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선생님으로 만든 아이들- 다섯 번째 이야기
영우와 있었던 에피소드 이후로 특수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편입학원을 등록했다.
특수교육과가 설치된 대학은 많지 않았고, 편입은 매년 한 두 명 정도밖에 T.O. 가 없었다. 자리가 안나는 해도 있었다. 편입시험은 주로 영어 과목이 중요했는데, 그래도 영어는 좀 자신이 있었다. 얼마나 헛된 자신감이었는지는 공부하면서야 알게 됐지만. 공익근무하면서 퇴근 후 학원으로 직행하는 생활을 했으나, 첫 시험은 예비에도 들지 못하고 떨어졌다. 그러다 소집해제하고부터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했는데, 그때 처음 알았다. 공부 열심히 한다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아침 7시 반 수업을 신청했다. 2호선 교대 역 부근에 있던 편입학원 데스크에서는 꼭대기층 자습실 자리를 잡으려면 6시까지 오라고 했다. 아니면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0석이 넘는데, 오버가 심하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6시 5분에 도착하고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3개 층에 걸쳐 계단에 줄이 늘어서 있었다. 첫날 겨우 마지막 남은 한 좌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늦지 않으려면 집에서 5시 전에는 출발해야 했다.
직전시험까지 일과 공부를 병행한 게 1년, 소집해제 후 6개월을 6 to 9으로 풀타임으로 공부했다. 학원은 지독하게도 매월 월말고사 성적을 1등부터 꼴등까지 실명으로 교실 앞에 붙여 놓았다. 친구도 안 사귀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하고 공부만 한 결과 매월 월반을 했다. 진작 이렇게 했으면 S대 갔겠네. 후회해 봤자 늦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가장 높은 반에 올라와 있었다. 처음으로 모의고사 전국 등수에도 들어 봤다. 담당 선생님은 왜 그 성적으로 거기를 쓰냐며 의아해했다.
그야, 특수교육하려고 편입시험 보는 거니까요..
그 해 편입시험에는 특수교육과를 1명 뽑았다. 시험과목은 교육학을 포함한 인문교양, 그리고 영어였다. 2교시 영어 시간이었다. 초긴장 집중모드로 시험 시간을 꽉 채웠다. 느낌이 좋았다. 몰라서 틀린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이제 OMR 카드를 옮겨 쓰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답안을 다 표시하고 나서야... 어라? 이상하다. 끝나는 번호가 다르네. 세상에, OMR 카드 뒷부분을 밀려 썼다. 종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보니 예비 2번이었다.
1명 모집이었으므로 내 차례가 돌아올 리 없었다.
허탈하고 쓰라렸지만 내 길이 아닌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결국 다니던 학교에 복학을 했고, 수험생활하던 가닥이 도움이 되었는지 한 번도 못해 봤던 수석을 했다. 학과장 교수님이 좋게 봐주셔서 장학생으로 미국에 교환프로그램도 다녀올 수 있었다. 나는 건강을 되찾았고, 학교생활은 보람차고 즐거웠다.
그즈음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 고3 학생들을 맡았는데, 내 모교에 다니는 학생이 네 명 있었다. 고등학교 후배들이었다. 후배들은 공부를 하긴 해야겠는데 공부를 힘겨워했다. 학원에 다닐 형편도 못 되었다. 그래서 우리끼리 스터디를 만들었다. 대학생 한 명과 고삼 4명으로 구성된 스터디 모임이 결성되었다. 도균이, 병운이, 성태, 민혁이. 그렇게 다섯이서 방학 스터디를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S대학교가 있었다. 지금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당시 중앙도서관 개방열람실은 외부인 출입이 가능했다. 후배들을 데리고 거기서 공부하기로 했다. S대는 여러모로 공부하기 좋은 곳이었다. 밤늦게까지 공부할 수 있었고, 약간의 소음이 있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면학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개방열람실에 출입하는 주제에 나도 S대에 다닌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얻곤 했다.
지정좌석은 없었지만, 있었다. 사람들은 옷 가지와 책과 짐들로 자신의 영역을 과감하게 표시했다. 그렇다. S대 도서관에는 무시무시한 공부꾼들이 있었다. 두꺼운 법전을 성벽처럼 쌓아놓고 책을 뚫을 것처럼 파고드는 사람, 쉬지 않고 펜을 놀리며 문제를 푸는 사람, 아주 편안한 자세로 하루 종일 한 번도 안 일어나고 책장만 넘기는 사람... 그들의 맞은편이나 옆 자리에 앉은 우리 고3 친구들은 그 포스에 눌려 수능 모의고사집을 펼치면서 주눅 들곤 했다. 얘들아, 위축되지 마. 당당하게 공부해...! (소곤소곤)
고3 도균, 병운, 성태, 민혁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성적이 엇비슷했다. 나는 제자이자 후배인 그들의 성적을 분석하고 학습플랜을 짜주었다. 그리고 나만의 학업 성취율 척도와 수식을 만들어 매달 멤버들의 학업 성취도를 점수로 측정했다. 한편으로 매 주말마다 주말퀴즈도 보고 이것도 평가에 반영했다. 그래서 가장 우수한 멤버를 뽑아 장학금을 수여했다. 물론 내 돈은 아니었다. 나는 가난한 대학생이었으므로 밥은 사 먹여도 돈을 줄 수는 없었다. 학부모님들이 돈도 안 받고 자녀들 공부시켜 준다고 매우 기쁘게 호응해 주시고 돈을 모아 보내주신 것이다.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 돈으로 우리는 밥도 먹고 문제집도 사고 우리끼리 매월 스터디 장학금도 수여했다. 장학금이래 봤자 몇 만 원이었지만, 고달픈 고3 수험생에게는 이 몇 만 원이 얼마나 소중한 용돈이었는지 멤버들은 눈이 뒤집혀 공부를 했다.
짠한 녀석들..ㅉㅉ
성태의 어머니는 동네 고시촌에서 식당을 하셨다. 이른바 고시식당으로, 저렴한 가격에 가성비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어 고시생들이 많이 찾았다. 우리는 성태를 앞세워 밀고 들어갔고, 어머님은 언제나 공짜로 밥을 주셨다. 뷔페식이었기 때문에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었다. 늘 배고픈 수험생들에게는 성대한 만찬이었다. 나더러 언제든 와서 밥 그냥 먹고 가라고 하셨지만, 염치가 있지. 성태 없이는 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성태를 모셨다...
우리는 수능날까지 열심히 공부를 했고, 유쾌한 도균이와 진중한 민혁이는 그 해 대학에 진학했다. 병운이와 성태는 재수를 선택했다. 병운이는 공부를 가장 열심히 했고, 성적이 가장 많이 올랐는데 탄력을 받았는지 더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겠노라고 했다. 과묵하고 수줍은 미소를 가진 성태는 이제 좀 공부하는 법을 좀 알겠다고 1년만 더 해보겠다고 했다.
그간 나도 열심히 학교 공부를 했고, 장학금도 받고, 미국으로 인턴십갈 기회도 얻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별생각 없이 찾아본 편입 모집 정원을 보고 덜컥 흔들렸다.
처음 보는 숫자였다.
"특수교육과 모집정원, 3명"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고전 속담이 있다. 아무리 많이 들어도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이다. 이 문장을 교육의 언어로 그려낸 사람이 있으니, 에드가 데일(Edgar Dale)이다. 그는 학습 경험을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이어지는 어떠한 흐름으로 보았고, 이를 원추(cone)의 형태로 시각화했다. 배우는 방식을 하나의 연속선으로 표현한 것이다. 경험은 하나의 흐름이다.
원추 이론에 따르면, 말이나 글로만 접하는 간접 경험부터 토론이나 현장실습처럼 몸으로 겪는 직접 경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험은 끊어진 층위가 아니라 서로 이어진 스펙트럼이다. 학습자는 이 스펙트럼 위를 이동하며 이해를 확장한다. 경험의 우열을 구분하려는 것이 아닌데, 이상하게도 사교육계를 비롯해 많은 단체들이 토론과 발표수업은 직접경험의 학습 효과가 있다며 원추 모형을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곤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행'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경험의 원추는 '직접 경험이 가장 효과적입니다'와 같은 단순한 결론을 위한 게 아니다. 오히려 교육자라면 학습경험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해 시사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원추모형은 학습경험이 어떻게 구체와 추상 사이를 오가는지 보여준다. 배움은 단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넓은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경험의 상호작용인 것이다. 교사의 역할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하나 선택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원추 안에서 자연스럽게 경험과 경험 사이를 왕복 운동하도록 돕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배움과 성장을 이루게 하고, 학생이 배우고 싶어 지게 만드는 일- 학습 설계의 핵심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수준과 성향이 다르다. 그래서 각자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해에 도달한다. 그런 학생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라고 획일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쉽다. 반면 저마다 다른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동의 판을 깔아주고, 하고 싶게 만드는 일은 어렵다. 가르침의 최고 기술이다.
경험의 장을 구축해 두고, 울타리 안으로 학습자를 끌어들여 마음껏 뛰놀게 하는 것, 성공을 경험하게 하고 스스로 책임도 지게 하는 것- 구조화된 자율성(Structured Autonomy)과도 연관이 있다. 학생들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고 굳게 믿고 뿌듯해 하지만, 실은 치밀하게 설계된 음모(?)인 것이다.
또 야마구치 슈(2021)는 <일을 잘한다는 것>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즈니스란 구체적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생각의 흐름 속에 반드시 '요컨대 이런 것이다'하는 추상화가 일어나 거기서 얻은 논리를 머릿속 서랍에 넣어야 한다. 감각 있는 사람은 이 서랍에 무척 충실하다.
'구체와 추상 사이 왕복 운동'을 호흡하듯이 하는 사람이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다. 뛰어난 사람은 흔들리지 않거나 의사결정이 빠르다. 미지의 새로운 현상도 나름의 논리로 추상화하는 사람은 내재된 경험과 지식을 꺼내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으므로 미지의 세상도 '언젠가 지나온 길', '어디선가 본 풍경'으로 여긴다. 새로운 일과 상황에 맞닥뜨려도 확신을 갖고 재빨리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경험과 지식을 추상화하여 패턴으로 축적하기 때문에 개별적이고 구체적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이런 감각은 타고난 것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방대한 분량의 딥러닝인 것이다.
성인도 일을 잘하려면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 그리고 또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이 다 죽을 때까지 학생(學生)이지 않은가. 날마다 무언가를 배우며 살고, 배우면서 성장하니까. “지식을 어떻게 익혀서 삶과 연결할 수 있을까?”는 곧 생존과 성공에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행복에도. 아마도 그렇다.
멤버들과 같이 학교와 도서관과 식당과 교회를 오가면서 우리는 문제를 같이 풀고 고민거리를 나누고 꿈을 꺼내고 미래를 그려보았다. 버스를 타거나 걸어다니거나 밥을 먹으면서. 다양한 주제로 구체와 추상 사이를 부지런히 왕복했다. 공부는 잘하고 싶은 것이었다가, 할 만한 것이었다가,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 배움이 된 공부는 지난해도 할 만했고, 피로해도 즐거웠다. 또 혼자 하는 공부는 외로웠지만, 함께하는 것은 좋았다. 좋은 판 위에 좋은 흐름이 열린 것이다. 내가 멤버들과 함께 했던 모든 활동은, 비록 작은 스케일이었어도 썩 괜찮은 판이었음을, 후에야 알았다. 처음으로 실감한 가르침의 감각이었다.
공고를 보고 한동안 고민했다. 기회를 잡아서 미국으로 갈 수도 있는데. 유학 겸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하고 해외에서 일을 할까, 한 번 더 도전을 할까. 프롤로그와 같은 선택의 순간이 다시금 찾아왔다. 부모님과 교수님은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다. 결국 한 번만 더 시험을 보기로 했다. 인턴십 출국은 그전이었으므로 포기해야 했다.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남은 시간은 두 달이었고, 단 3명만 뽑았지만, 시간이든 경쟁률이든 숫자는 의미가 없었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거니까. 그리고 어차피 될놈될 안놈안이다.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
포기한 것도 있었지만 절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평온하면서도 간절했다. 그런 모순된 감정으로 공부하면서 난생처음 코파다 나온 코피 말고 공부하다가 코피를 쏟아보기도 했다. 우와, 나도 공부하다 코피 쏟아봤다!
그리고 이듬해, 입학했다.
특수교육을 하러.
드디어.
보고 겪은 일을 썼으나, 인물의 이름과 상황은 일부 각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