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롱하이와 테크노 2
다시 볼노스트. 오감의 충격이 컸던 경험이었다. 다른 클럽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무용수, 색다른 날카로움을 선사하는 음악, 모두 무대에 집중하느라 비교적 쾌적했던 주변의 공기,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우롱하이. 이게 우롱차야 술이야 싶은 삼삼함에 연거푸 넘기다 보면 알코올향이 혀 끝에 남아 바로 다음 잔을 찾게 되는 마성의 술. 그날 접했던 테크노와 잘 어울리는 술이었다. 기계 소음인지 음악인지 모를, 호불호가 세게 갈려도 할 말이 없는 음악.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계속 마시고 싶은 술처럼 계속 듣고 싶은 장르. DJ라는 새로운 꿈을 안겨준 테크노와 우롱하이는 내 기준 최고의 짝꿍이다. 그렇게 또 4-5년이 흘러 지금, 그 사이 최애 클럽 볼노스트에서 디제잉을 배워 믹스셋을 만들기도 했고, 여전히 최애 술 중 하나로 우롱하이를 즐겨 마신다.
대망의 첫 믹스셋! 지금은 게으름으로 방치되어 있는 계정이지만 앞으로 꾸준히 올려보려 한다.
취미가 디제잉이면 풀어야 할 오해가 많다. 지난 글에서는 클럽 음악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면 이번엔 클럽이라는 장소에 대한 오해를 조금이나마 풀어보고자 한다. 물론 클럽은 향락을 위해 존재하며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가는 장소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특히 이태원에서는 고독한 미식가처럼 맛깔난 음악만을 위해 클럽을 가는 사람들도 꽤 많다. 나만 하더라도 클럽에 가면 낯선 사람들과는 거의 말을 섞지 않는다. 그나마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신원이 보증된 지인의 지인들까지, 그래서 이태원에서는 밤이어도 든든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음껏 새로운 음악을 탐방하며 친한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안전한 곳이다.
술에 대한 글을 쓰고는 있지만 엄청난 주당도 아니다. 술을 많이 먹지도 못하고, 무엇보다도 술자리를 싫어한다. 가지각색의 술들이 주는 다채로운 맛들을 좋아할 뿐, 집에서 혼자 아끼는 위스키를 꺼내 한두 잔 홀짝일 때가 제일 행복하다. 이런 성향 때문에 전업 DJ는 무리다. 물론 다양한 성향의 DJ들이 있지만 클럽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는 직업이기에 어느 정도의 ‘관종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클럽을 좋아하긴 하지만 자주 갈 수는 없을 정도로 체력도 안 좋고 부대끼는 것도 싫어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생산자보다는 소비자가 체질이다. 이렇게 클럽 정식 데뷔가 늦어지는 것에 핑계를 대본다.
그럼에도 내 꿈은 DJ이다. 언제고 취미로 디제잉을 할 것이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악을 듣는다는 이유 하나로 전율을 공유하는 건, 매번 느껴도 새롭고 아름답다. 아직 클럽에서 음악을 틀어본 적은 없지만, 바에서 주최하는 파티에서는 몇 번 틀었었다. DJ 부스에 서서 직접 선별한 음악을 적절한 시기에 맞춰 틀었을 때, 춤추며 환호하는 관객들을 보며 느꼈던 짜릿함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다. 라디오 PD 일을 했을 때도 기억이 난다. ‘오늘 선곡이 너무 좋아요’, ‘인터뷰가 정말 알차요’, ‘방금 멘트 힘이 되네요’,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전화번호 뒤의 네 자리는 아는 청취자분들로부터 받았던 따뜻한 문자들이 아직도 마음 한편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것처럼, 본업에서도 취미에서도 생각보다 교감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많이 느낀다.
한번 매력에 빠지면 계속 마셔도 질리지 않고 술술 넘어가는 우롱하이 같은 DJ가 되고 싶다. 모두의 메이저보다는 누군가의 마이너가 좋다. 굵고 짧게 보다는 얇고 길게가 좋다. 83세의 나이에도 음악을 트는 DJ 스미록처럼 오래오래 멋진 취미를 즐기고 싶다. ['우롱하이와 테크노 3'으로 이어집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 김올린, 2023.11.03 @Osa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