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의 역사와 이해 1
“사이버 가수 아담이야? AI야?” 버추얼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하면 제일 많이 듣는 얘기다. 긴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버추얼 아이돌이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된 캐릭터를 활용해 활동하는 가수, 배우,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을 모두 통합해 ‘가상 연예인’으로 지칭하겠다. 1990년대 ‘가상 연예인’이 등장하고 이후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며 이목을 끌었다. 1990년대는 사이버 가수, 2000년대는 보컬로이드, 2010년대부터는 버추얼 유튜버, 인플루언서, 아이돌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며 인기를 끌었고, 2020년대인 지금까지 해당 산업의 크기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이처럼 ‘가상 연예인’은 종류도 다채롭고 구현 방식도 다양하다. 이 글을 읽고 나면 버추얼 아이돌은 사이버 가수 아담이 전부인지, 사람이 아닌 AI가 맞는 것인지 헷갈릴 일이 없게끔 설명하고자 한다.
아담은 1998년에 데뷔한 국내 최초의 가상 가수로 버추얼 아이돌의 시초로 볼 수 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많은 버추얼 유튜버들과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운영되기도 했다. 가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존재하고, 이 캐릭터의 목소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형식이다. 당시는 누구나 마음먹으면 버추얼 유튜버로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래 외의 활동에 제약이 있었다. 다양한 활동으로 견고한 팬덤을 만들기 어려웠기에, 뉴스에서 반짝한 뒤 추억 속으로 사라진 것이 아닐까.
나리타 공항으로 입국하면 헬로키티와 함께 관광객을 반겨주는 미쿠를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미쿠는 일본 캐릭터 문화에서 상징적인 존재다. 미쿠는 음성 데이터와 음악을 조합해 사람처럼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만든 음성 합성 기술 ‘보컬로이드’ 캐릭터다. 즉, 아담처럼 목소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부분이 미쿠의 강점이다. 누구나 보컬로이드 프로그램을 구매하면 미쿠의 목소리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보컬로이드는 인간의 목소리를 똑같이 구현해 낼 수 없다. 개발사는 그런 미쿠에게 안드로이드 설정을 부여해 기계음이 묻어나는 목소리 자체를 특징으로 만들어버렸다. 나아가 팬들이 자체적으로 만드는 ‘2차 창작’이 널리 퍼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미쿠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한 개인 창작에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라이선스를 손봤다. 그렇게 미쿠는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세계 곳곳에 퍼졌고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16년은 버추얼 유튜버의 시초 ‘키즈나 아이’와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시초 ‘릴 미켈라’가 등장한 해이다. ‘가상 연예인’이라는 궤를 같이 하고 있지만 이 둘은 그림체도, 국적도, 활동 플랫폼도, 운영 메커니즘도 모두 다르다.
버추얼 유튜버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키즈나 아이는 사이버 가수와 유사한 형식으로 캐릭터의 목소리를 담당하는 성우가 존재한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방송 출연, 광고, 라이브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로 팬들을 만나며 왕성한 활동을 벌인 키즈나 아이는 2022년부터 지금까지 무기한 활동 정지 상태에 있지만 여전히 많은 팬들이 아이를 그리워하고 있다. 일본뿐 아니라 국내도 버추얼 유튜버를 ‘버튜버’라고 부를 정도로 흔해진 요즘, 버튜버 산업이 커지기까지 아이의 공은 매우 컸다.
버추얼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는 뒤늦게 AI와 CGI로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을 밝혔지만,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끌었던 초창기, 많은 사람들이 필터만 씌운 실존 모델인지, 실체가 없는 허구의 인물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했다. 본인만의 스토리도 있다. 릴 미켈라는 19살의 브라질계 미국인으로 양성애자이며 블랙핑크의 팬일 정도로 케이팝을 좋아한다. #BlackLivesMatter 해시태그에 참여하는 등 사회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줄도 알며, 공개 연애도 했었다. 실체가 없어도 널리 사랑을 받는 보컬로이드 캐릭터처럼, 릴 미켈라는 진짜보다 진짜 같은 설정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전성기 한 해 수입이 무려 130억 원이었다고 한다.
두 ‘가상 연예인’의 결이 다르듯, 이후 등장한 버추얼 아이돌도 '버추얼 유튜버형'과 '버추얼 인플루언서형'으로 나눌 수 있겠다. 이 둘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각 종류의 아이돌들이 어떤 매력 포인트로 팬을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참고 자료]
- 오지현, “실시간 모션 캡처를 활용한 가상 연예인 시스템 구축 : 버추얼 유튜버를 중심으로”, 숭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9
- 게임메카, “하츠네 미쿠는 어떻게 세계인의 디바가 되었나”, 머니투데이, 2017.04.26
- VWORLD 버추얼월드, "최초의 버추얼 유튜버, 키즈나 아이 복귀?", Youtube, 2024.07.16
- Elin Park, “메타버스와 디지털휴먼 — ① Z세대(Gen-Z)의 셀럽, 릴미켈라(Lil Miquela)”, Medium, 2021.05.03
- Grace Tatter, Ben Brock Johnson and Emily Jankowski, “RIP Lil Miquela”, WBUR, 2024.04.12
[커버 이미지 출처 링크 / 수정 2024.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