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Incredible Wes Montgomery
오르간 연주자 지미 스미스와 같이
기타리스트 웨스 몽고메리에게도
늘 ‘The Incredible’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당시까지만 해도
기타라는 악기가 연주 안에서 가지는
물리적 한계를 알고 있던 이들에게,
웨스 몽고메리가 보여준 음색, 속도, 그리고
즉흥연주의 방식은 기존의 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1960년 발표된 앨범 < The Incredible Jazz Guitar of Wes Montgomery >라는 앨범 제목은
웨스 몽고메리의 연주가 당시로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었는지에 대한 대답이다.
웨스 몽고메리의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다.
1923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기타를 본격적으로 잡은 시점은 19세였으며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서 이미 늦은 출발에 속한다.
형인 버디 몽고메리(비브라폰)와 몽크 몽고메리(베이스)의 영향이 컸다.
정규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악보는 읽지 못했다.
전적으로 귀에 의지하며 기타를 익혔고
특히 찰리 크리스천의 연주를 반복해서 카피했다는 증언이 여러 인터뷰에서 확인된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했고 주로 늦은 밤까지 연습했다.
가족과 이웃을 깨우지 않기 위해 소리를 줄일 필요가 있었다.
이런 경위로 탄생한 웨스 몽고메리의 트레이드마크인 엄지손가락 주법은
이론이나 실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실생활의 결과였다.
피크를 사용하면 소리가 컸고
그래서 오른손 엄지로만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임시방편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방식이 음색과 아티큘레이션에서 피크로 연주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줄과 엄지 손가락의 접촉 면적이 넓기 때문에
소리는 둥글고 더 따뜻했다.
이 선택은 되돌릴 수 없는 그 만의 독특한 주법으로 자리 잡는다.
엄지 주법의 가장 큰 특징은 음색이다.
피크로 연주하는 기타 음색처럼 날카롭지 않고 두텁다.
사람의 목소리나 오르간에 비유된 이유다.
하지만, 엄지손가락 연주는 연주의 속도면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그럼에도 웨스 몽고메리는 비밥 템포를 정확히 소화했다. 이는 많은 연주자들이 직접 목격하고 기록으로 남긴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그만의 분명한 구조를 가진 독특한 즉흥연주 방식을 만들어 낸다.
흔히 3단계 전개로 설명된다.
첫 번째 단계는 싱글 노트를 중싱으로
비밥적 어법에 기반한 단음 솔로연주로 시작해서
명확한 라인과 리듬으로 솔로의 도입부를 이끌어 간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단음 솔로가 전개되면서
두 번째 단계로 접어들어 옥타브주법을 통한 연주가 이어진다.
동일 음을 두 줄에서 동시에 연주한다.
연주의 음량과 밀도가 증가한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솔로의 클라막스로 들어갈 준비가 모두 끝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코드를 활용한 리듬 솔로가 시작된다.
강한 리듬을 블록 코드로 연주하면서
코드를 통해 멜로디 라인을 이끌어 간다.
다른 악기들의 리듬 섹션과 뒤엉키면서
솔로의 에너지가 최고점에 도달한다.
1960년도에 녹음된 [ Four on Six ]는 이 구조가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예다.
웨스 몽고메리의 음악 경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시기(1959–1963)는 보통,
리버사이드 레코드에 소속되어 있던 시기로
소편성 위주의 하드밥을 연주하던 시기이다.
옥타브 주법과 대략적인 그의 솔로 구조가 이 시기에 확립됐다.
앨범으로는 < The Incredible Jazz Guitar of Wes Montgomery >가 대표작이다.
두 번째 시기(1964–1966)는
버브 레코드사에 소속되어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 집중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는 지미 스미스와의 작업이 집중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며
그의 상업적인 전성기와 명성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시기이다.
그런데 오히려, 리버사이드 시기를 마무리 짓고
버브 레코드로 건너온 이 두 번째 시기에
초기 웨스 몽고메리의 순수한 재즈 감각을 가장 선명하게 담아낸 음반이 등장한다.
1966년 버브 레코드에서 발매된 라이브 앨범인 < Smokin’ at the Half Note >이다.
이 음반은 발표 시기만 놓고 보면 분명 버브 시기의 음반이다.
그러나 실제 연주 내용은 그의 버브시절의 팝 재즈와는 거리가 멀다.
편성은 피아노 트리오와 함께한 기타 쿼텟.
사운드는 하드 밥과 소울 재즈의 문법을 그대로 따른다.
그래서 이 음반은 흔히 “버브 시대에 등장한 리버사이드 스타일의 라이브 음반”이라 언급된다.
이 작품의 완성도는 리듬 섹션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피아노는 윈튼 켈리, 베이스는 폴 체임버스, 드럼은 지미 콥.
한때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을 지탱했던 초호화 리듬 섹션이다.
1965년 뉴욕의 재즈 클럽 더 하프 노트(The Half Note)에서의 실황을 녹음한 이 앨범은
관객의 반응, 연주자 간의 긴밀한 타이밍 변화가 그대로 담겨 있다.
스튜디오 음반에서는 얻기 어려운 긴장감과 호흡이 연주 내내 유지된다.
웨스 몽고메리의 솔로는 계산보다 반응에 가깝고 모든 수록곡들은 그의 연주 특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동감 넘치게 들려준다.
웨스 몽고메리 최고의 라이브로 평가받는 앨범인데
개인적으로 웨스 몽고메리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 해석과 코드 솔로가 담긴
재즈 발라드의 명곡 [ Misty ]를 가장 추천하고 싶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웨스 몽고메리는 재즈 기타리스트로서 더 이상 증명할 것이 없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리버사이드 시절의 음반들은 이미 그의 연주 방식과 음악적 어휘를 충분히 검증해 보여주었고,
버브 레코드에서의 활동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 또한 확고히 확보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의 경력 마지막 국면은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온 세 번째 시기로 남아 있다.
A&M과 CTI 레코드에서의 작업은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와의 협업으로 본격화된다.
크리드 테일러는 재즈를 좁은 마니아 시장에 머물게 두지 않으려 했다.
그는 당대의 팝 히트곡을
재즈 연주자의 음색과 결합시키는 방식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웨스 몽고메리는 그 전략의 중심에 놓였다.
이 시기의 음반들에서는 기타 솔로의 성격이 분명히 달라진다.
빠른 비밥 라인이나 길게 이어지는 즉흥 전개는 줄어든다.
대신 옥타브 멜로디가 곡의 전면을 이끈다.
현악기와 브라스가 덧입혀진 편곡 속에서,
웨스 몽고메리의 기타는 복잡한 대화보다는 명확한 음색과 선율을 담당한다.
이 선택은 즉각적인 결과를 낳았다.
1967년에 발표된 비틀스의 커버곡 < A Day in the Life >는
재즈 기타 음반으로는 이례적으로 대중 차트 상위권에 올랐고
웨스 몽고메리라는 이름은 재즈 팬을 넘어 일반 청중에게까지 알려졌다.
동시에 비판도 따라붙는다.
연주의 밀도가 얕아졌다는 지적,
오케스트라 편곡이 즉흥성을 방해한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 변화를 개인이 추구한 음악적 방향성의 변화만으로
웨스 몽고메리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1960년대 후반은 록과 팝이 시장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재즈 클럽은 줄어들었고, 음반 판매 역시 이전과 같지 않았다.
많은 재즈 연주자들이 생계를 위해 끊임없는 투어와 불리한 계약 조건에 끌려 다녀야 했던 시기이다.
웨스 몽고메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에게 음악은 예술이면서 동시에 가족을 책임지는 생계수단이었다.
크리드 테일러와의 작업은 그런 현실 속에서 감당해 내야 할 하나의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보다 안정적인 수입, 더 넓은 청중, 그리고 혹독한 클럽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
이 선택을 두고 순수와 타협이라는 이분법을 적용하는 것은
당시 재즈 연주자들이 처한 현실적인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웨스 몽고메리의 후기 음악은
그의 전성기 시절의 음악적 성취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대신 재즈가 변화하는 시장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대중과 함께 걸어 나아갈 수 있었는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예이다.
그의 마지막 음반들은 한 연주자의 계산적인 얄팍한 타협이라기보다는
1960년대 후반 재즈가 맞닥뜨린 냉정한 현실을 담은 기록이다.
그래서 이 시기, 웨스 몽고메리의 음악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동시에, 그 논쟁 자체 또한
웨스 몽고메리가 우리에게 남겨준 또 하나의 재즈 유산이기도 하다.
웨스 몽고메리는 1968년, 45세에 세상을 떠났다.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그의 기타 연주의 어법, 솔로의 구조 그리고
그가 남겨준 따뜻한 기타 음색은 이후 세대에 그대로 남았다.
그가 ‘인크레더블’이라 불린 이유는
그의 화려했던 기타 기교 때문만은 아니다.
기타라는 악기를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