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확고한 사람
취향이 확고한 사람들이 있다. 뭘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뭘 제일 싫어하는 지를 명확히 알고 자신을 능숙하게 돌보는 사람들을 말한다.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마치 사전을 읽는 것처럼 마구 쏟아내는 전문가가 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가위바위보 내기도 다 이길 것만 같다. 구설에 오를 일도 없을 것만 같다. 어떤 문제가 닥쳐도 손쉽게 해결할 것만 같다. 쿨한 인생을 사는 그들을 보면 참 부럽다.
2년 전 가보고 싶던 LP바에 시간이 맞는 친구들과 놀러 갔었다. 그 날은 마침 외부 밴드의 라이브 공연이 있었다. 그들은 아프리카 음악을 연주했다. 그 중 기타리스트가 내 눈에 띄었다. 약간 붙는 청바지와 검은색 체크무늬 재킷, 머리에는 검은색 중절모를 비스듬히 걸치고 뿔테 안경을 쓴, 밖에서 본다면 기억에 남지도 않을 평범한 중년 남성의 모습이었다. 연주를 시작하자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연주에 몰입했다. 허리를 숙이고 눈을 잔뜩 찡그리며 바삐 연주하기도, 음악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맘껏 흐느끼기도 했다. 외관상 칙칙한 아저씨처럼 보였던, 밴드 멤버들 중 가장 눈이 안 갔던 그였지만 연주가 시작한 뒤로는 가장 빛나고 있었다. 그때부터 몰두하며 살아가는 이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을 닮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두운 방에서 물건을 찾기 위해 바닥 이곳저곳을 손으로 짚듯 천천히 내 취향을 탐색하고 있다.
난 왁자지껄한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화에 끼어들기도 힘들뿐더러, 그들의 뜨거운 기운에 함께하지 못해 초라해지는 느낌이 싫다. 클럽도 좋아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다. 같은 왁자지껄한 술자리여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면 다르다. 술에 취해 갈피를 잃은 두서없는 말들도 정겹다. 이제 막 취기가 오른 친구에게 취했다며 마구 놀리는 것도 참 재밌다.
옛날 노래도 좋아한다. 멋진 말들로 잔뜩 꾸며낸 생명력 없는 가사가 아닌 생기가 느껴지는 투박하고 직설적인 가사가 좋다. 옛날 노래에서만 쓰이는 구식 악기들의 소리가 좋다. 옛날의 싸구려 음질로 담긴 가수들의 목소리가 좋다. 지금의 선명한 음질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글 쓰는 것이 좋다. 안개에 싸인 것 같이 막연했던 내 생각들이 글로써 명확해진다. 글을 쓰면서 몰랐던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내가 쓴 글들을 고치며 다듬어가는 것도 참 좋다. 썼던 글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하며 나를 돌아보는 과정이 재밌다.
몇 번의 원정 끝에 한 두 개의 취향을 발견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답은 여러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 밖에 없는 듯하다. 대학교에서의 술자리 경험으로 사람이 많은 술자리라면 다 싫어하는 줄만 알았지만 친한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재밌었다. 취향이란 야릇해서 내가 싫어하는 것에서 조금만 비껴가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되기도,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여러 조건들을 바꿔가며 실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가 추구하는 그들처럼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