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을 걷는 십자가

by 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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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초반, 세례를 받았다.

누구에게나 이십대란,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동시에 가장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시기다.

나에게 이십대는 아름다움을 잊은채 불안하기만 했다.

그때 어디에라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에 세례를 받았다.

그땐 그저 신 이란 존재가 무엇인지,성당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내 불안감을 없애고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다녔었다. 그런 마음으로 신앙심이 생길리가 만무했다.

시간이 지속될수록 마음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세속의 생활에 물들고 신앙이란 존재는 잊혀져 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정신없는 생활을 하며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이십대의 불안정함이 사회적인 위치와 결혼에 대한 고민에서 오는 것이라면 삼십대의 불안함은 가정에서의

위치와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고민으로 불안정 했다. 그때 다시 신앙을 찾고자 했지만 불행히도 시어머니는 불교신자였고 기회만 생기면 나를 절에 데려가려고 했었다.

그런 핑계로 다시 냉담자로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지금의 성당에 나가기 시작한건 십여년 전이었다.

성경을 알면서 신심이 조금씩 생겼고 봉사를 하면서 그 신심이 조금은 더 굳건해졌었다.

그때만큼 내 세례명이 많이 불리워진 적도 없었다.내 본명을 잊을 정도로 세례명이 더 익숙했던 시절이었다.

난 그렇게 바실리아로 오랫동안 불리웠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는 모두가 알지 않은가..

또 조금씩 멀어졌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는 내 세례명을 듣지 못하고 있다.

기억에서 사라질 만큼. 내게 주어진 고통이 생길때마다 이것이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십자가 인가..하는

말을 종종 하곤한다. 그 십자가 무게가 너무 힘겨워 원망할 때가 많았고 벗어 던지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럴수록 신께 매달려야 했지만 나는 돌아섰고 반항했다.

십자고상 에는 고통스러워 하는 예수님이 계신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프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나만의 십자가는 무겁지만, 무겁지 않게 고통스럽지만 고통스럽지 않게,

다른이가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꺼이 기쁜마음으로 안고 가는 꽃길로 여기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

그 마음이 이런 작품으로 이끌어 주었다. 한땀 한땀 내 세례명을 실로 새기며 내가 누구인지,

누구를 믿고 있었는지 마음에 새겼다.

이제부터 나의 십자가는 꽃과 함께하는 꽃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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