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기
자신이 정말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격려하고 칭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스스로의 미흡함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둘의 모습을 오가는 게 대부분의 인생이겠지만, 굳이 따져보자면 나는 후자의 순간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일도 좋아하는 일도 많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면 성에 차지 않는 나의 모습에 실망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다음의 문장이다. 아, 내가 또 괜한 욕심을 부렸구나.
그래서인지 늘 자신감이 가득해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공연한 부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해내는 능력뿐만 아니라, 자신감이라는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까지도 갖춘 사람 같아서.
언젠가 좋아하는 가수가 연습생 시절에 만든 포스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만능 ○○○"
"공연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당시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에 그가 적은 글을 보니, 머릿속에는 수많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능력을 저렇게나 당당하게 어필할 수 있을까? 본인을 만능이라고 얘기하려면 얼마나 많은 것에 도전해봤을까?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연습을 해야할까? 어떻게 스스로에 대해 저런 '확신'을 가질 수 있지?
내가 나를 소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무엇을 잘한다고 말하면 좋을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나에게 그런 게 애초에 존재하긴 할까? 역시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조금은 무력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의미 없는 고민을 하며 울적해 하다 보면, 13살 즈음에 만난 친구 한 명이 생각난다.
미국에 잠시 살았던 당시 그 친구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다. 친구는 자신이 최근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지금은 계이름과 악보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면서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누르던 그 아이는 나에게도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냐고 물었다.
지금의 아이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또래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게 태권도와 피아노는 필수 코스였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말이다. 운동하기를 정말 싫어했던 나는 8살이 되면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3년 정도 학원을 다녔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연습을 하지 않아 몽땅 잊어버리고, 악보도 더듬더듬 음을 찾아 겨우 보는 정도지만.
질문을 받았던 당시에는 동요 하나만 겨우 기억나는 정도였다. 있는 그대로 잘은 못 치지만 배운 적은 있다고 대답했는데, 친구가 배운 걸 보여달라고 아주 간절하게 부탁하더라. 결국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어릴 적 내가 좋아해서 매일 치곤 했던 동요 <피노키오>를 연주해주었다.
친구의 반응은 여전히 기억이 선명하다. 자신은 이제야 막 도레미파를 배웠는데 한 곡을 온전히 칠 줄 아는 내가 잘하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뭐냐고, 친구는 내 옆에 앉아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친구가 칭찬에 후한 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대뜸 나에게 영어를 잘한다고 말을 해준 적도 있다. 당연히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자신은 외국어로 인사하는 법도 모르는데 자신과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는 나는 정말 잘하고 있는 거라고 또 한 번 강하게 주장을 펼쳤다.
무언가를 잘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눈에 띄게 월등한 능력을 갖추어야만 한다고 은연 중에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할 수 있어야만 잘하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잘'한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 친구가 해준 말들은 내게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다.
여전히 박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스스로 높여놓은 기준에 지칠 때면 어김 없이 그 친구의 말들이 생각이 난다. 이제는 연락도 닿지 않는 친구가 되었다 해도, 그 말들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나에게 위로가 된다.
스스로의 능력에 질문을 하게 되는 일은 여전히 자주 찾아온다. 늘 하던 일이 갑자기 잘 안 돼서, 새로 시작한 일을 하다가 자꾸만 실수를 해서, 함께 하는 사람들은 잘만 나아가는데 나만 유난히 발전이 더뎌서 등등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여전히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하게 될 수 있는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알겠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그걸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주 작은 칭찬거리라도 찾아 스스로를 칭찬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계속할 힘이 생기고, 진짜로 잘하게 될 때까지 노력할 힘이 생길 테니까.
적어도 '잘'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소소한 응원을 남겨본다.
2023. 01. 22.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