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선생님으로 만든 아이들- 두 번째 이야기
휘익
녀석이 채찍처럼 팔을 휘두르면 옷깃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듬성듬성 빠진 이 옆으로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번뜩였고 그 사이로 침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쓱 닦아내는 팔뚝 끝에 튀어나온 거무스름하고 뾰족한 손톱, 거칠게 뻗은 머리칼, 구부정한 허리, 어슬렁어슬렁 걷는 걸음걸이. 미안한 얘기지만, 처음 보았을 때 늑대 인간 같다고 생각했다.
구철이는 내가 특수학교 공익근무요원이 되고 상식이 다음으로 담당했던 학생이었다.
그렇다. 상식이를 두고 옮겨 간, 바로 옆 반 거기다. (지난 화 참조)
상식이가 운동파라고 하면 구철이는 무투파였다. 걸핏하면 위험한 손톱을 휘둘렀고 몸이나 머리로 들이받거나 물어뜯기도 했다. 아무리 여리고 순수한 여자 선생님도 구철이를 상대하게 되면 예외 없이 강호로 입문했다. 당시 내 기준으로 구철이를 상대하고 울면 신규, 제압하면 경력교사였다. 내공이 쌓이면 어린 선생님도 사자후를 발하고 무림 고수처럼 여러 초식을 펼쳤다.
구철이는 종종 침을 뱉기도 했는데 입을 오므리는 전조가 있었다. 수차례 생사결을 통과한 고수들은 그가 쏘는 침을 고개를 까딱하는 정도로 피했다. 담임쌤도 무위가 절정에 이르렀다. 녀석이 번개 같이 라이트훅을 날리는 즉시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위빙으로 회피하는데, 어찌나 감탄했는지 아직까지 뇌리에 생생하다.
난폭한 성정 때문에 고역스러웠지만 나쁜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한 번은 곧잘 따르던 남자 선생님이 구철이 집에 가정 방문할 일이 있어, 같이 가자 하여 동행했다. 버스를 타고 정거장에서 내린 후 언덕을 한동안 올라가야 하는 집이었다. 어머님이 소탈하게 웃으며 맞아주셨다.
선생님이 어머님과 대화하는 동안, 구철이와 멋쩍게 나란히 앉아있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은 방 같은 집은 누런 벽지가 여기저기 해졌고 나무바닥은 틈이 벌어졌다. 나무로 된 원탁 상과 옷장 겉은 잔 스크래치가 잔뜩 나있었다. 뭔지 모를 꿉꿉한 냄새도 났다. 구철이는 조용히 앉아있었다.
구철이가 여기서 사는구나.
면담은 곧 끝났고 어머님은 감사하다며 선생님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기분 탓인지 온화한 미소 위로 주름이 아까보다 깊어 보였다. 언덕 위에서 구철이 어머님은 구철이에게 인사를 시켰다. 조폭도 아닌 게 형님에게 인사하듯 어깨와 팔을 벌리고 허리를 숙인다. 고개를 든 녀석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씩 웃으며 송곳니를 보였다. 어쩐지 짠한 감정이 들었다.
침이나 닦아, 짜식아.
그날 이후 구철이는 한동안 얌전했다. 나도 더 잘해주었다. 같이 깔깔 웃고 즐겁게 어울렸다. 평화로운 날들이 계속 이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무더위가 지나고 날이 선선해지는 무렵, 나는 만 스물한 살이 되었다.
어느덧 보름달이 뜰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야 이 X새끼야아!!"
구철이는 다시 늑대인간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얌전했었냐는 듯이, 녀석은 학생이든 교사든 가리지 않고 욕설과 폭력을 퍼부었다. 하루는 온몸으로 그를 막다 손을 깨물려 거의 구멍이 뚫릴 뻔했다. 또 하루는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코를. 눈앞이 번쩍하며 별이 보였다. 화가 치밀었지만 담임선생님이 달려와 어찌할 수도 없었다. 수치심, 모욕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런 매일이 계속되었다.
전임 선배는 참다 참다 저놈 패대기치고 파운딩했었다던데, 그때는 너무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아니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주먹이 울고 있었다.
결전의 날은 멀지 않았다. 책상을 쾅 내리 찧으며 고함을 질러대는 그를 보며 다른 학생들이 겁을 먹자 선생님은 "그만!" 하고 단호하게 경고했다. 그러나 더 흥분한 구철이는 벌떡 일어나 공격 자세를 취했다. 나는 뒤에서 그를 끌어안았다. 순간 구철이는 허리를 힘껏 낮췄다가 머리를 뒤로 세차게 젖혔다.
쾅ㅡ 시야가 위아래로 흔들거렸다. 피가 후드득 떨어졌다. 코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피를 본 나는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건실에 다녀왔다. 코는 무사했지만 손이 덜덜 떨렸다. 오늘 마지막 한 수업만 남았다. 어떻게든 참으면 될 것이다.
그 시간은 처음 보는 시간강사님이 맡았다. 연세가 지긋한, 어머니 뻘의 선생님. 그분은 다정하게 과제를 안내했을 뿐이었다. 녀석은 돌연 책상 위를 쓸어버리며 책이고 뭐고 내동댕이쳤다.
“XX! XX끼야아!!”
그리고 책상을 밀고 돌진해 선생님에게 손을 들어 올리는 찰나,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졌다.
나는 그를 거칠게 붙잡고… 다리를 걸고서 던지다시피 넘어뜨렸다. 뒤 옷깃을 움켜잡았다. 질질 끌고 갔다. 교실 뒤편까지. 청소용 빗자루를 거꾸로 거머쥐었다. 높이 들었다 휘둘렀다.
허벅지, 종아리, 엉덩이,
다시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
...
영화 <친구>에서 선생님은 준석에게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라고 묻고는 시계를 벗고 무자비한 손찌검을 날린다. 1980년대가 배경이지만, 그러한 폭력의 잔재는 내가 남고에 다니던 2000년대 초중반까지도 교실에 남아 있었다. 우리 선생님들은 무림고수와 같이 실로 다양한 종류의 무기와 타격 기술을 구사하셨다. 사랑의 매는 일방적인 구타와 구분하기 어렵게 섞여 있었다. 친구가 맞고 엉덩이를 비비며 괴로워하면, 모두가 웃음꽃을 피우던 시절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때 그 시절 <친구>들은 학부모가 되었고, 곧 야만의 시대의 종막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2011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체벌은 전면 금지됐다. 도구나 손발을 이용한 직접적인 신체 체벌이 사라지자, 학교 현장에는 혼란이 일었다. 학생들의 도전 행동을 제지할 수단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대안으로 벌점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현장에서는 무력했다. 학생이 도발해도 교사는 “너 벌점 2점이야”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고, 목소리를 높이기라도 하면 학생들은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교사가 '교권 침해'를 들고 나와 성토하면, <친구>들은 '아동학대'로 맞서며 서로를 향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특수교육현장은 더했다. 이성보다 본능이 앞선 특수학교 학생들에게는 즉각적 반응과 물리적 제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힘의 위계가 더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구철이 같이 위험한 공격행동을 일삼던 아이들도 체육 쌤이 나타나 손가락 총만 겨누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얌전해질 정도였으니, 확실히 매가 즉효였다. 그러나 이제는 실수일지언정 체벌 비스무리한 행위로 '보이기만' 해도 특수교사는 가중처벌의 채찍을 맞았다.
법은 실상을 다 담을 수 없었고, 시비를 가리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배경에서 학교와 학부모, 인권단체, 정치권, 언론과 여론, 심지어 교육부와 교육청까지도 각기 다른 입장을 보이며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혼란의 시기에 학계는 학계대로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바로 긍정적행동지원(PBS: Positive Behavior Support)이다. 말썽이 터진 뒤 대응하는 게 아니라 학교의 규칙과 환경을 선제적으로 설계해 문제를 예방하는 접근이다. 쉽게 말하면 "소 잃기 전에 외양간 고치기"다.
2000년대 중반에는 개별 또는 학급 단위에서 PBS 연구가 이루어졌고, 2010년대 초부터는 학교 차원으로 이론이 확장되었다. 그리고 2017년, 학교 차원의 PBS 모델이 공식화되며 전국 특수학교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장애학생의 문제행동 중재를 위한 특별 예산을 교부했고, 시·도 교육청들은 행동중재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전문가단을 조직했다. 중점학교를 지정하고 교사 대상 연수와 평가 도구도 개발했다.
PBS의 원리는 단순하다.
첫째, 전 교직원이 동일한 규칙과 언어, 절차로 학생을 대한다. 누구에게나 일관된 기준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 처벌보다 칭찬. 긍정적인 행동에 즉각 보상을 제공해 바람직한 행동을 늘리는 데 집중한다.
셋째, 지각, 다툼, 교사 보고 등 데이터 기반으로 전략을 조정한다. 증거 기반 의사결정이다.
넷째, 3단계 다층 지원 체계를 갖춘다. 전체 학생, 위험군 학생, 집중 지원이 필요한 학생으로 나누어 맞춤형 지원을 제공한다.
PBS가 정착된 학교들을 분석한 결과는 뚜렷하다. 문제행동의 빈도와 강도가 눈에 띄게 줄었고, 수업 참여도는 높아졌다. 교사의 스트레스도 완화되었다. 특수학교 성공 사례가 축적되자, 2020년 이후부터는 일반학교로 확산되었다. 그 배경에는 학교폭력 문제, 교권과 학생인권의 충돌, 코로나 이후 정서·행동 문제 증가 등 여러 이슈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일반학교까지 확장 중인 학교 차원의 PBS가 교육현장 전반에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
퍼뜩 정신이 들었다.
선생님이 어쩔 줄 몰라하며 내 팔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바닥에 비스듬히 누운 구철이가 울면서 중얼거렸다.
"선생님 미안해.. 잘못했어.. 미안해.."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일그러진 얼굴,
그 장면에 오버랩되는-
녀석의 천진무구한 웃음, 허리 숙인 인사,
언덕 너머에서 바라보는 어머님의 슬픈 미소...
그리고 창가로 비치는,
빗자루를 거머쥐고 선 한 마리 야수.
보름달이 구름에 가리우고
고통스러운 감정이 밀려왔다.
속 깊숙이 욱신거렸다.
…
아주 흠씬 두들겨 맞았다.
맞기만 할 때보다 더 비참하게.
*보고 겪은 일을 썼으나 인물의 이름과 상황은 일부 각색하였습니다.