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선생님으로 만든 아이들- 프롤로그
오늘 디저트로 무슨 음료를 마실지,
이번 휴가는 어디로 갈지,
부모님 선물로 무엇을 고를지,
내년도 희망업무는 어떻게 신청할지…
살다 보면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매일매일의 선택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 전체가 바뀔 수도 있을까?
흔하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날은- 잊히지 않는 장면으로 남는 법이다.
"정말이야? 아니 왜…"
중년의 공무원은 빡빡머리인 청년에게 되물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곧 알겠다며 타닥타닥 타자를 치더니 종이 한 장을 프린트해 주었다.
"내일 9시까지, 그 주소로 가면 돼요."
그날은 논산 훈련소를 퇴소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옹기종기 교육청 강당에 모여 앉은 나 같은 빡빡머리가 족히 200명은 넘어 보였다.
훈련소를 마치고 오랜만에 집 밥 먹고 가벼운 마음으로 왔을 젊은 제군들은 오리엔테이션이 끝날 때쯤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쉬었다. 다급하게 문자를 두들기는 이들도 있었고, 더러는 욕지거리를 했다.
"자자, 방금 설명한 대로 올해부터 교육청 복무 신청자도 장애인 시설 배정이니까요.
여기 있는 전원이 특수학교나 복지관에 가는 겁니다.
나가면서 배치 통지서를 받아서 내일부터 출근하면 됩니다.
참, 지금 호명하는 세 명은 본청 근무자입니다."
둥근 빡빡머리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아무도 말이 없었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제발제발제발제발젭알…!!
그 당시 병역 대체복무제도인 공익근무 해당자는 특정 기간 복무 사이트에 접속해 근무하고 싶은 기관을 선택할 수 있었다.
신청 확정을 하지 않으면 랜덤으로 배치되었는데, 근무조건이 열악한 지하철 역에서 복무하게 되거나, 장애인 돌봄 시설에 가거나, 최악의 경우 하수처리장으로 가기도 했다.
나를 지켜주고 길러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24개월간 기꺼이 똥물에 투신할 청춘은- 안타깝게도 없을 터였다.
그러므로 그 신청의 치열함은 대학 수강신청에 비할 바 아니었다. 인기 있는 자리는 5초 안에 다 차버리고 심하면 렉 걸리거나 튕기기도 했기 때문에 PC방에 가서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일을 대비해 친구 한 명을 불러다가 PC방에서 컴퓨터 두 대로 접속했다. 우리는 스타크래프트 결승전을 하는 것보다 더 집중하고 있었다
"야 호티야 어떡하냐 도서관 다 찼어."
"그럼 구청 클릭해 줘."
"구청도 다 찼어!"
"그럼 동사무소라도… 아 동사무소도 다 찼네..."
"야야 교육청 자리 하나 있어 일단 클릭할게!"
그렇게 된 것이었다.
교육청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 그 해부터 교육청을 비롯한 지자체 복무 신청자들을 장애인 시설로 보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음 세 명은 저를 따라오세요.
이호티, 김 XX, 박 XX”
본청 근무자입니다."
나지막한 탄성과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중앙 통로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동안 부러움의 시선이 사방에서 날아와 온몸에 꽂혔다.
어떻게 수백 명 중 세 명 안에 뽑혔느냐고?
사실 오리엔테이션 이전에 자기소개서를 쓰는 시간이 있었다.
A4 용지로 된 자기소개 서식에 자필로 작성하는 식이었다.
대부분 이름을 적고 대충 휘갈긴 후 훈련소 얘기로 삼삼오오 수다를 떨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눈치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눈치가 없으면 일단 뭐든 최선을 다해야 좋을 것이다. 그래야 있을지도 모를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
뜬금없이 자기소개서를 써내라는 지시에 위화감을 느낀 나는
흡사 과거시험을 치러 온 서생과 같이 비장하게 붓을, 아니 볼펜을 들었다.
그리고 혼신을 담아 본인조차 다시 기억 못 할 명문을 써 내려갔다.
“나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블라블라”
그렇게 장원급제한 나는 의기양양하게 높으신 분의 뒤를 따라 사무실로 올라갔던 것이다.
"축하합니다. 여러분 자기소개서를 다 읽었는데 아주 성실하게 작성했더라고?
착실해 보이고 일 잘할 것 같아서 우리가 나름대로 엄선해서 뽑은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특수학교나 복지관에 갈 텐데, 본청 근무가 그래도 훨씬 편할 거고...
내일부터 9시까지 출근해서 …."
이상한 일이다.
살다 보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겪기도 한다.
나는 교육청으로 가지 않았다.
이 얘기를 하게 될 때면 나는 그래도 학교에 가야 더 경험을 많이 할 것 같았다거나
그래도 젊을 때 더 고생해야지, 의미 있는 일을 해야지 생각했다며 웃어넘기곤 했다.
그러나 지금도 내가 그랬던 이유를 다 알지 못한다.
나는 전혀 다른 전공을 했고 꿈도 따로 있었으며,
다쳐서 1년째 재활치료를 받고 있었고
정신적으로 상당히 지쳐있었다.
장애 학생들과 어울린 경험도 없었거니와,
그들이 속한 세계에 관해서도 전혀 몰랐다.
단지 내가 찾는 길이 거기 있다고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거부하기 힘든 직감이라고 할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 선택을 내리던 날 많은 것이 뒤바뀌리라는 건 직감했다.
그런데 실은,
그 선택은 많은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내 모든 것을 바꾸었다.
나의 소유와, 시간과, 일과,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과,
내게 닥쳐 올 아픔과, 또 행복과,
내가 앞으로 만날 사람들과,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들…
돌이켜 보면 그 순간이 나의 평생을 바꾸어 놓았다.
어쩌면 영원히-
"저기, 이호티 씨??
여기까지 잘 이해했나?"
".. 죄송합니다. 저는 특수학교로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