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비밀

나를 선생님으로 만든 아이들- 세 번째 이야기


카라 끝까지 잠긴 단추, 잘 다린 티셔츠와 면바지, 좋은 브랜드의 운동화, 향긋한 샴푸 냄새와 매끈매끈한 피부. 순박한 얼굴에 세련된 패션 스타일. 영우는 내가 본 모든 중증 발달장애 학생 가운데 가장 깔끔한 '댄디 보이'였다.


영우는 나만한 몸집의 고등학생이었지만 심한 정도의 지적장애로 말을 전혀 하지 못했고, 잘 알아듣지도 못했다. 감정 표현도 거의 없었다. 은은한 미소와 불안한 표정으로 기분을 표현하는 정도였다. 순한 아기 같다고 할까. 담임선생님은 반응이 없는 영우에게 정이 안 간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영우가 마냥 예뻤다. 운동파 상식이와 무투파 구철이 같은 아이들에 비하면 영우는 천사 그 잡채였기 때문에...


(전에 맡았던 아이들의 이야기)




영우는 중도의 지적장애에도 불구하고 신변처리 훈련이 아주 잘되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가정 지도를 잘 받은 덕이었다. 요의가 느껴지면 화장실에 가서 혼자 소변을 누었고, 뒤처리까지 완벽에 가까웠다. 대변을 볼 때도 스스로 하의를 내리고 변기에 앉았다. 양 손가락을 두들기며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도 할 일을 다했다. 물론 마지막 처리는 해주어야 했지만... 그게 어디인가.


옆반에서는 기본적인 신변처리도 되지 않아 수업 중간에 실수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대변 실수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우리는 그것을 '테러'라고 불렀다.


"우리 반에 테러 났어."

"아이고... 뭐 필요한 거 없어요?"

"아니야. 고무장갑 또 있나? 핵폭탄급이라.."

"ㅋㅋㅋ 미치겠다. 금방 갖다 줄게요."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옆반은 옆반 일. 남일이었다. 한 번은 영우를 데리고 화장실에 갔는데, 벌거벗은 남학생이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두 손을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 친구의 '그것'은 칸막이와 벽면 여기저기 처덕처덕 발라져 있었다. 코 끝에도 묻어 있었다. 갈색 코의 루돌프처럼. 그 장면이 꽤 충격적이었는지 내 기억 속에 영구히 흑백 처리되었다. 누구는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거라고 하던데, 나는 절대로 그 지경까지 살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공익근무 말년에 영우를 보게 된 건 감지덕지할 일이었다.

그랬는데.. 그 일이 일어났다.




수업 중 영우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옆에 앉은 나를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 불안한 표정이었다. 불안했다. 어디 아픈가. 설마.


그 순간 영우가 벌떡 일어났다. 허겁지겁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가 전에 보지 못한 속도로 복도를 질주했다. 처음 알았다. 그렇게 빠른 아이인 줄.


뒤따라 가보니 벌써 화장실 변기에 앉아있었다. 아래로 내린 바지와 팬티가 보였다.

아아... 망했다.

!@#ㅁㄸ$&^% 한 게 아주 난장판이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변기에 앉아있는 그의 다리에서 속옷과 바지를 한쪽씩 벗겨냈다. 손에 묻지 않게 조심조심하면서. 입으로 숨 쉬면 냄새는 피할 수 있다. 하아하아.


그때였다.

머리에 감촉이 느껴졌다.

이게 뭐지.

고개를 옆으로 들어보니 내 뒤통수를 쓰다듬는 손이 보였다.


영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녀석이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이상 더 웃을 수 없을 만큼 환하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직업을 말해야 할 때가 있다.

특수교사라고 하면 대부분 반응은 비슷하다.

"좋은 일 하시네요." 또는 "고생 많으십니다."

또 이런 말씀도 있다.

"아이고, 특수교사는 정말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 같아요. 대단합니다."


그러면 나는,


글쎄요.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고생 많이 안 하는 일이 있을까요?


-라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입으론 감사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진짜 그런 직업이 있으면 저한테 살짝...)


직업의 본질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다. 누군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 일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남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오려면 고생을 해야 한다. 성경에서도 '얼굴에 땀이 흘러야 음식을 먹을 것'이며, '일하기 싫어하면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다. 그러니 기왕 고생할 거, 사회적 임팩트가 크고 물질적 보상이 확실한 직업에 많이들 매달리는 것일 테다.


사명감이란 개인이 세상에 기여하기 위해 어떤 가치에 의미를 두고 있는지의 문제 아닐까. 특정 직업군에만 사명감이 필요한 건 아니다. 기업인도, 자영업자도, 기술자도, 요리사도, 작가도, 그리고 엄마도 사명감을 가질 수 있다. 사명이 있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 있다면 확실히 행복할 것이다.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어 그것을 위해 살기도 하고, 그것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특수교사가 꼭 그런 사명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업은 아니다. 그래도 조금 특별한 점은 있다. 특수교사는 제자들이 졸업하고 찾아와 감사를 전하는- 교사라면 누구나 가장 큰 보람일- 일이 별로 없다. 미래보다는 지금 이 순간 아이들과 함께하는 장면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다. 사소한 변화를 민감하게 캐치하는 데도 많은 에너지가 든다. 그렇게 우리끼리만 알아보는 성장 레이스(달팽이 경주같이 더딘)에 긴장하고 지치고 때론 환호하며 지켜본다. 그래서 보람을 먹고사는 일이라고 하고, 우리끼리 독려하고 위로한다.



같은 맥락에서 중증 장애 아이들의 부모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학교에서 만난 그분들은 서로에 대한 유대감이 매우 끈끈했다. 어떤 학부모회장님은 입학식에서 다른 학부모님들에게 '우리는 지옥 입구에서 만난 전우'라는 표현까지 썼다. 장애아동의 부모는 다른 아이라면 2-3년이면 끝날 영아기 수준의 밀착 돌봄을 최소 20-30년, 혹은 그 이상 지속해야 한다. 비슷한 처지의 서로를 보듬고 살지 않는다면 견디기 힘든 세월이다. 모든 장애아동의 부모는 공통된 꿈이 있다. 자녀보다 하루 더 오래 사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처럼 보이는 생의 굴레에 매이고도 스스로 몸을 태워 빛을 내는 부모들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절망의 그림자가 그들에게는 빛의 증거다.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 속에서 그들은 인고의 시간 동안 아이를 사랑으로 품고 돌본다. 장애 아이의 부모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내가 본 어느 누구보다 가장 지독하고 집요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아이를 위해 물에도 들어가고, 불에도 들어가고, 할 수 있는 모든 것과 할 수 없던 어떤 것도 한다. 좌절은 삼키고 아이를 보고는 웃는다.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그 불굴의 미소와 애틋한 어루만짐은, 말할 수 없는 아이의 눈동자에도 각인된다. 그리고 거울과 같이- 아이의 눈에서, 입술에서, 그리고 손길로- 재현된다.


그럼으로써 또 다른 누군가를 변화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영우는 내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 미소, 그리고 쓰다듬는 손.


그것은 명백히 그의 어머니의 것이었다.


얼마나 웃어주었으면, 얼마나 쓰다듬어 주었으면,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의 몸이 다 자라기까지

늘 단정한 차림과, 좋은 향기와, 밝은 미소를 두르게 하고,

그렇게 기꺼이 돌봐주고 웃어주고 어루만져주려면,


어떤 사랑을 해야 하는 걸까?


영우는 그런 사랑의 결실이었다.


그리고 실은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랑의 결실이다.

적어도, 우리가 그런 사랑의 결실을 맺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장실 칸에서 그의 앞에 무릎 꿇었던 장면은 어떠한 상징이 되어 기억 저편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받은 사랑을 이어가야만 한다.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몰랐지만 찾아왔던 비밀이 거기 있었다.


나는

특수교사가 되기로 했다.




*보고 겪은 일을 썼으나 인물의 이름과 상황은 일부 각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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