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이야기- 난 너의 친구야
“내가 왜 이 X신들이랑 같이 공부해야 되는데요? “
교실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 쉬었다. 선생님은 참다못해 그에게 교실에서 나가라고 했다. 나는 그를 데리고 나와 운동장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규성이는 내가 특수학교로 공익근무를 왔을 때 일반학교에서 막 전학 온 학생이었다. 그는 스스로 장애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존심이 워낙 세서 그전 학교에서도 자기를 놀리는 친구와 대판 싸우고 사고를 쳤고, 결국 특수학교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의 자존심에는 이유가 있었다. 말을 잘했고, 글도 잘 읽었으며, 운동도 잘하고 노래도 잘했다. 가벼운 지적장애가 있다고 하나 겉으론 티가 나지 않았다.
다만 감정 기복이 심하고 거칠었으며 규칙을 잘 지키지 않고 폭력적인 성향이 강했다. 불평이 많고 신경이 날카로웠다. 건드리면 바득바득 달려드는 상처 입은 고양이처럼.
규성이는 같은 반 친구들을 바보라고 생각했다. 2화에 나온 상식이를 포함해 중증 장애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실제로 학습 수준이 맞지 않기도 했다. 나는 담임 선생님에게 규성이를 수업 시간에 따로 가르쳐보겠다고 건의를 했고 허락을 받았다.
그 후 나는 규성이와 별도 교실에서 그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는 영어를 무척이나 잘하고 싶어 했다. 팝송으로 공부하기도 했는데 노래를 좋아하던 그는 곧잘 따라 불렀다. 우리는 얘기도 많이 나누었다. 그러면서 그가 보육원에 산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 부모님이 안 계신 거야?”
“아니요. 엄마 아빠 다 있어요.”
“근데 왜 보육원에 살아?”
“둘 다 나 버렸어요. 나 버림받음.ㅋㅋ“
알고 보니 엄마와 아빠는 이혼하고 각자 새 살림을 차렸다. 처음에는 아빠 집에 살았다. 새엄마는 장성해 가는 남의 자식이 불편했을 터였다. 더구나 장애가 있는 자식이었다. 숱한 다툼 끝에 종착지는 아빠 집도, 엄마 집도 아닌, 보육원이었다.
규성이의 기구한 처지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웃어넘겼지만 나는 고개 돌린 그의 씁쓸한 미소를 보았다. 마음에 깔린 울화와 분노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규성이가 사는 보육원에 가보기로 했다. 어린 동생들이 많다고 해서 수박 두 통을 샀다. 한 여름이라 날이 몹시 무더웠다. 물지게를 이고 가듯 수박 두 통을 양손에 들고 걸으니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보육원의 젊은 여자 선생님이 맞아 주었고,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와 수박을 번갈아 보았다. 후루룩 쩝쩝 대며 수박을 먹는 아이들과 규성이를 두고 보육원 선생님과 나는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규성이는 애들과 장난치면서도 잠자코 듣고 있었다. 보육원을 나가는 걸음 뒤로 규성이가 좇아오던 기억이 난다. 그날 이후로 규성이는 나를 형처럼 따랐다.
어느덧 학기가 끝나서 방학을 보내고 규성이를 다시 만났는데, 못 보던 문신이 팔에 기다랗게 생겨 있었다. 문양도 아니고 레터링도 아니고 이레즈미도 아닌, 조악한 문신이었다.
“너 이거 왜 했어?”
“아, 아는 형이 타투한다고 저 해줬어요. 간지 나죠?”
규성이는 한 무리의 “아는 형들”과 몰려다니기 시작했다. 담배를 배우고, 술을 하고, 형들이 소개해줬다며 알바를 했다. 규성이는 신나게 형들 얘기를 했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낌새가 영 꺼림칙했다. 위험한 일에 이용당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 후 규성이는 일을 하겠다며 학교를 자퇴했다. PC방, 놀이공원, 공장, 택배, 장애인 스포츠팀... 아주 많은 직업을 전전했지만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어느 날 지방에 내려간 후부터는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다시 연락이 왔을 때, 수화기 너머로 그는 울고 있었다.
"형, 저 좀 도와주세요.."
우리 집으로 찾아온 규성이는 얼핏 봐도 구타의 흔적이 보였다. 그의 옷을 벗기자 채찍에 맞은 것처럼 등에 검붉은 자국이 몇 개나 그어져 있었다.
경도지적장애 학생은 겉으로 보면 “조금 느린 아이”, “조금 산만한 아이” 정도로 보일 때가 많다. 말도 잘하고, 장난도 치고, 스마트폰도 능숙하게 다룬다. 그래서 그 정도면 사회 나가서 웬만큼 버틸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게 웬걸, 실제로는 일자리를 얻거나 유지하는 것도 어렵고, 지원 서비스 접근 정도도 떨어진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장애가 경미하기 때문이다.
경도 지적장애인은 외형이나 언어 능력을 보면 비장애인과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 조금 느리고, 설명을 두 번 세 번 해야 따라오고, 복잡한 규칙을 잘 못 지키는 정도니까. 조금 도와주면 웬만큼은 할 수 있는 아이로 판단하기 쉽다. 지원을 요청해도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에요.”라는 말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최근 연구에도 경도지적장애 성인은 발달장애인보다 지원 서비스에 덜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된다.
한국의 장애인복지제도는 오랫동안 ‘얼마나 중증인가’를 기준으로 서비스 문턱을 정해 왔다. 활동지원, 주간보호센터, 발달재활서비스, 직업재활 등 중요한 서비스는 대개 중증이 우선이고, 경도 장애인은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대기 대상이 된다. 학교도 비슷하다. 중증 학생에게는 특수학급 보조인력이 붙고 비교적 명확한 지원체계가 가동되지만, 경도 학생은 일반학급에 남겨진 채 “그래도 소통은 잘 되니까”라는 이유로 세밀한 전환 계획 없이 졸업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학령기에 존재하던 최소한의 보호막이 걷히는 순간, 이들은 일반 노동시장과 복잡한 사회 시스템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 학교에서 ‘조금 느린 학생’이던 아이가, 사회에 나와서는 ‘일머리 없는 사람’, ‘눈치 없는 직원’으로 규정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시키는 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낙인이 찍히고, 이 낙인은 다시 소극적 태도와 회피 행동을 부른다. 지원이 적을수록 실패 경험은 늘고, 실패 경험이 쌓일수록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이런 악순환은 특히 전환기(transition), 즉 학교에서 성인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데, 경도지적장애 청소년들이 고등학교 이후에 겪는 진로·취업 실패율이 중증보다 더 높게 보고되기도 한다. 중증 학생은 아예 보호작업장·직업재활·주간보호시설 같은 ‘다른 트랙’으로 가지만, 경도 학생은 일반 트랙에 던져진 채 알아서 버텨야 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애인으로 취급받고 싶지 않은 '낙인 회피' 심리도 작용한다. 지원체계 기준대로는 자격 미달인 데다 그나마 받을 수 있는 지원도 스스로 회피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회안전망 안에서는 ‘장애인’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경쟁의 장 안에서 ‘비장애인’처럼 평가받는 경계선 부근에 놓이고 만다. 지원체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셈이다. 그렇게 전환기의 지원을 놓친 이들은 좌절과 실패를 학습하고 취업 전선에서 조기 이탈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에 법과 제도적 차원에서 지원 체계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려는 노력이 지속되어 왔다.
최근 몇 년간, 정부와 공공기관은 장애인의 사회 진입을 돕기 위한 여러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고졸 발달장애인을 위한 맞춤훈련센터를 설립해 직무훈련부터 현장실습, 고용 연계까지 지원하고 있으며, 지역 장애인고용지원센터에서는 직무지도나 근로적응훈련, 고용유지 지원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경도지적장애인을 위한 민간기업 맞춤형 직무개발 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과거 단순반복 노동에 집중됐던 직무 영역은, 점차 서비스·행정·디지털 업무로도 확대되고 있다. 장애학생들이 졸업 이후 안정적으로 고용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목이 넓어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특히 민간 분야에서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고, 직원은 각자의 몫을 해내야 한다. 학습이 너무 느리거나 실수가 반복되면 다른 직원의 일이 늘어나거나 고객 응대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또 장애인을 특별대우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불편하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장애가 있는 직원이나 그 가족이 고용주를 상대로 부당 대우나 차별을 주장하며 갈등을 빚는 일도 있다. 일터는 사람들의 다양한 기대와 이해가 얽힌 복잡한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제도나 정책만으로는 이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 어렵다.
규성이는 아빠에게 맞았다고 했다.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왜 맞은 거냐고 물어보았고,
녀석의 대답에 맥이 빠져서 너는 맞을 만했다고 말해버렸다.
규성이는 최신 휴대폰을 수십 대나 할부로 사들이고는 되팔아서 돈을 챙겼다. 문제는 규성이는 성인이긴 하지만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없는 장애인이라는 것이다. 번 돈은 이미 다 탕진해 버렸다. 녀석이 혼자 이 과정을 다 진행할 만큼 똑똑할 리 없었다. 그 아는 형들 중 누군가가 알려주었거나, 같이 한 것이다. 어쨌거나 할부금은 아빠가 갚아야 했으므로, 아빠가 꼭지가 돌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그를 집으로 끌고 와 자기 허리띠를 풀었다.
... 그렇게 해서 우리 집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의 몸 곳곳에 난 상처와 멍에 약을 발라주면서 혼을 냈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눈물이 났다. 그 모든 상황이 너무도 한심하고 우습고 화가 나고 안타까워서, 원망스러운데 누구를, 무엇을 원망해야 할지도 몰라서. 한숨이 나왔다. 어쨌거나 그냥 둘 수는 없었다. 그 후로 나는 그와 평일이고 주말이고 자주 함께 다녔다. 교회에 데리고 가서 형 동생들과 친구들을 사귀게 했다. 영화관이나 노래방, PC방도 데려가고 밥도 많이 사주었다. 놀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어서 가르칠 게 너무 많았다. 은행 이용하는 법과 복지혜택 받는 방법도 가르쳤다. 와중에 그 아버지가 규성이 명의로 국가에서 나오는 장애 수당을 챙기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보육원에 있을 때도, 그전부터도 쭉 그랬다. 규성이는 그 돈을 받은 적이 없었다. 아빠가 모아놨다가 다 크면 준다고 했단다.
다 말할 수 없는 지난한 과정 끝에 규성이는 자기 몫의 장애 수당을 다시 받게 되었고, 자취하는 교회 선배가 선뜻 들어오라고 해주어 그 집에서 같이 살게 됐다. 또 취업도 알선해 주어서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 말고도 챙겨주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규성이는 더욱 사회적이고 독립적으로 성장해 갔다. 나는 그가 밝고 건강하게 변화된 모습이 좋았다. 그도 자기를 편견 없이 대해준 이 사람들이 무척 고맙고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알게 되었다. 그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다름 아닌 '친구'였다는 걸.
아주 어렸을 적, 그 시절의 골목 꼬마들이 생각이 난다. 동네에 함께 살면서 조금 느린 친구가 있어도 “그럴 수도 있지” 했고, 말이 어눌해도 괜찮다고 품어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좀 모자란 친구가 놀이 규칙대로 잘 못해도 어린 동생처럼 깍두기로라도 끼워주었다. 옆집을 내 집처럼 들락거리기도 했다. 한 골목에 있으면 다 친구였고, 경쟁보다 함께 있음이 중요했다. 그것이 특별히 의로운 태도도, 의무도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모든 게 너무나도 빠르고 여유가 없고 무서워지기도 한 세상에서 더이상 옛날처럼 정 있게 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렇더라도. 내 옆에 좀 부족한 사람이 보일 때 조금 더 기다려주고 그냥 옆에 잠시 같이 있어줄 수는 있지 않은가. 그 마음 하나가 어떤 이에게는 삶을 버티게 하는 돌파구가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의 결이 조금 더 부드럽고 여유로울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들을 더 보게 될지 모른다.
어쨌거나 세상은, 좋은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살 만하다.
오랜만에 연락이나 해봐야겠다.
요새는 아울렛에서 옷 판다던데 잘 하고 있으려나.
보고 겪은 일을 썼으나, 인물의 이름과 상황은 일부 각색하였습니다.
아빠랑 딸이 함께 부르는 <You've got a friend in me>
You've got a friend in me
넌 언제나 나라는 친구가 있어
You've got a friend in me
그래, 너에게는 내가 있어
When the road looks rough ahead
앞길이 험하게 느껴질 때도
And you're miles and miles from your nice warm bed
따뜻한 침대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You just remember what your old pal said
그저 오래된 친구의 말을 떠올려
Boy, you've got a friend in me
얘야, 너에겐 내가 있잖아
Yeah, you've got a friend in me
그래, 너에겐 내가 있어
You've got a friend in me
넌 언제나 나라는 친구가 있어
You've got a friend in me
그래, 너에게는 내가 있어
You got troubles, and I got 'em too
네가 걱정이 있으면, 나도 함께 안을게
There isn't anything I wouldn't do for you
너를 위해 못 할 일은 없어
We stick together and we see it through
우린 서로 붙어 있으면 결국 이겨낼 수 있어
'Cause you've got a friend in me
왜냐면 너에게는 내가 있으니까
You've got a friend in me
그래, 너에겐 나라는 친구가 있으니까
Some other folks might be
다른 사람들은
A little bit smarter than I am
나보다 좀 더 똑똑할 수도 있고
Bigger and stronger too, maybe
더 크고 더 힘이 셀 수도 있어
But none of them will ever love you
하지만 그중 누구도 너를
The way I do, it's me and you, boy
내가 너를 생각하는 만큼 사랑하진 못할 거야, 우린 서로 알잖아
And as the years go by
세월이 지나도
Our friendship will never die
우리 우정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You're gonna see, it's our destiny
넌 알게 될 거야, 그게 우리의 운명이란 걸
You've got a friend in me
넌 나라는 친구가 있어
You've got a friend in me
그래, 너에겐 내가 있어
Yeah, you've got a friend in me
언제나, 너에겐 내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