳. 어떤 사람이든 그런 참사를 겪어서는 안 됐다.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기억하고 또다시 이태원을 찾아와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 남은 사람으로서 해내야 하는 몫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이태원을 힘껏 사랑하려 한다. [끝]
[참고 자료]
- 박민천, "My Name Is: COMAROBOT", MIXMAG KOREA, 2020.09.07
- "RA.598 Anastasia Kristensen", Resident Advisor, 2017.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